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찬의 Asian Dream] 주희, 천 년의 꿈

중국 대륙의 동안, 해안선을 따라 나란히 달려가는 산맥들이 있다. 온난하고 습기 많은 기후가 철따라 계곡에 비를 내려주니, 풍부한 강수량은 수많은 계류가 되어 첩첩이 이어진 산을 뚫고 동남향으로 길을 낸다. 예로부터 바다 너머를 동경해 온 푸젠(福建) 사람들의 기질을 닮아서일까, 제각각 계곡을 내달리던 지류는 이윽고 세 줄기 강으로 모아져 드넓은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그리고는 마침내 대양의 무변광대함을 맛 본 물 알갱이가 다시 해풍을 타고 민강의 지류를 따라 산맥의 북단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곳에서 푸젠성 최고의 명산 우이산(武夷山)의 수려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기껏해야 해발 600m 전후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하지만 30여 기의 산봉우리는 곳곳에 붉은 벼랑과 푸른 절벽을 벌려놓고, 그 아래 신비로운 아홉 굽이를 휘돌아 흐르는 계곡에는 새로 피어난 꽃들이 마음껏 대지의 기운을 희롱하고 있다. 거기서 남쪽으로 젠양(建陽) 부근으로 내려가니 이층 학사(學舍)가 나오는데 노년의 한 남자가 멀리 시선을 고정하고 앉아 있다. 서안 위에는 종이뭉치가 쌓여 있고 운필의 기력이 다했는지 붓을 든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봄날의 우이산 계곡이 가득했다.

“요즘은 눈도 거의 보이지 않고 십 수 년 고생해온 다리의 발작도 점점 심해진다.” 일흔을 앞둔 노인은 제자의 부축을 받아 자세를 가다듬었다.

“우리 주학(朱學)에 전망이 없다고 생각하여 단념한 자가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도 자네들은 절기(切己)의 자세로 정진해주었다. 반드시 나의 도학(道學)이 세상에 성행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세대 정도는 이어지도록 후진에게 전해주기 바란다.”

우이산맥 한 기슭 죽림정사(竹林精舍)에 머물고 있는 말년의 주희(朱熹). 생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도 노구를 채찍질하며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작년(1196년) 초에는 유덕수라는 자가 조정에 상소를 올려 과거시험에서 도학의 문장을 쓴 사람이 모두 낙방하고 주자가 출간한 사서(四書)도 금서가 되었다. 평생 추구해온 도학이 거짓된 위학(僞學)으로 폄훼(貶毁)되는 재난을 당하고 보니 자책도 없지 않았지만, 주희는 스스로 둔옹(遁翁)이라 칭하면서 강학을 멈추지 않았다.

“젊었을 때 선록(禪錄)이나 도교, 초사나 시, 경, 병법에서 보잘것없는 것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배우고자 했다. 스무 살 무렵 <논어해(論語解)>를 읽으며 학문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박(博)에서 약(約)으로 증류시켜나가는 방법인데, 우선 좋은 문장에 붉은 색으로 줄을 긋고 그 문장을 숙독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 붉은 줄이 몹시 번거롭게 생각된다. 이번에는 붉은 줄 가운데서 좀 더 중요한 부분에 검은 줄을 긋고 그곳을 더욱 숙고한다. 이 때 한층 더 몰입하여 검은 줄 가운데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을 구분해서 푸른 줄을 긋고 그 다음에는 또 다시 그 푸른 줄의 핵심 중의 핵심을 추출해 나갔다. 여기까지 오면 의심되는 것이 매우 적어져 단지 한두 구절만이 문제가 된다. 그 때 이 한두 구절에 마음을 집중시켜 숙고하면 하룻밤 사이에 가슴속이 뻥 뚫린 듯 시원해지곤 했다.”

사실 이 방법은 단순히 독서법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어서 삼라만상을 마지막 한계까지 응축시켜 최고의 보편 법칙으로 추출하는 사고법이자 학문방법론이었다. 그것은 일상생활에서부터 우주와 인간을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사상체계를 만들 수 있는 동력이었다.

“삼가 가슴 속 깊이 새겨두겠습니다.” 배석한 문생(門生)들이 모두 절을 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주희가 요덕명(寥德明)에게 물었다.

“자네는 예전에 꿈에 대해 물은 것 기억나는가?”

덕명이 오래 전에 꿈 속에서 황제를 배알하러 궁으로 갔는데 문지기에게 명첩을 내주다가 자신의 명함이 ‘선교량’인 것을 보고 놀라서 깨어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과거에 급제한 덕명이 실제로 선교량에 임명되었다. 그러자 덕명은 그 꿈을 생각하고 자기 벼슬이 선교량에 그칠까 봐 걱정하여 임지로 내려가지 않고 선생께 가르침을 청했었다.

“사람은 물건과 다르다 하셨습니다. 붓이 붓인 채로 있고 벼루로는 변하지 못하듯이 물건은 아무리 오래 되어도 한번 정해진 용도는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고요. 하지만 사람은 달라서 아침에 도적이었어도 저녁에 마음을 고쳐먹으면 요순이 될 수 있다 하셨지요. 말씀을 듣고 임지로 내려가서 정랑의 벼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주희는 침상 위에 정좌를 하고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이정(二程)께서는 꿈을 통해서 자기 학문의 깊이를 판단할 수 있다고 했네. 혼과 백이 교감하여 잠이 오는 것인데, 마음은 그 사이에서 여전히 사고할 수 있지. 그래서 꿈을 꾸는 것이라네.”

그 즈음 주희는 이런 꿈을 꾸었을 지도 모른다. 아침에 샘물을 길러 가는데, 하늘을 올려보니 마치 땅과 하늘이 뒤바뀐 듯 주위가 온통 한밤처럼 어두웠다. 사방을 둘러보니 그것은 경계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위용의 나무가 천지를 가린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옥녀봉 정상에 엄청난 크기의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고, 그 나무에서 뻗어나간 가지는 온 천지의 절반을 가릴 만큼 무성했다. 거대한 나무는 우이산을 넘어 바다를 건너 세상의 끝까지 푸르고 깊은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예감했을까. 불학과 노장, 이학(理學)의 세 줄기를 흡수하여 주자학이라는 거대한 체계로 집대성한 자신의 학문이 다음 세기에 조선과 일본에까지 전해지고 이후 20세기 초까지 거의 1000년을 지배하게 되는 것을. 주희는 공맹 이후로 동아시아 전역을 지배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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