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화제] 칼릴 지브란의 영감으로 아시아공동체학교에 서다

필자(뒷줄 안경 쓴 이)가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부산 아시아공동체학교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아시아공동체학교, 다름을 알고, 차이를 넘어, 화합으로

15일 부산 아시아공동체학교(AC, Asian Community School) 학생들과 만났다. 이사장 자격으로 학생들에게 ‘삶과 명상, 공부’를 주제로 편하게 얘기했다. 학생들이 초등에서 고교까지 분포가 다양해 어디를 타깃으로 얘기를 해야할지 고민이었다.

앞서 전날 부산으로 내려가 내년 4월 이후 공론화할 ‘이민청 창설’ 문제 등에 관해 논의했다. 박효석 교장선생님과 이동 중 저녁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던 선생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최영훈 이사장의) 강의안을 보내주실 거냐?”는 거다.
나는 애당초 파워포인트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 담소를 나눌 생각이었다. 박 교장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한 세번은 해보셔야지 익숙해질 겁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 출신 부모들이 기른 학생들인데다 연령대까지 다양해서다. 밤늦게 자료를 뒤졌다. 뭔가 가닥이 잘 잡히지 않아 잠도 설쳤다. 명상은 학생들이 이미 몇차례 교육을 받았단다. 그러니 나오는대로, 체험 중심으로 말할 생각이었다.

칼릴 지브란

레바논계 미국인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The Prophet)가 떠올랐다. 예언자는 20세기에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기록을 보유한 책이다. 2014년 ‘예언자’를 원작으로 만화 영화 까지 만들어졌다.

시인으로, 다양한 쟝르 작가로도 활동했다. 화가, 조각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했으니 ‘영성 깊은 아티스트’라고 하는 게 맞다. 천재들이 그러하듯, 48세를 일기로 단명했다. 지브란은 자신의 작품들에서 기독교를 짚었다.

영혼 사랑이라는 주제에도 오래 천착했다. 1923년 예언자가 처음 나오자 평단은 썰렁했다. 영성이 깃든 잠언을 활화두 삼아 던지자, “이게 뭐지?”라는 낯섬과 기피가 주조였다.

지브란의 작품에는 혜안과 통찰이 번득인다. 예언자는 26편 시와 같은 산문들로 짜여있다. 지브란은 서구의 심미적 문화보다 태어난 레바논의 전통문화에 동화되길 더욱 원했다. 15세 때, 베이루트의 학교와 교회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공부하려고 레바논으로 갔다. 문학잡지를 동급생들과 함께 만들기 시작한다. 깊은 사유에서 우러나온 단상, ‘시재詩才’가 있었다. 이내 ‘학교 대표시인’으로 뽑히기도 했다.

몇년 레바논에 있다 1902년 미국으로 돌아왔다. 여동생 술타나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직후였다. 다음 해엔, 남동생도 같은 병으로 숨을 거뒀다. 어머니까지 암으로 떠나버렸다. 여동생 마리아나가 양장점에서 일해 돈을 벌었다. 천품을 지닌 지브란은 여동생 뒷바라지를 받았다.

첫 전시는 1904년 보스턴 데이 스튜디오에서다. 이때 지브란은 여학교 교장으로 10살 위인 메리 엘리자베스 해스켈과 극적으로 만났다. 연상의 여인인 해스켈과 우정은 평생 지속됐다. 해스켈은 지브란의 개인적인 삶에는 물론, 창작 활동 전반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다.

1908년 파리에서 오귀스트 로댕과 만났다. 그의 문하에서 2년 동안 예술을 깊이 공부했다. 예술적 동료인 벗 유세프 호와예크와도 만났다. 이후 보스턴에서 예술에 천착하며 활동을 한다. 줄리엣 톰슨은 지브란의 일화들을 기록했다. “지브란은 바하이 신앙의 리더로서 대략 1911~1912년 미국을 방문한 압둘-바하를 만난 바 있다.”

지브란의 초기작은 대부분 아랍어로 기록됐다. 1918년 이후의 작품들은 대부분 영어로 썼다. ‘이민자 시인’으로 호가 났다. 레바논 계 문인들과 친했다. 다문화교육을 얘기하려다 옆길로 샜다. 지브란은 선지자적 메시지를 발신한다. 그는 먼저, “가르치려 들지 말라”고 했다. “간섭하지 말고 인정하라”고도 했다. “속마음을 아낌없이 내주라”고 했다. “남보다 내 허물부터 보라”고 말했다. “후생後生은 시간 때우는 이가 아니“란다.

이 대목을 나는 가장 감명깊게 여긴다. “아름다운 언어로 말을 하라”는 거다. 말이 많아지면, 생각의 반은 죽게 된다. 참으로 칼릴 지브란의 통찰은 적확하다. 그의 비유는 폐부를 콕콕 찌르는 그 무엇이다. “생각이란 하늘을 나는 새와 같아서, ‘말의 감옥’에선 날개를 펼 수 있을지 몰라도 날아오르지는 못하는 법입니다.”

저잣거리에서 친구와 만나더라도, 마음속에서만 입술을 움직이고 혀를 굴리라고 한다. “시끄럽게 떠들지 말라”는 정수리의 일침이다. 내면의 목소리로 서로의 귀에 속삭이라는 뜻이다. 그럴 때에만, 그의 영혼이 너를 영원히 간직한다. 지브란은 단순히 내면에만 국한해 말하진 않았다.

“그대들 몸은 영혼의 하프, 그 하프에서 감미로운 음악을 낼지, 탁한 소음을 낼지는 오로지 그대에게 달려있습니다.”

아시아공동체학교 학생들과 삶, 공부, 명상을 화두로 만났다. 다문화 아이들과의 대화는 지브란 덕분에 나름 성공적으로 했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지브란이 일러준 대로 아름다운 언어로 영혼의 대화를 나누려고 애썼다. 마음을 열고, 영혼에 귀 기울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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