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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기자협회(Asia Journalist Association, AJA) 언론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창간한 온라인 뉴스플랫폼 ‘아시아엔’은 올 한해 아시아 주요 공동체와 각 국가들을 관통한 주요 이슈들을 조명합니다. – 편집자
[아시아엔=기나 할릭 레바논 라하매거진 기자] 레바논이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환율 불안정으로 심화된 경제 위기가 국가 존립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레바논은 국가 구조조정의 교착,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안보 위협, 국가적 근간을 뒤흔들고 있는 인도주의적·사회적 압박이라는 삼중고와 마주하고 있다.
IMF 범주에서 한 참 벗어난 구조조정, 누가 책임질 것인가
레바논의 국가 개혁은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줄다리기 범주를 넘어선 지 오래다. 국가 경제가 위기를 넘어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는 가운데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온갖 장애물들이 산적해 있다. 새 정부가 자본 이동을 규제하는 자본통제법 승인, 금융 부문 구조조정, 공공 기관의 책임성 강화 등을 단호히 시행할 것이라 밝혔지만, 종파 간 안배와 기득권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금융의 붕괴다. 수년 간의 지연에도 불구하고 IMF와의 협상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룩하지 못했다. 손실을 명확히 규명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묻는 조치들이 수반돼야 하지만 기존 정치권과 금융권 엘리트의 이해관계에 반하면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레바논 국민들은 지금도 예금을 인출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국가의 신뢰도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나마 허락된 것은 개혁이 아닌 붕괴의 속도 조절이다. 국가는 대규모 봉기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공공 서비스만 유지한 채 근본적인 개혁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근본적인 개혁은 구 체제의 붕괴를 의미하기에 의도적으로 차단되고 있다는 의구심마저 들고 있다. 이러한 교착 상태로 인해 국가의 부정부패가 지속되고 있으며, 국제 원조나 차관으로 유입되는 모든 달러도 기득권의 배를 불리는데 사용되고 있다.

모든 이해관계 배려하는 균형점, 불가능에 가깝다
더욱 암울한 점은 경제 위기와 안보 위기가 불가분의 상황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남부 전선 일대의 헤즈볼라 위협은 레바논의 중대한 위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더 큰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는 공포가 국가 전체를 에워싸고 있다.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오늘날의 레바논은 대규모 군사 충돌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이러한 공포는 심리적 불안감을 넘어서 현실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관광 산업이 사실상 멈췄고, 외국인 직접 투자가 후퇴했으며, 국경 지대의 농업도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레바논 정부는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프랑스, 카타르 등이 주도하는 국제·역내 이니셔티브가 추진되고 있며, 유엔 안보리 결의 1701호의 일부 이행과 긴장 완화를 위한 대책들이 마련되고 있다. 레바논 정부는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완충지대 설정, 병력 배치, 적대세력 간 직접 접촉을 막기 위한 메커니즘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협상의 한계점도 분명하다. 외부 세력은 레바논 내부의 안정이 아닌, 이란의 영향력과 직결된 광범위한 역학관계를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헤즈볼라의 무장 해제를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지만, 헤즈볼라의 무장 여부는 역내 지정학적 이해관계와 긴밀히 얽혀 있으며 레바논의 현실 정치와도 상충한다. 즉,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이스라엘 북부 국경 지대의 안정을 보장하면서 헤즈볼라의 역내 영향력이 유지돼야 하며, 또 레바논 내부의 정치적 격변을 억제하는 지점 말이다.
가장 큰 불안요소는 외교의 실패다. 앞서 설명한 모든 사례들이 균형을 맞추면서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협상이 좌초돼 남부의 긴장이 높아질수록 레바논의 개혁은 더욱 더 요원해질 것이다.
인재는 유출되고 난민은 유입되는 악순환, 사회기반 붕괴 가속화
정치권의 계산기 싸움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시민들의 삶은 그보다 훨씬 더 가혹하다. 과거의 레바논은 한때 ‘중동의 스위스’라 불리기도 했지만, 현재의 레바논은 중산층이 어떻게 붕괴되는지, 평범한 일상이 어떻게 생존 투쟁으로 전락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교본이 됐다.
각종 지표들 중에서도 특히 청년 실업률은 재앙에 가까운 수준이다. 걸프 국가, 유럽, 북미로의 인력 유출은 일시적인 변수가 아니라 상수에 가깝다. 국가 재건에 반드시 필요한 인적 자본이 지속적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반대로 시리아·팔레스타인 등지에서의 대규모 난민 유입은 붕괴 직전인 사회 기반 시설에 막대한 부담을 주고 있다. 전기, 수도 등과 같은 공공 서비스도 이 같은 압박 속에서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다. 인도주의적 위기가 사회적 압박으로 전환되면서 공공재를 둘러싼 원주민과 이주민 간의 긴장도 높아지고 있다.
자산의 대부분을 잃은 평균적인 레바논 국민들은 새 정부의 출범에 그리 큰 감흥을 느끼진 못할 것이다. 국민들은 새로운 체제 하에서도 상시 전력, 깨끗한 식수, 교육이나 의료 같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정치권의 권력 다툼에서 출발한 투쟁이 국민의 생존권을 둘러싼 투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고통스러운 교착이 지속될 것인가, 대혼돈을 맞이할 것인가
레바논의 앞날에는 두 갈림길이 놓여 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고통스러운 교착’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다. 정부는 국제 공여국을 부분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제한적이고 피상적인 개혁을 실행할 것이다. 완전한 붕괴는 막아내겠지만 실질적인 회복도 불가능할 것이다. 일정 수준의 관리 하에 남부 지대의 긴장이 전면전까지 비화되진 않겠지만, 국민들은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빈곤의 심화, 이주 가속화 등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혼돈의 붕괴 또는 안보 위기 촉발’이다.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낮지만 배제할 수도 없다. 금융 시스템의 완전한 붕괴 또는 남부에서의 전면전을 통해 전개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레바논은 지금껏 겪었던 그 어떤 어려움보다 더 한 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남아 있는 마지막 희망은 시민사회의 회복력과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압박이다. 국가 전체에 깊숙이 뿌리내린 기득권이 해체되지 않는 한, 정부는 진정한 개혁을 실현할 수 없을 것이다. 레바논은 그 날이 올 때까지 젊은 세대의 희망과 에너지에 기생하며 심연을 맴돌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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