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사회

[이택순의 아무르 답사21] 남만주철도, 격돌하는 제국주의

하르빈역 야경, 러시아의 건축과 문화유산을 엿볼 수 있다. <사진 이택순>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여행자에게 대륙을 넘나드는 낭만의 철도였다. 이름도 생소한 동청철도(東淸鐵道)와 남만주철도는 만주지역의 편리한 교통망에 불과했다. 러시아와 만주지역을 답사하기 전의 단순한 생각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다. 하르빈역에 내려서면서 만주지역 세 철도망의 역사적 실체를 재조명할 시각을 가지게 된다.

극동지역의 지정학적 균형을 뒤흔드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공사는 1891년 5월 러시아 동부와 서부지역에서 동시에 시작되었다. 1만여 Km에 달하는 방대한 공사 규모는 언제나 끝날 수 있을 것인지 예상조차 쉽지 않았다.

극동지역 우수리 구간(블라디보스토크-하바롭스크) 중 일부인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까지는 공사가 순조로웠다. 1891년 착공하여 2년 만인 1893년 개통되었다. 이 구간에 고려인(이주조선인)과 중국인 노동력이 집중 투입되었다. 이 공사장에 취업하기 위해 조선에서 연해주로 입국하는 고려인들이 급증하게 된다. 접경 지역 함경도의 백성들은 아사지경이었다.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는 것은 오늘날 탈북 행렬이나 비슷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역의 시베리아횡단철도 기념기관차 <사진 이택순>

우수리스크-하바롭스크(우수리 구간)까지는 4년 후인 1897년 11월 완전 개통되었다. 그러나 하바롭스크-치타 구간은 영구동토의 아므르강(흑룡강) 연안을 통과하는 최난도의 공사로 진척이 매우 부진하였다. 횡단철도의 조기 개통을 위해서는 러시아 치타에서 중국 만저우리를 통과하여 하르빈-우수리스크-블라디보스토크로 연결하는 지름길이 대안이었다.

청국으로부터 만주를 통과하는 지름길(동청철도/동중철도/만주횡단철도)의 인가를 어떻게 받아낼 것인가? 청일전쟁을 중재하고 난 후 러시아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1896년 5월 니콜라이 2세 황제 대관식에 청국 총리 리홍장(1823-1901)이 참석했다. 러시아 재무장관 비테는 리홍장에게 만주횡단철도(동청철도) 부설권을 요구했다. “일본이 중국을 또다시 침략하면 우리가 3일 안에 군대 10만 명을 보낸다. 만주를 관통하는 철도를 허락해 달라”

두 사람 사이에 중국 영토 내의 동청철도(TMR,동중철도/만주횡단철도) 부설권을 러시아에 부여하는 비밀협정(1896년 모스크바조약)이 체결되었다.

1897년부터 러시아는 만주횡단 동청철도공사를 서둘렀다. 난공사인 서쪽 구간 이르쿠츠크-치타(자바이칼 구간/치타 구간)까지도 1901년 초 건설 완료되었다. 동청철도구간의 건설공사 작업 속도를 가속했다. 1903년 만주횡단 철도가 마무리에 들어갔다. 드디어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아무르강을 피해 만주로 우회하며 개통된 것이다.

시베리아횡단(TSR), 만주횡단(TMR), 남만주철도 <출처 코레일사보>

동청철도 건설공사 중간인 1897년 11월, 중국 산둥성 거즈이에서 독일인 신부 2명이 중국인에 의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제국의 야망가 독일 빌헬름 2세 황제는 이 기회를 틈타 해군 동양함대를 파견하여 산둥성의 청국 해군기지 교주만을 포격하고 점령하였다.​

이듬해 3월에는 청국과 독일 간에 조약을 체결하고, 교주만을 99년간 조차하고 청도(칭다오)항 이용권을 획득한다. 후발 제국의 욕심은 칭다오-제난 철도부설권을 획득하여 산둥성 전체를 독일의 무역거점과 경제 세력권화 한다. 무력으로 거의 강탈하는 수준이었다. 산둥성의 현재 인구가 9천5백만 명에 달해있음을 볼 때 얼마나 큰 이권을 강탈한 것인지 짐작이 간다.​ 이 사건은 제국주의 열강들 간에 중국 이권침탈의 도미노 현상을 가져왔다.

​독일에 뒤질세라, 1898년 러시아는 요동반도 뤼순과 대련항을 25년간 조차하고, 동청철도에 연결되는 남만주철도(대련-센양(봉천)-창춘(장춘)-하르빈) 부설권을 감언이설로 빼앗는다. 1898년 말부터 러시아군이 요동반도에 주둔을 시작하고, 러시아 태평양함대가 배치되었다. 뤼순(여순)에 관동주(크반툰스카야주) 총독을 파견하고 행정권과 사법권을 행사하며 관동법원을 설치했다.

