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우상이 쓰러질 때

2016년 3월 우크라이나 거리에 쓰려져 있는 레닌 동상

경험주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신기관>(Novum Organum)에서 인간의 지성을 그르치는 우상 네 가지를 제시했다.

즉 △독단적 선입견에 갇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바깥세상을 외면하는 동굴의 우상(idola specus) △인간을 만물의 척도로 여기고 세상만사를 오로지 인간중심으로 생각하는 종족의 우상(idola tribus) △장터에 떠도는 헛소문처럼 언어의 잘못된 해석이나 부적절한 사용으로 오류에 빠지는 시장의 우상(idola fori) △무대 위의 가짜 현실에 몰입된 관객처럼 그릇된 환상이나 권위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극장의 우상(idola theatri)이 그것이다.

?무대 위를 펄펄 날며 현란한 이벤트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연예계의 아이돌(idol)은 현대사회의 우상이다, 그렇지만 얄팍한 감성과 환상적인 약속으로 요란한 추종세력을 몰고 다니는 정치·종교·지성계의 우상들은 병균처럼 위험한 존재다.

그중에서도 가장 해로운 것이 대중정치의 우상이다. 국민의 일상적 삶과 미래세대를 직접적, 현실적으로 위협하는 독성(毒性)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곁에는 우상의 손길이 연출하는 반지성적 판타지에 넋을 잃고 우신예찬(愚神禮讚)을 목청껏 외쳐대는 광신(狂信)의 무리가 있기 마련이다.

?오늘 이 땅에는 베이컨의 우상 넷이 모두 뛰쳐나와 한꺼번에 설쳐대는 모양새다. 여야 가릴 것 없는 폐쇄적 파당 정치, 독선과 배타(排他)의 이기주의, 위선과 궤변의 정치구호, 대중을 홀리는 포퓰리즘의 선전?선동 말이다.

종족의 우상은 원래 사람 중심의 ‘인간적 편견’을 뜻하는 것이지만, 이념·지역·세대·계층으로 갈가리 찢긴 우리 사회의 파편들은 마치 저마다 별개의 종족인 것처럼 서로를 적대시하는 ‘비인간적 편견’으로 피 터지게 싸우고 있다. 세상에 이토록 살벌하고 미련한 종족분쟁이 또 있을까? 베이컨도 알지 못했던 별종의 우상이 새롭게 나타난 듯하다.

?’진리는 영원한 자연과 경험의 빛으로 얻어지는 것’임을 깨달은 베이컨은 ‘옛사람이 가르친 바른길을 벗어나지 않고, 동시대인이 외치는 혁신도 경멸하지 않는 중용’을 강조했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아니라 그 융화를 말한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융화는커녕 오히려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으로 거의 내전에 가까운 이전투구를 벌이는 중이다.

정치꾼들은 엄밀한 과학마저도 제멋대로 비틀어댄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후쿠시마 오염처리수의 안전성을 확인한 검증결과를 내놓자, 야당일 때는 오염처리수의 해양 방류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집권당이 되자 이를 적극 허용하는 태도로 돌아서는가 하면, 여당일 때는 오염처리수 방류가 ‘일본의 주권적 사안’이라면서 ‘IAEA의 검증기준에 맞는다면 반대하지 않겠다’고 하던 사람들이 야당이 되자 이를 뒤집고 국제기구에 온갖 모욕적 비방을 퍼붓는다.

정치인들의 양심 불량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국민을 ‘분별력 없는 선동의 대상’쯤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 주권 무시의 태도가 여간 괘씸하지 않다.

국가안보의 기둥인 외교?국방정책도 공허한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고, 민생을 보듬는 경제?복지정책도 정파의 득표전략으로 주무른다. 정치의 숱한 파행들을 법정에 떠넘기는데, 그 사법판단도 정파적 이해에 휘둘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사법독립원칙은 교과서에 활자로만 남아있는 듯, 법조계 한 귀퉁이의 아리송한 무리가 사법부의 판단을 좌지우지하려 든다.

정치윤리가 바로 서지 못한 나라에서는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지 못한다. 힘없는 민초(民草)들은 이성과 경험의 빛이 차단된 우상의 동굴에 갇혀 원리주의의 도그마를 암송하는 광신의 무리로 사육(飼育)된다.

?올해는 광복 78주년, 대한민국 건국 75주년이다. 일제의 패망과 함께 맞은 광복은 건국으로 이어졌지만, 통일까지는 아직도 길이 멀다. 공산주의 유물론이 자유를 구속하는 우상의 족쇄가 될 것을 꿰뚫어 본 건국 주체들은 숱한 난관을 극복하고 자유민주공화국을 세웠다.

민족통일의 이념에만 매달렸더라면, 우리는 지금 만수대의 우상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신민(臣民)이 되어있을지 모른다. 북녘에는 식민제국의 사슬이 세습독재의 족쇄로 바뀌었을 뿐, 진정한 해방은 아직 오지 않았다.

오랜 굴곡의 역사 속에서 전쟁과 가난, 독재와 혁명을 거치며 우리 국민이 체득한 ‘영원한 자연과 경험의 빛’, 그 이성적 판단력과 경험적 분별력으로 한반도의 남북을 옥죄는 전제(專制)와 억압, 정치적 선동과 거짓의 우상을 깨뜨려야 한다.

남녘과 북녘에서 도그마의 우상들이 쓰러지고 광신의 무리가 사라질 때, 그제야 진정한 해방이, 가슴 벅찬 자유통일의 마지막 나라 세움(建國)이 이룩될 것이다. 우상을 쓰러뜨릴 힘은 남과 북의 민초(民草)들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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