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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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윈난인이 기리는 ‘철기 이범석 장군’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2009년 여름의 얘기다. 상하이의 여름은 찌는 듯이 더웠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가슴 사이로 땀이 줄줄 흘러 내린다. 더위를 피해 윈난성 쿤밍(昆明)으로 발길을 돌렸다. 상하이에서 쿤밍까지 기차로 장장 33시간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이었다. 쿤밍에 도착하니 거짓말처럼 전형적인 천고마비(天高?肥)의 날씨였다. 아침에는 냉기를 느끼기까지 했다. 쿤밍은 사시사철 온도가 봄날처럼 온화하여 ‘춘성(春城)’이라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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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중국 대학생들의 ‘내무 생활’
중국 대학생들은 캠퍼스 안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것 같다. 베이징 대학의 아름다운 웨이밍후(未名湖)를 비롯하여 칭화대, 상하이의 화동사범대, 난징 사범대 등 대부분의 대학들은 크건 작건 간에 인공 호수나 아담한 연못 등이 있다. 이곳에서 낚시를 하는 ‘백수’ 아저씨들도 종종 보인다. 벚꽃이 만개한 캠퍼스 호숫가의 밤은 절경, 그 자체다. 호숫가 벤치, 잔디, 운동장 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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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현의 중국이야기] 레이펑은 누구인가
“나의 삶은 유한하나, 인민을 향해 봉사하려는 나의 마음은 무한하다.” “나는 국가와 인민을 위해 영원히 녹슬지 않는 작은 나사못(螺??)이 되겠다.” 레이펑(雷?, 1940~1962)의 일기에 보이는 글이다. 레이펑, 그는 누구인가. 레이펑은 후난(湖南)성 창사(長沙) 출신으로 본명은 레이정싱(雷正?)이다. 빈농의 가정에서 자라난 그는 7세에 부모를 여의고 삼촌 밑에서 자라났다. 1957년 공청단(共靑團)에 가입했다. 1960년에 키 154cm, 몸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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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원자바오의 일갈 “공산당 최대 위기는 부정부패”
“공금으로 담배를 사고 술을 마시며, 선물을 구입하는 행위를 엄격히 규제한다.” 지난 3월26일 국무원 제5차 청렴행정 추진회의에서 원자바오(?家?) 국무원 총리가 강조한 말이다. 언론에 보도된?그 연설문의 골자를 간추리면 이렇다. “밀실 행정은 부패의 온상이다. 행정 업무를 상당 부분 공개해야 한다. 국민이 정부를 감독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오늘날 부패현상은 행정 기구, 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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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현의 중국이야기] 호사다마(好事多魔)와 호사다마(好事多磨)
강의 중 한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용어를 칠판에 쓸 기회가 생겼다. 그러자 중국 학생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선생님! ‘마(魔)’자가 틀렸어요. 그렇게 쓰면 안돼요.”라고 요란스레 떠들어댄다. 순간, 영문을 몰라 당황하였다. 한 학생을 지명하여 앞으로 나와서 ‘마’ 자를 직접 칠판에 써 보라고 하였더니, ‘갈 마(磨)’ 자를 쓰는 것이었다. 중국 성어사전을 찾아보니 동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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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현의 중국이야기] 한중수교 20년 성과와 반성
겉으로 보기에는 등을 돌린 것 같지만 끈끈하고도 질긴 남녀 간의 애정관계를 연근(藕根)에 비유하여 ‘어우뚜완쓰렌(藕???)’이라고 한다. 한중 양국도 이와 비슷한 사이가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단시간 내 이렇게 여러 분야에서 교류의 불길이 활활 타오를 수 있을까? 1992년 8월24일 한국과 중국 간에 역사적 수교가 이뤄졌다. 그리고 올해로 만 20년을 맞이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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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현의 중국이야기] ‘돈에 목숨 건’ 장자제 가마꾼
장자제(張家界) 정상에서 왼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암벽에 자신의 몸을 밧줄로 묶은 채 공중에서 ‘괴성’을 지르며 곡예를 하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바위와 허공을 벗 삼아 물구나무를 서기도 하고 수직의 바위를 뛰어오르기도 한다. 참으로 아찔한 광경이다. 이 사람을 현지인들은 ‘즈주런(蜘蛛人, 거미 인간)’이라 부른다. 소수민족의 일파인 이들 ‘산족(山族)’ 사람들을 고용하여 눈길을 끄는 중국인의 상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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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장안의 달’이 보고 싶거든 달려오라