하르빈역 야경, 러시아의 건축과 문화유산을 엿볼 수 있다. <사진 이택순>

러시아는 만주를 종단하는 남만주철도 공사를 즉시 착공하였다. 1903년에 대련(여순)-선양(봉천)-창춘(장춘)을 거쳐 동청철도 거점 하르빈에 연결시켰다. 조기 개통을 위해 단선으로 연결시켰다. 남만주철도로 부동항 뤼순을 통해 황해로 진출하는 지정학적 우위를 단숨에 선점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일본은 동청철도의 연결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남만주철도(만철)가 공포 속에 실질적 위협으로 다가왔다. 완공되면 러시아의 대군이 서해와 한반도를 거쳐 일본을 기습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 좌불안석이었다.

일본도 즉각 대항전략을 수립한다. 1902년에는 해양세력의 맹주 영국과 동맹(영일동맹)을 맺어 집단방위력을 보강했다. 한반도에 철도를 부설하여 신속한 병력 이동과 병참선을 확보하는 전략을 추진한다. 이에 따라 부산-서울(경성) 간 철도를 1901년 착공하여 1904년 완공시킨다. 경의선도 착공하며 2년만(1906년)에 서울(경성)-신의주 노선을 완공하며, 북방세력(대륙세력)에 대항하는 해양세력의 대륙 통로를 확보하게 된다.

​일본은 첩보활동을 통해 남만주철도가 단선으로 왕복 운행이 사실상 불가하다는 취약점을 알았다. 원활한 병력수송과 전쟁물자 보급을 차단하기 위해, 주요 역의 교차 선로가 완공되기 전에 러시아를 선제공격하기로 결정했다. 1904년의 러일전쟁은 시베리아철도, 동청철도, 남만주철도가 초래한 지정학적 변화의 결과물이었다. 한반도와 만주에서 제국주의 국가간 격돌로 나타난 것이다.

​예상 외로 신흥국 일본이 승리했다. 일본은 삼국간섭의 치욕을 잊지 않고 와신상담 10년을 준비했다. 기습공격이 주효했다. 전쟁 후 일본은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고 을사보호조약(을사늑약)을 체결했다. 당연히 러시아로부터는 10년 전 빼앗긴 요동반도조차권을 되찾았다.

​더욱 중요한 전과는 남만주철도관리권을 양도받은 것이다. 장춘(창춘) 이남 관리권을 받은 일본은 철로의 폭을 러시아식 광궤(1,520mm)에서 일본식 표준궤(1,435mm)로 교체했다. 센양(선양, 봉천)-단둥(안동)-압록강-신의주를 연결하는 지선을 새로 건설하여 경의선과 연결시켜 한반도는 바로 만주와 직결되었다. 남만주철도(창춘-여순 간) 관리권으로 남만주 지역에 대한 일본의 실질적 영향력이 확보되었다. 일본은 남만주철도를 만주철도(만철)로 확대하여 대륙 침략의 교두보로 삼는다. 정치 군사적으로는 ‘관동군’, 사회경제적으로는 ‘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가 역할분담을 하였다.

하르빈역 주변 러시아풍 고층빌딩군

다만 북만주 지역 동청철도는 러시아에게 기득권이 인정되었다. 만주가 실질적으로 러시아와 일본의 영향권으로 분할된 것이다. 이는 1920년대 조선의 무장 독립운동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조선 독립군은 일본을 피해 러시아 영향권 북만주, 하르빈 주변으로 대거 이동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러시아를 계승한 소비에트 정부는 일본의 만주침략 이후, 1935년 동청철도의 운영권을 일본(만주국)에 매각하고 만주에서 손을 띤다. 북만주까지 일본의 영토화한 것이다. 1891년 시작된 세기의 대역사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우여곡절 끝에 25년 후 제1차세계대전 중 1916년 완공되었다. 철도 공사기간 25년 동안(1891-1916년), 동아시아와 러시아에는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러시아는 니콜라이2세 차르가 무너지고 소비에트 정부가 들어섰다. 청나라는 신해혁명이 일어나 멸망하고 중국은 대분열로 돌입했다. 조선도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독립 망명 지사들이 대거 만주로 이동한다.

시베리아횡단열차

시베리아 횡단, 동청, 남만주철도는 그 탄생과 성장이 한 뿌리에서 파생한 정치 군사적 철도였다. 대륙의 철도 삼형제는 1945년 2차대전 종전까지 일본의 대륙침략, 조선의 독립운동, 중국의 내전, 러시아혁명에 지대한 지정학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동청철도, 우수리스크-하르빈 구간을 답사하며 체득한 소중한 결론이었다.

이택순

전 경찰청장, '이택순의 실크로드 도전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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