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달 1월(January)은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Janus)의 달이다. 야누스의 두 얼굴은 이중인격이 아니다. 오히려 그 두 얼굴은 인격의 진실을 나타낸다. 선과 악을 함께 지닌
Author: 이우근
[이우근 칼럼] 설레는 늙음, 서글픈 낡음
“젊음이란 인생의 어느 한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젊음은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장밋빛 뺨, 앵두 같은 입술, 유연한 무릎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이우근 칼럼] 모든 것을 빼앗긴 자유
<암병동> <수용소군도>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등으로 옛 소련의 참혹한 인권상황을 고발한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스탈린을 비판했다는 죄목으로 재판에 넘겨져 사형선고를 받고, 시베리아의 강제수용소 굴라크(Gulag)에
[이우근 칼럼] 참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의 가벼움
옛 유대교의 예루살렘 성전이 서 있던 자리에는 지금 이슬람의 모스크인 알아크사 사원(Al-Aqsa 寺院)이 서 있다. 지난 10월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수천 발의 미사일을 퍼부은
[이우근 칼럼] 거듭난 ‘삶’의 대림절, 거듭난 ‘영성’의 성탄절
지금의 이란 북부지역인 고대 파르티아(Partia) 제국의 점성가들, 그 동방박사들은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한낮의 무더위와 칼바람이 살을 에는 한밤의 추위를 견뎌내며, 독충과 전갈과 독사가 우글거리는 열사(熱沙)의
[이우근 칼럼] 성탄절과 선지자 이사야의 외침
선지자 이사야는 구약성서에서 이미 신약의 그리스도론을 펼치고 있다. 신약성서는 100개 이상의 구절들을 이사야서에서 인용한다. 사도요한은 증언한다. “이사야가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고 그 마음을 완고하게
[이우근 칼럼] 수도사 텔레마쿠스의 죽음
콜로세움의 핏자국 고대 로마의 휴일은 축제일이었다. 특히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개선장군의 환영행사는 매우 성대하게 치러졌는데, 아피아 가도(街道)를 뒤덮는 장엄한 개선행진에 이어 루디(ludi)라고 불리는 전차경주가 열리거나
[이우근 칼럼] 지성소와 십자가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을 굶주리며 사탄의 유혹을 받았다. 떡으로 표상(表象)된 현실의 축복,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적의 축복, 사탄에게 영혼을 팔아넘겨서
[이우근 칼럼] 민족주의와 데모크레이지(democrazy)
민주주의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독재권력이나 군사쿠데타 때문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대중영합주의의 고착화에 따른 정치의 타락현상이다. 포퓰리즘 사랑에는 여야가 따로
[이우근 칼럼] 영화 ‘천국의 아이들’
아홉 살 소년 알리는 두 살 아래 여동생인 자라의 신발을 수선하러 갔다가 길에서 신발을 잃어버린다. 알리와 자라는 알리의 신발 한 켤레를 둘이서 번갈아 신으며 오전반
[이우근 칼럼] 우상이 쓰러질 때
경험주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신기관>(Novum Organum)에서 인간의 지성을 그르치는 우상 네 가지를 제시했다. 즉 △독단적 선입견에 갇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바깥세상을 외면하는 동굴의 우상(idola specus)
[이우근 칼럼] 두 ?’믿음’에 관한 여러 해석
수도원에서 엄격한 금욕생활에 몰두했지만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 없었던 가톨릭 수도사 마르틴 루터는 로마를 순례하던 중에 빌라도의 스물여덟 계단을 주기도문을 외우며 무릎으로 기어올랐다고 한다. 어떤
[이우근 칼럼] ‘기복과 형통’ 대신 ‘회개와 고난’으로
[아시아엔=이우근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영국의 종교개혁자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는 체코의 순교자 얀 후스(Jan Hus)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얀 후스는 독일의 마르틴 루터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우근 칼럼] 영성 깊은 인문정신 어디 없소?
[아시아엔=이우근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고등학교 시절, 교실 정면의 칠판 위에 교훈(校訓)이 걸려있었다. ‘자유인?문화인?평화인’… 3년 내내 교실을 드나들며 무심히 바라보곤 했던 글귀가 두터워지는 나이테와 함께 점점
[이우근 칼럼] 카타콤의 정결한 어린양
로마시 외곽에 있는 카타콤의 지하교회는 바티칸 광장에 웅장하게 서 있는 베드로성당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초라한, 순교의 핏자욱이 널려있는 고난의 현장이다. 바티칸에 소속된 안내 신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