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화제] 엔니오, 영화음악의 마에스트로

엔니오


아카데미음악상 6번 지명만에 뒤늦게 타란티노 영화로 지각 수상

200년 뒤,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와 같은 평가를 받게 될 건가?

2시간 36분. 결코 짧지 않은 런닝 타임이건만…필자는 올빼미에서 새벽형으로 체질이 바뀌었다. 그래도 새벽 1시 넘어서까지 끝까지 봤다. 위대한 작곡가 영화감독의 엔니오에 대한 헌사와 상찬이 영화에서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는 말했다. “영화음악과 순수음악의 수렴이 이뤄졌다. 그게 나의 음악 인생의 기반일 것이다.” 롤랑 조페와의 ‘미션’ 때도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재즈 뮤지션에게 상은 돌아가고 만다. 아카데미 음악상 3번째 지명 때였던 것 같다. 그때는 그 역시도 크게 낙심한 표정이었다.

2006년(?) 미안했던지, 평생공로상을 줬다. 6번만에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로 상을 받았다. 영화음악의 마에스트로. 누구의 이름이 떠오를까? 얼마 전 타계한 류이치 사카모토나 ‘스타워즈’ 존 윌리엄스, 한스 짐머가 거론될 거다.

하지만 더욱 더 압도적인 사람이 있다. 그는 마치 거대한 산맥처럼 우뚝하다. 그의 이름이 이 영화의 원 제목이었다. 한 달 여 전, 국내 개봉도 이뤄졌다. 엔리오 앞에 ‘마에스트로’가 붙었다. 엔리오라는 이름이 곧 ‘거장’인 거다. 3년 전, 2020년 작고한 엔니오 모리코네.

그는 불멸의 영화음악가, 아니 작곡가다. 미션과 시네마 천국,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등 헤아릴 수 없는 명품 OST를 탄생시켰다. ‘시네마 천국’을 비롯, 여러 편을 함께 만든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가 연출을 맡았다. 거장이 다큐 영화를 기꺼이 맡았다. 엔니오를 상찬하는 기록영화여서다.

그가 신인이던 1980년대 후반, 엔니오는 이미 350여편 영화음악을 맡은 바 있다. 엔니오는 ‘살아있는 레거시’나 다름 없었다. 두사람이 연을 맺은지, 세상이 3번 바뀌었다. 시네마 천국과 피아니스트의 전설도 함께 했다. ‘엔니오-더 마에스트로’는 30년 우정의 산물이다. 엔니오도 ‘자신의 다큐 연출은 쥬세페가 맡아야 한다’고 생전에 콕 찍어 지목한 바 있다. 쥬세페는 거목 엔니오를 뿌리부터 나이테, 줄기와 이파리까지 세밀하게 그려냈다.

다큐를 만들던 중, 자신조차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거장의 숨겨진 생얼과도 마주한다. 60년 거장의 인생을 압축하고 또 압축했다. 2시간 36분의 짧지 않은 런닝타임이다. 쥬세페는 그것을 빼곡히, 지루하지 않게 엔니오에 대한 헌사와 상찬들로 가득 채웠다. 챗GPT가 내놓을 정보 따위를 버무린 게 아니다. 명장 쥬세페의 그물은, 영화 플롯은 치밀했다. 거장의 위대함을 건축설계 하듯 정교하게 그렸다.

400여 편 영화음악과 100여 순수음악 작곡을 남긴 마에스트로 인생 궤적을 펼쳤다. 그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쥬세페는 명장임을 입증했다. ‘엔’비어천가로 흐르지 않도록 균형을 잡았다. 영화음악과 순수음악의 최절정 고수들과 명감독들이 숱하게 출연했다.

이 당대의 명망가들이 엔니오를 높인 다큐에 한마디 보태려고 줄을 섰다. 늘 헌사와 상찬의 향연은 낯 간지럽기 마련이다. 그래서 쥬세페는 엄격한 자기관리로 작업에 임하는 고뇌의 수도승 이미지로 시작했다. 엔니오의 일상은 딸깍발이 구도자와 같다. 메트로놈의 신호에 따라, 여든 후반의 거장은 누운 채 체조와 스트레칭을 거듭한다. 수많은 난관들을 인내하고 묵묵히 돌파했다. 영리하게 쥬세페는 엔니오가 마에스트로에 오르기 전, 인고의 세월들을 각인시킨다. 그리고 마치 간증하듯 교묘한 연출로 이어진다.

몰입과 흥미를 자아낸 쥬세페 연출이 돋보였다. 스피디한 변주로 지루하지 않게 마에스트로 엔니오에게 경의를 표하고 거듭 드높였다. 잘 모를 고난의 음악인생도 30분 넘게 다룬다. 귀에 익은 OST, 미션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곡조들이 귓전을 때리는데 말이다. 현기증 나는 기다림의 연속은 길기도 했다.

엔니오의 섬칫하게 만드는 선율이 깔리기만을 학수고대하는 관객들에겐 힘든 시간이다. 쥬세페는 그러나 끝까지 인내하며 버틴다. 거장의 탄생에는 고난과 시련이 필수다. 그래야 관객이 이해하고 공명할 수 있다. 외줄이라도 타는듯, 팽팽한 긴장의 연속이다.

