총리는 돛인가, 닻인가…1979.12.12 신현확과 2024.12.3 한덕수, 두 위기의 밤을 돌아보다

위기 발생 시 총리의 역할은 무엇일까. 돛일까, 아니면 닻일까. 역사는 이미 답을 보여준 적이 있다. 나는 신현확 총리 관련 사건을 맡으면서 그의 과거 행적을 살펴본 적이 있다. 1979년 10·26 사건의 밤, 그리고 12·12 군사반란 당시 신현확은 격랑 속에서 ‘닻’이 되려 했던 사람이었다. 그가 어떻게 권력의 폭주를 막으려 했는지, 그리고 왜 실패했는지를 돌아보면 오늘의 질문에 대한 답도 보이는 것 같다.
1979년 10월 26일 밤 11시 30분. 국방부 회의실. 국무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김재규의 총성 앞에 주눅 든 국무위원들이 앉아 있었다. 회의장은 공포 분위기였다. 최규하 국무총리가 입을 열었다. “다들 들어서 아시겠지만 대통령께서 유고입니다. 오늘 회의에서 비상계엄령 선포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국무위원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침묵하고 있었다. “그러면 동의하시는 것으로 알고 의결에 들어가겠습니다. 국무위원들은 순서에 따라 서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신현확 부총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회의장을 울렸다. “나는 이 상태로는 못하겠습니다.” “부총리,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국무위원들을 향해 섰다.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데 우리 국무위원 가운데 시신을 본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보지 않았잖습니까? 시신을 확인하기 전에는 나는 서명할 수 없습니다.”
동조하는 장관들이 생기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신현확 부총리는 병원으로 가기 전 국무위원인 국방부 장관에게 김재규 체포를 요청했다.
신현확은 훗날까지도 최규하에 대해 분개하는 점이 있었다. 김계원 비서실장에게서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보고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 서거 사실을 보고받은 오후 8시 30분부터 다음 날 0시 30분까지 약 4시간 동안 총기를 휴대한 범인과 우왕좌왕하는 국무위원들을 그대로 지켜보며 방관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서거했음에도 자신이 권한대행이라는 자각이 없었다는 말이었다.
그날 밤 신현확 부총리가 병원에서 대통령의 죽음을 확인하고 비상계엄을 의결하기 직전이었다. 그는 최규하 총리를 잠시 회의실 옆방으로 불러냈다. “왜 그러십니까?” “비상계엄 말입니다. 제주도는 빼야 합니다.” “제주도는 왜요?” “전국 계엄이 되면 모든 정부 행정기관이 계엄사령관의 지시를 받고, 계엄사령관은 대통령의 명령만 받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행정이 기능을 못 하고 사실상 군정이 됩니다. 제주도를 제외한 부분 계엄이 되면 계엄사령관은 국방부 장관의 통제를 받게 됩니다.” “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최규하 총리는 평생 외교 분야에서 일해 온 훌륭한 관료였지만, 난국을 헤쳐 나갈 위기관리 능력과 현실 정치 감각은 부족했다.
국무회의는 1979년 10월 27일 새벽 4시를 기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기로 의결했다. 신현확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생각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영민하고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판단력이 흐려졌다. 언제부터인가 대통령은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반대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귀찮아했다. 곁에는 받들어 모시는 사람들만 남는 듯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차지철 경호실장 같은 이들을 곁에 둔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신현확은 그날 밤 닻을 내렸다. 공포에 질린 국무위원들이 김재규라는 폭풍에 휩쓸려갈 때, 그는 “시신을 확인하라”는 한마디로 배를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곧 검은 먹구름이 밀려왔다.
1979년 12월 12일 저녁. 총리로 지명된 신현확이 최규하 대통령 공관에서 대통령과 조각 문제를 상의하고 있을 때였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다른 장군들을 대동하고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왔다. “무슨 결재입니까?” 최규하 대통령이 물었다. “정승화 총장 체포 건입니다.”
최규하 대통령은 아무 말이 없었다. “이게 무슨 소리요?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오? 상관인 정승화 총장을 체포하겠다니?” 신현확 총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박 대통령 시해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체포조가 출동했으니 상황은 이미 끝났을 겁니다. 늦었지만 여기에 사인해 주십시오.” “왜 사전 결재를 받지 않고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거요? 문제를 일으켜 놓고 사후 결재를 받겠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요?”
