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찬의 Asian Dream] 아야톨라 호메이니, 꺼지지 않는 불꽃
1979년 1월, 15년 전 새벽에 체포돼 추방당했던 종교지도자가 팔순 노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의 귀국은 팔레비 왕(Reza Shah Pahlavi)의 37년 철권통치가 종말을 고한 지 2주 만에 이뤄졌다. 일정이 몇 차례 지연되면서 1월31일 저녁이 되어서야 은백색의 에어 프랑스 특별기가 준비되었다. 비행기에는 호메이니(Khomeini)의 최측근 50여 명과 150여 명의 서방 언론인이 함께 탑승했다. 비행기가 파리공항을 이륙한 후 호메이니는 기내에서 조용히 예배를 올린 후 바닥에 담요를 깔고 잠을 청했다.
넓은 초원지대가 펼쳐져 있고 야트막한 구릉 지대에는 군데군데 흙집들이 웅크리고 있다. 그 뒤로 험준한 바위산이 비죽비죽 솟아 있다. 국외를 떠돌면서도 늘 가슴속에 품고 살던 풍경이었다. 급한 걸음으로 마을을 지나 동굴에 다다르자 눈앞에 홀연히 한 사람이 나타났다. 흰옷에 금색 허리띠를 두르고 지팡이를 들고 있는 그는 나이를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풍모를 보면 노인 같기도 하고 눈빛을 보면 젊은이 같기도 했다. 그 때 어디선가 굵은 저음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호, 그대는 낯선 나그네가 아니로군. 그대는 오래 전에 잿더미를 메고 산으로 들어갔었지. 그런데 오늘은 그대의 불덩이를 골짜기로 나르려 하는가? 그대는 정녕 방화자(放火者)의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당신은 누구십니까?” 호메이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젊은 시절에 나는 사람들의 괴로움을 아파하며 세속을 떠나 사막의 은둔처에 살며 세상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노력했지. 세계는 근원적인 선악 두 세력의 전쟁터. 진리와 정의를 주관하는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와 거짓과 불의를 주관하는 아흐리만(Ahriman)의 대립이 온 세상에 퍼져 있고, 우리의 투쟁은 선이 악을 이길 때까지 계속된다. 세상의 비밀을 깨닫고 고향에 돌아오니 권력을 쥔 자들이 나를 죽이려 핍박하였다. 고향을 등지고 그대처럼 타향을 떠돌게 되었다.”
“성자(聖者)여, 감히 여쭙습니다. 당신은 조로아스터(Zoroaster)이십니까?”
“그 이름은 익숙하구나. 사람들은 나를 차라투스트라(Zarathustra)라고도 한다. 이제 나의 질문에 대답해 주겠는가? 나이 많은 젊은 나그네여.”
“성자여, 당신께서는 빛은 진리이고, 어둠은 거짓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빛의 천사는 어둠과 맞서 싸워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 산다는 것은 곧 투쟁 하는 것이다. 투쟁이 격렬해질수록 생명의 활동은 활발해지고 삶은 가장 강렬해진다.…그대는 바다 가운데 홀로 버려져 고독 속에서 살았지만, 바다는 언제나 그대를 품고 있었지. 그대의 육체는 노쇠하였으나 정신은 전사의 젊음으로 가득차 있다. 그대는 이제 진정한 선각자가 되었는가.”
노인의 머리 쪽에서 후광이 빛났다. 그 빛은 동굴 안 타오르는 불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노인은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세상의 모든 가르침은 악을 피하고 선을 추구하라고 한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한다. 심지어 선으로 악을 갚으라고 한다. 그대는 어떻게 할 텐가?”
“선을 행하고 악을 배척하는 것은 옳습니다. 하지만 악을 선으로 갚으라는 가르침은 너무나 수동적입니다. 악에 대한 무저항은 결코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압제자에 대한 저항은 인간의 첫 번째 의무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와 정의, 용기와 실천이 최고의 미덕입니다. 겸손과 용서, 자비심은 그 다음으로 중요합니다.”
“선함이란 무엇인가. 용감한 것이 선이다. 용기와 전쟁은 이웃사랑보다 더 위대한 것을 이루었다. 바라건대 그대들은 투쟁하는 삶을 살아라. 굴복하며 오래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선악의 싸움터에서 어떤 전사가 값싼 위로를 얻고자 할 것인가. 나는 그대들을 위로하지 않는다. 나는 진정으로 그대들을 사랑한다. 그러니 함께 전쟁터에 있어다오. 나의 형제여.” 성자는 호메이니를 가까이 불러 이끼가 낀 땅바닥에 눕혔다. 향기로운 기운이 온몸에 퍼졌다. 육체는 피곤하였으나 영혼은 흩어지지 않았다. 호메이니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2월1일 아침 9시30분. 호메이니의 비행기는 테헤란의 메라바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공항으로 몰려들었다. ‘혁명의 깃발이 당신 손에’, ‘당신은 우리의 지도자’라고 쓰인 깃발들이 물결을 이루었다. 호메이니가 비행기 트랩을 내려와 아스팔트에 무릎을 꿇고 조국 땅에 입을 맞추자, 군중들은 일제히 커다란 목소리로 ‘신은 위대하다’고 외쳤다. 신의 나라, 이란이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이란은 이슬람공동체이지만 아랍계 이슬람국가와는 다르다. 고대 페르시아 전통과 아랍에 의해 정복된 이후의 이슬람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란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아랍인들의 정치적 지배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란의 민족적 자존심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이슬람을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들이 찾아낸 해결책은 고대 페르시아 전통 종교인 조로아스터와 사상을 공유하고 있는 이슬람 시아파(Shiah)였다. 시아파의 최고지도자 그랜드 아야톨라(ayatollah)인 호메이니. 크게 보면 그의 삶도 이란인들이 오래 동안 페르시아문화와 이슬람문화의 두 세계를 조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선인 대 악인, 바른 길과 악마의 길, 신성한 정치 대 악마의 정치, 압제자 대 피압제자 등 이분법으로 가득차 있는 선악의 이원론은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을 해석하는 가장 손쉬운 도구이다. 우주론적이고 철학적이기까지 한 대립구도는 이란인들의 삶과 사고방식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조로아스터는 여전히 이란인들의 심층의식 원형 구조로서 살아 숨쉰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진행형이라고 한다. 그 추이가 어떻게 진행되든 이란국민의 가슴 속에서 조로아스터의 화인(火印)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꺼지지 않는 불꽃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