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찬의 Asian Dream] 루쉰 “어둠을 직시하면 빛이 보인다”
깊은 바다 속에 잠긴 듯 온통 축축하고 답답했다. 어둠 속이라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괴로운 숨소리로 가득 찬 방은 크고 공허했다. 어느 순간 벽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사면이 일제히 압박해 들어오는데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는 질끈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이내 다시 떠서 어둠의 중심을 노려보았다. 호흡이 가빠지며 현기증이 났다. 천장과 벽이 뒤집히며 방 전체가 암흑의 심연 속으로 내동댕이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저우수런(周樹人)은 얼마 동안 꼼짝하지 못하고 그대로 누워있었다. 그는 자신이 아직 숨을 쉬고 있는 것을 알게 되자, 웅크린 채 몸을 굴려 겨우 일어나 앉았다. 비틀거리며 걸어가서 방문을 힘껏 밀었다. 그리고는 간신히 침상 가에 걸터앉았다. 정신을 가다듬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창 밖에는 높이 자란 홰나무가 무성한 나뭇잎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베이징의 8월, 저녁 시간이지만 무더위는 여전하다. 수런은 부들부채를 흔들어 모기를 쫓으며 홰나무 아래에 앉아 땀을 식혔다. 나뭇잎 사이로 검푸른 하늘이 보이고 별빛은 저 멀리 희끗희끗 가물거렸다. 매일 오전 10시 교육부의 말단 관리로 출근하여 의례적인 공무를 마치고 돌아와 저녁을 먹고 동생인 베이징대학 교수 저우쭤런(周作人)과 토론을 하는 것을 제외하면, 사오싱회관(紹興會館) 부수서옥(補樹書屋)의 세 칸짜리 방에 틀어박혀 새벽까지 옛 비문을 베껴 쓰는 남자의 시간을 뺏을 일은 별로 없었다. 신해혁명(辛亥革命)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6년, 수런은 참기 어려운 적막감 속에서 지내왔다. 그 적막감은 나날이 자라서 큰 독사처럼 그의 영혼을 휘감았다. 사람들 앞에는 단 두 가지의 길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위로 기어 올라가 세도를 부리며 향락을 누리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아래로 나가 떨어져 사람들에게 조소의 대상이 되는 길이다. 그런데 위로 기어오르는 자는 다른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로 변하고 아래로 나가떨어진 사람은 그들에게 잡아먹히는 신세가 된다. 식인(食人)도 불사하는 광인(狂人)들의 세상이다.
더운 바람이 훅하고 지나가는데 무언가 목덜미에 떨어졌다. 이어 머리 쪽에서도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잡아 보니 그건 홰나무 벌레 유충의 징그러운 꿈틀거림이었다. 폭발할 것 같은 불쾌감을 떨쳐버리며 수런은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 책상에 쌓여있는 고서 더미에서 금석문 탁본을 하나 꺼내 들었다. 서너 장을 내리 옮겨 쓴 후 잠시 붓을 내려놓는데 일본 유학 시절의 옛 친구가 찾아왔다. <신청년(新靑年)>을 출간하고 있는 첸시엔퉁(錢玄同)이었다.
“자네 이런 것을 무엇에 쓰려고 베끼고 있나?”
그는 큼직한 가방을 책상 위에 던져놓고는 따지듯이 물었다.
“아무 데도 쓸 데는 없지.” 수런은 건조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걸 옮겨 쓰고 있는 건가?”
“특별한 생각은 없네.”
친구는 두루마기를 벗어놓고 수런과 마주앉았다. “내 생각인데, 자네는 역시 글을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네···.”
수런은 그가 찾아온 속내를 모르지 않았다. <신청년(新靑年)>이라는 잡지는 아직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아마 잡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찬동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들도 역시 내가 느끼는 적막감에 빠져 있는 것이다.
“가령 말일세. 무쇠로 만든 방이 있다고 하세. 창문도 전혀 없고 절대로 부술 수 없는 그런 방 말일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네. 오래지 않아 모두 숨이 막혀 죽겠지. 그러나 혼수상태에서 죽는 것이니 죽음의 고통 같은 건 없을 걸세.” 수런의 눈에는 방 안의 장면이 뚜렷하게 그려졌다. “그런데 말이야, 자네가 크게 소리를 질러 잠이 덜 든 몇 사람을 깨운다면 그 불행한 소수의 사람들은 임종의 쓰라린 고통을 피할 수 없을 것인데, 그러고도 자네는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수런은 이야기를 나눌 때 더욱 기지가 발휘되는 유형인데다가 그 형형한 눈빛은 언제나 우울한 기운마저 띠고 있어서 상대는 자칫 그의 논리에 빠져들기 쉽다. 하지만 첸시엔퉁도 오늘은 쉽게 물러서지 않을 각오를 하고 왔다. “아닐세. 만약 몇 사람이라도 깨어 일어난다면, 쇠로 된 방을 부술 수 있는 희망이 전혀 없다고는 말 할 수 없을 것이네.” 수런은 말없이 자신의 손을 주무르기만 했다.
“자네 말처럼 우리는 모두 암흑 속에 갇혀있네. 그래서 모두들 절망적인 현실이라고, 희망 없는 운명이라고 말하지.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 똑바로 일어서서 절망에 대항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네. 그렇지 않으면 그건 우리가 그토록 경멸해마지 않는 구질서와 기득권의 공모자가 되는 것이니 말일세.”
“나는 절망도 희망도, 비관도 낙관도 간단히 믿을 수는 없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어쨌든 희망이라고 한다면 그건 지워 버릴 수가 없겠네. 절망과 대결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지만 희망은 미래의 아이들에게 있는 것이니 장래에 결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지는 못하겠네.” 그렇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아서 지나가는 사람이 많으면 그게 곧 길이 되는 이치와 같다. 수런은 미안한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지금은 젊은이가 늙은이의 임종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늙은이가 젊은이의 사망기사를 쓰고 있는 세상일세. 게다가 사람들은 추악한 사건이 일어나면 사건 자체보다는 그 사건에 대해 쓴 글을 더욱 싫어한다네. 나는 현상을 그저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실 너머에 있는 국민성의 심층까지 파고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네.”
다음해(1918년) 5월, <신청년(新靑年)> 4호와 5호에 중국 최초의 단편 백화소설인 <광인일기(狂人日記)>가 발표되었다. 필자는 38세의 저우수런, 바로 루쉰(魯迅)이었다. 이로써 루쉰이라는 이름은 ‘5·4혁명운동’의 전야에 절망의 바다를 향해 쏘아 올려진 한 발의 희망탄(希望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