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1학년 때였다. 우연히 친구의 아버지 사무실에 간 적이 있었다. 법률사무소였다. 서기의 책상 위에 법률 서류들이 놓여 있었다. 그중 하나를 무심히 들춰 보았다. 교통사고가 두 장의 종이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어떻게 하나의 사건이 이렇게 글로 압축되어 있을 수 있을까. 경이로웠다. 나도 세상을 백지 안에 그리고 싶었다.
내가 변호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우연히 찾아간 감옥 안에서 한 죄수가 물었다. “변호사법 제1조에 인권옹호와 사회정의가 변호사의 임무로 나와 있는데, 인권옹호는 알겠어요. 변호하는 거니까. 그런데 ‘사회정의’는 뭘 하라는 거죠?”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질문을 한 죄수는 이렇게 답을 말했다. “변호사는 일반 기자들이 들어올 수 없는 감옥 안 풍경이나 사건의 이면을 봅니다. 은폐된 살인이나 고문 같은 거죠. 그걸 세상에 고발하는 겁니다. 저는 그걸 사회정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감옥 안에서 교도관들이 밤에 한 죄수를 집단으로 때려 죽인 사실을 얘기했다. 변호사로서 뭘 해야 하는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는 맞아 죽은 죄수의 사건을 법정에서 폭로했다. 그날 저녁 공판 담당 검사한테서 전화가 왔다. “왜 관계없는 걸 말하죠? 너무 공명심이 강한 것 같으네요. 변호사를 계속할 생각입니까?” 가슴이 막혔다. 그 며칠 후 법무차관이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고교 선배였다. “만 명이 넘는 교도관의 사기가 꺾일 수 있어. 그러니 입을 다물어 주게.” 충고가 아니라 협박 같았다. 주먹 같은 게 속에서 울컥 올라왔다.
법무부에서 보도자료를 냈다. 다음 날 <조선일보>에는 작은 박스 기사가 났다. 변호사의 ‘공명심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신문지가 흔들렸다. 나는 손을 떨고 있었다. 재판장의 귀는 막혀 있었다. 냉소와 비웃음만 돌아왔다. 나는 기록자가 되기로 했다. 글을 썼다. 시사잡지 <신동아>에 기고했다.
몇 년 후 정권이 바뀌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생겼다. 위원회는 내가 쓴 글을 자료로 삼아 최초의 의문사 판정을 했다.
변호사 생활 10년쯤 됐을 때였다. 여러 법정을 다녔다. 재판장의 모습들은 다양했다. 오만한 판사도 있었고 겸손한 사람도 있었다. 높은 자리에 앉아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도 있었고,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천사 같은 존재도 보였다.
나는 법정에 들어갈 때마다 담당 재판장의 말이나 행동을 세밀하게 메모했다. 그 내용들을 종합해 ‘좋은 판사, 나쁜 판사’라는 제목으로 200자 원고지 70장 분량의 글을 썼다. 그것을 시사잡지 <월간조선>에 기고했다. 그 글이 발표되자 법원에서 난리가 났다. 대법원 공보관이 잡지사에 항의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들은 내가 변호사를 계속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판사들에게 나는 기피 인물이 되어버렸다. 미리 계산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냥 내질렀다. 어떤 존재가 내 등을 그냥 민 것 같았다.
오만한 재판장이 있었다. 변호사를 깔아뭉개고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재판 도중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이 사건을 조정으로 끝냅시다. 합의를 이룰 금액이 다르네요. 엄상익 변호사가 그 차액을 내시죠.” 이해할 수 없었다. 변호사는 일한 품삯을 받을 뿐이다. 품꾼에게 주인의 빚을 갚으라는 소리였다. 농담인가? 장소도 법정이었다. 재판장은 나보다 나이도 어렸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은은하게 분노가 타올랐다. “좋습니다. 그러면 재판장도 돈을 내시죠. 같이 내고 합의시킵시다.”
그 순간 그의 눈에서 파란 불길이 일었다. 그의 말은 합의를 강요하는 시도였다. 내가 엉뚱하게 튀었다. 나는 좋은 변호사가 아니었다. 의뢰인을 보지 않았다. 내 감정이 먼저였다. 의뢰인은 나를 해임하지 않았다. 나는 재판장의 오만을 글로 써서 시사주간지에 기고했다. 한 달쯤 후 다시 법정이 열렸을 때였다. 법대 위 재판장의 손에 주간지가 들려 있었다. “이 기사에 나오는 L 판사는 나를 가리키는 거죠? 이따위로 쓸 겁니까?”
나는 바로 맞받아쳤다. “대한민국에는 언론의 자유가 있습니다. 왜 법대 위에서 그런 말을 하죠? 재판장의 지위를 이용해서 사건에 관계없는 그런 말을 하는 건 직권남용 아닌가요?” 내 옆에서 지켜보던 의뢰인이 소리쳤다. “얼마든지 나쁘게 판결하쇼. 내가 돈으로 대가를 치를게.”
변호사를 하면서 40년을 기록자로 살아왔다. 지금은 노인이 되어 동해 바닷가에서 계속 글을 쓰고 있다. 누가 나에게 ‘기록하라’고 했을까? 사회정의를 묻던 죄수일까. 아니면 그분이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