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영성 깊은 인문정신 어디 없소?
[아시아엔=이우근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고등학교 시절, 교실 정면의 칠판 위에 교훈(校訓)이 걸려있었다. ‘자유인?문화인?평화인’… 3년 내내 교실을 드나들며 무심히 바라보곤 했던 글귀가 두터워지는 나이테와 함께 점점 더 또렷한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자유 없이 문화 없고, 문화 없이 평화 없다.
자유는 두렵다. 자유 앞에는 스스로 그리고 홀로 책임져야 하는 적막한 광야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자유와 권리는 개인성이 강하고, 책임과 의무는 공공성이 무겁다. 자유가 지나치게 강조되면 공공의 책임은 등한시되고, 서로의 탐욕이 부딪치는 상쟁(相爭)으로 치닫게 마련이다. 자유와 함께 책임을, 권리와 함께 의무를 짊어지는 사회가 성숙한 상생(相生)의 공동체다.
?인류 역사를 한마디로 말하면, 자유를 갈망하는 정신이 몸과 영혼을 옥죄는 온갖 억압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가슴 뛰는 문화의 골짜기를 건너 드넓은 평화의 벌판으로 나아온 핏빛 여정(旅程)이었다. 그대로 자유인?문화인?평화인의 눈물 어린 발걸음이다.
자유의 뜨락에 문화의 꽃길이 열리고, 문화의 길섶에 평화의 지평이 펼쳐진다.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평화를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문화요 인문(人文)정신이다.
인문은 인간다움을 뜻하는 라틴어 후마니타스(humanitas)에서 온 말이다. 한마디로 ‘인간다움, 시람됨의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문화의 꽃을 피운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그 당시 가장 진보적인 문화의 세기를, 인문의 시대를 열었다.
그 진보사상은 ‘근본으로 돌아가자’(Ad Fontes)는 보수적 가치에서, 그 ‘오래된 새로움’의 깨우침에서 비롯되었다. 보수?진보의 갈등이나 대립이 아니라 그 만남이요 화합이었다.
?인문정신은 개념이 아니다. 개념을 넘어 은유로 나아간다. 논리체계는 더욱 아니다. 논리를 뚫고 직관의 세계를 펼친다. 문학?역사?철학으로 이해되는 인문학에는 마땅히 예술과 종교가 포함되어야 한다.
유신론의 교리만이 종교가 아니다. 삶에 대한 궁극의 회의,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 인간 내면의 영성을 품고 있는 한, 무신론도 미지(未知)의 종교성을 지닌다. 르네상스는 예술로, 종교개혁은 영성으로 중세 암흑기를 밝혔다. 가장 뛰어난 은유와 직관의 세계인 예술과 종교를 사람됨의 길목에서 내칠 수 없다.
?기업인들이 경영과 인문학을 접목시키는 궁리에 골몰하고, 대학마다 최고경영자들을 대상으로 단기·속성의 인문학 강좌를 개설한다. 산업화의 물신(物神)과 이념의 도그마에 지친 한국 사회가 인문학에서 위로와 희망을 찾으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렇지만 인문학자들은 오히려 인문학의 위기를 걱정하고 있다. ‘부(富)의 인문학’ ‘주식투자와 인문학’ ‘취업 인문학’ 등 야릇한 제목을 내건 책들이 서점에 가득하다. 돈벌이에 눈이 뒤집힌 사이비 인문이요, 문화의 터전을 더럽히는 반(反)인문적 현상임에 틀림없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로 나아가는 우리 사회는 ‘인문공동체’가 되어야 하리라고 믿는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선진사회로 향하는 길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간역일 뿐, 그 자체가 종착역은 아니다.
선진화의 씨알은 인문정신에서 싹튼다. 삶에 대한 치열한 성찰,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균형 있는 역사의식, 타인에 대한 배려의 손길, 관용과 상생의 열린 정신… 그 질박한 인문의 토양이 나라와 사회의 품격을 드높인다.
?인문의 숨결에는 개인의 실존, 공동체의 모듬살이에 대한 엄숙한 물음과 결단이 배어있다. 인문정신은 성공이나 돈벌이가 아니라 사람됨의 길, 인간다움의 자리를 찾아가는 고독한 영혼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실용적 정보로 가득한 지식의 하드웨어가 아니다. 오래도록 묵히고 삭힌 지혜의 바탕자리다. 그 인문의 바탕자리에 비로소 평화가 깃든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평화는 아직 멀기만 하다. 공공의 이익과 공동선을 짓밟는 수많은 개인과 집단들이 자유와 민주의 이름을 내걸고 피 터지게 싸우는 중이다.
그 최전선에 포진한 정치꾼들 뒤에서 교육?문화?법조인들마저 편을 갈라 으르렁거리고 있다. 진실?양심?상식이나 법의 정의는 정파적 이해관계 앞에서 거꾸로 뒤집히고 참담하게 일그러진다.
?더욱 슬픈 일은, 문?사?철은 물론 예술계?종교계에서조차 품위 있는 문화의식, 영성 깊은 인문정신을 만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10대 후반, 그 젊음의 시절에 깊숙이 뿌리내린 자유인?문화인?평화인의 교훈이 반세기를 훌쩍 넘긴 황혼기에 이르도록 아직껏 꽃을 활짝 피우지 못하고 있는 것은 모름지기 인문의 징검다리가 부실한 탓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