장안일편월(長安一片月) 만호도의성(萬戶搗衣聲) 이백의 자야오가(子夜吳歌)라는 시의 일부이다. 사랑하는 낭군을 전쟁터에 보내고 잠 못 이루는 밤, 방망이질 하며 남편이 돌아오기만 학수고대(鶴首苦待)했던 장안의 여인네들. 독수공방, 젊은 아녀자의 애끓는 한(恨)이 방망이 소리와 함께 짙은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그때나 지금이나 장안(섬서(陝西)성 성도, 서안의 옛 지명)의 달은 변함이 없으리라. 천년도 훨씬 더 지난 지금 다듬이돌을 두드리던 여인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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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현의 중국이야기] 다이아몬드급 ‘식모’
1960년대~1970년대 우리나라에는 가정부가 존재하였다. 이들은 ‘식모(食母)’라는 이름으로도 불려졌다. 한 때 귀에 익숙했던 식모라는 이름이 지금은 왠지 낯설게만 느껴진다. 당시 사회를 되돌아보면 참으로 처량하였다. 집집마다 형제자매들은 많고 먹을 것은 귀했다. 5남매, 6남매 이상은 기본이었다. 한 입이라도 덜기 위해 남의 집이나 먼 친척 집에서 ‘식모살이’를 해야 했다. 우리의 가난한 집 딸들은 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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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조선족 ‘붕어빵 사장’ 한광석 이야기
한광석(韓廣石)은 조선족이다. 흑룡강성 칭안현(慶安)출신으로 나이는 마흔 네 살이다. 1996년 처음 한국에 들어온 이후 지금은 안방 드나들 듯한다. 그야말로 그에게 있어서 한국은 어머니의 품같은 따뜻한 곳이다. 고등학생 딸을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내외를 비롯하여 누나 등 온 집안 식구들이 한국 전역에서 ‘활약’하고 있다. 아내는 뷔페에서 먹고 자며 한 달에 170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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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영원한 왕따 한유에서 ‘태두’ 유래
‘태두(泰斗)’란 용어는 국어사전에 의하면, ‘어떤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간략히 기술돼 있다. 이 설명만으로는 다소 부족한 느낌이 든다. 일반적으로 이 말은 예술이나 사상, 학문 분야 등에서 독창적 계보를 이루었거나 독보적 업적을 남긴 인물을 지칭한다. 이와 일맥상통하는 용어로 조종(祖宗), 비조(鼻祖), 개산조사(開山祖師), 거성(巨星), 거목(巨木), 최고봉(最高峰) 등이 있다.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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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책벌레, 증국번(曾國藩)
“정치를 배우려거든 ‘증국번’에게서 배워라.” 2003년 1만8000곳 가까이 존재하던 한국의 빵집이 지금은 4000여 곳이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빵집 자영업은 거의 ‘학살’ 수준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마침 집앞 크라운제과를 지날 때 ‘급매’라고 조그맣게 매직펜으로 쓴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잔뜩 만들어 놓은 빵이 팔리지 않아 속이 새까맣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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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현의 중국이야기] 한중수교 20돌과 노파(老婆)의 유래
우리나라에서 자기 아내를 남에게 말할 때는 안 사람, 안 식구, 아내, 집 사람, 아내, 그리고 처(妻)라고 한다. 약간 비하하는 표현으로는 마누라, 여편네 등이 있다. 바가지를 긁을 때는 특히 경멸조로 “이 망할 놈의 여편네”라고 쏘아붙이기도 한다. 거기에 ‘년’자 대신 ‘놈’자는 왜 들어가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한 마누라와 오래 살다보면 가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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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속물’ 제갈량의 아내는 추녀(醜女)
제갈량(諸葛亮, 181~234년) 이라는 인물은 나관중의 입담이 더해져 우리에게 매우 신묘막측한 인물로 다가온다. 또한, ‘촉상(蜀相)’이라는 시를 남긴 두보 등을 비롯한 소인묵객(騷人墨客) 들에 의해 사심(私心) 없는 인물, 군주를 받드는 충직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이러한 영향 탓인지 중국사람 못지않게 우리나라 사람들도 제갈량에 꽤 매료(魅了)돼 있다. 비디오로 제작된 대하 드라마 <삼국지>를 보면 ‘왕의 남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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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현의 중국이야기] 두 팔이 없는 피아니스트 ‘류웨이’
류웨이(??)는 지난 2010년 제 1회 중국 달인(達人)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25살의 젊은이다. 그는 두 팔이 없는 피아니스트로 통한다. 그가 두 발로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간 자서전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축복(活着已?得祝福 )>이라는 책이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의 불굴의 삶을 잠시 들여다보자. 류웨이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10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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