신현확 총리와 전두환 보안사령관 사이에 언쟁이 벌어졌다. 지켜보던 최규하 대통령도 불쾌한 표정으로 한마디 거들었다. “왜 절차를 무시하고 연행부터 하나? 앞뒤가 전도돼도 유분수지….” 그 사이 비서실을 통해 보고가 들어왔다. “지금 서울 시내는 군부대가 장악했고, 국방부와 서울 일대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러다 큰일 나겠습니다. 결재하면 안 됩니다.” 신 총리가 최규하 대통령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한 뒤 전두환 사령관에게 물었다. “당신들 상관인 국방부 장관 결재는 왜 없는 거요?” “지금 연락이 안 됩니다. 어디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찾아서 결재를 받아 오시오. 그리고 다시 얘기합시다.” 잠시 뒤 전두환 측은 다시 말했다. “국방부 장관은 찾지 못했습니다. 어서 사인해 주십시오.”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소?” “정승화 총장은 이미 체포했는데 반발이 일어난 모양입니다.” “반발이 일어나다니! 상황을 그대로 이야기하시오!” “정 총장을 체포하자 현 육군 지휘부에서 저항이 일어났습니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우리 측 9사단이 이미 한강다리에 진입했습니다. 육군본부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신현확이 책상을 내리쳤다. “이건 내란 아닌가!” 그는 최규하 대통령과 상의한 뒤 급히 대통령 비서실에 전방 사단장들과 전화 연결을 지시했다. 최규하 대통령도 곁에서 말했다. “아, 그거 단단히 이야기해 주십시오.” 사단장들과 연결되자 신현확이 물었다. “지금 어디 있는가?” “서울로 가는 길목입니다.” “왜 사전 승인 없이 이동하나? 지금 최규하 대통령이 내 옆에 앉아 계신다. 국군 통수권자의 지시 없이 왜 움직이나? 본대로 돌아가라. 이건 대통령의 명령이다. 즉각 돌아가라!”
내란을 막아야 했다. 서울을 장악한 부대와 외곽 사단이 충돌하면 곧바로 대규모 무력 충돌로 이어질 상황이었다. 가까스로 외곽 사단의 진입을 막고 있는데 노재현 국방부 장관과 연락이 닿았다. “노 장관, 지금 어디 계십니까?” “국방부에 와 있습니다.” “이렇게 일이 진행되고 있는데 알고 있습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대통령이 계신 이곳으로 오지 않는 겁니까? 오십시오.” “못 가겠습니다. 지금 총격전이 벌어지고 양쪽이 대치하고 있는데 어떻게 갑니까?”
신현확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거기 가면 나와 같이 오겠습니까?” “아, 그러면 같이 가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내가 가겠습니다. 대기하고 계십시오.” 대치 중인 양측 군을 한데 묶으려면 그 길밖에 없었다. 그가 일어나자 최규하 대통령이 말했다. “정말 가주시겠습니까?” “가야지, 그럼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 그러면 잘 부탁합니다.”
그가 차를 타고 종각 부근을 지날 무렵 탱크가 길을 막아섰다. 군인들이 차 문을 열어젖히며 총부리를 들이댔다. “누구냐? 어디 가는 거야!” “나 국무총리 신현확이다!” “돌아가십시오!” 아무리 소리쳐도 막무가내였다. “저희는 상부 명령을 받고 있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 돌아가십시오!” “중대장 어디 있어? 당장 연결해!”
바리케이드를 통과할 때마다 비슷한 소동이 반복됐다. 탱크 앞에서 “나는 국무총리다!”라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쇠사슬이 끊어지는 소리 같았다. 닻은 점점 끌려가고 있었다. 그가 국방부에 도착한 것은 새벽 3시 50분경이었다. 국방부 현관은 총격전으로 부서져 있었고 사방에 유리 파편이 흩어져 있었다. 그를 뒤따르던 국방부 장관의 차는 도중에 무장 병력에 가로막혀 보안사령부 앞에서 멈춰 섰다.
그는 결국 그곳에서 수사 착수 건의서에 결재했다. 최규하 대통령도 끝내 서류에 사인했다. 그것을 보며 그는 허탈함을 느꼈다.
신현확은 두 번의 역사적 순간에 ‘닻’이 되려 했다. 김재규의 총구 앞에서는 시신 확인을 요구했고, 전두환의 군사반란 앞에서는 외곽 사단의 진입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닻 하나만으로는 부족했다. 대통령은 우유부단했고, 국방부 장관은 무력했으며, 군부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헌정 질서는 제도만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결국 사람들의 의지와 용기가 버텨내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그날 밤 뼈저리게 깨달았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2024년 비상계엄이 선포되던 그날 밤, 국무회의장에서 한덕수 총리는 무엇을 했을까. 닻이 되려 했는지, 아니면 돛이 되어 폭풍에 몸을 맡겼는지. 역사는 다시 한번 답을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