거장의 어릴 때와 순수음악을 하던 청년기, 엔니오의 독창성과 함께 트라우마로 지속됐던 난제들까지 쥬세페의 앵글에 포착된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오랜 영화인생 동료였다. 아메리칸 드림을 동경하던 어린 때부터다.

파시즘과 전쟁의 폐허에서 신음한 궁핍기

음악가 아버지 존재도 에피소드로 소개된다. 엔니오를 형성하는 요소들을 해부하듯 그렸다. 트럼펫으로 생계를 꾸린 부친에게 훈련을 받았다.

부친이 결장하면, 어린 엔니오가 대타로 나선다. 소년의 몸으로 실전을 뛰며 연주 실력을 다듬었다.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에서 교육을 받는다. 엔니오는 거기에서 트럼펫 연주자로 컸다. 샌님처럼 얌전했지만, 내면에선 ‘크로스 오버’의 불꽃이 자리잡기 시작한 시절이었다.

드디어 연주자를 넘어, 작곡에 도전한다. 음악인 간의 분담을, 금기를 깨는 시도였다. 그러나 그는 평생의 스승을 만난다. 음악원 교수 고프레도 페트라시였다. 페트라시는 그에게서 음악적 야심을 읽었다. 경계를 넘어서려는 도전에 응원의 손길을 보낸다. 페트라시는 내부 갈등을 감수하고 그를 보호했다. 스승 덕분에 클래식의 정수를 소화하고 독창적인 방향성까지 엔니오가 견지할 수 있었다. 당시 고뇌를 이해하지 않고선 엔니오를 알 수 없다. 영화음악에 왜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했는지를 말이다. 

음악원을 졸업하자마자 광야로 내쫓긴 신세였다. 민생고가 시작된다. 생계를 책임져야 할 젊은 음악가에겐 시련기였다. 가족을 위해 대중음악의 편곡에 참여했다. 대형 음반사의 모욕을 감수하며 모리코네는 수백 곡의 편곡에 참여해 인정을 받는다. 이때만 해도 영화음악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후원자였던 스승과 동료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영화음악에 참여하자, 비판의 날은 더 예리했다. 스승 페트라시는 영화음악에 참여하려다 영화제작사에게 모욕을 당해 원한이 깊었다.

심지어 영화음악 시도를 ‘매춘’에 빗대기도 했다. 엔니오는 낙담했다. 영화음악 초기에 빛과 그림자가 공존했던 것이다. 그의 음악세계를 완전체로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여기를 거쳐야 한다는 의도는 적중한다. 서부극의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가 찾아왔다. 이후 레오네의 작품에는 엔니오가 함께 했다.

오래 소식이 끊어졌던 둘의 필연적 만남이다. 황야의 무법자와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로 이어졌다. 무법자 3부작에서 둘의 콜라보는 완성됐다. 잊을 수 없는 청각 이미지가 탄생한 순간이다. 엔니오는 400편이 넘는 영화음악을 남겼다. 영화사에 남을 거장들과 콜라보를 많이 했다. 하지만 그를 우뚝 세운 건 레오네의 6편이다.

엔니오의 위대함은 ‘스파게티 웨스턴’에 갇히지 않아서다. 엔니오는 전성기엔 1년에 20편씩이나 작업을 했다. 2023년 전주영화제에선 ‘세르지오 레오네:미국을 발명한 이탈리아인’도 상영됐다. 레오네의 유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이 영화음악의 탄생 과정은 매혹적이다. 명품 탄생은 엔니오와 레오네의 신뢰 덕분이다. 완성된 영화에 음악을 입히는 게 아니었다. 음악이 영화 촬영에 앞서 이례적으로 만들어졌다. 영화제작 전반을 음악에 맞췄다면 무리일까? 위대한 영화음악이 탄생하기 전, 피아노에 앉은 엔니오. 그 곁에서 지그시 눈을 감은 레오네의 풍경은 뭉클하다. 로버트 드니로는 회고한다. “음악에 맞춰, 연기를 하니 더 실감나게 할 수 있었다”

소년과 소녀의 애틋한 눈길들, 데보라의 OST에 빨려든다. 영화사의 횡포로 건강을 해친 레오네는 삶을 일찍 마감한다. 레오네가 별이 되자, 당대의 다른 거장들이 손을 내민다. 킬링필드의 롤랑 조페와 명작 ‘미션’을 만든다.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세상에 선보인 것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쥬세페와 인연도 소개된다. 350여 편의 영화음악을 만든 레거시와 첫 작업에 이어 ‘시네마 천국’도 탄생하게 된다. 엔니오는 스스로를 ‘카멜레온’이라고 했다.

감독에 맞춰, 그 무수한 컬러를 뿜어냈다. “한 영화를 9명이 작곡해 음악을 만들면, 9개의 영화음악이 나온다”고 엔니오는 말한다. “9개 중 최선의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영화음악 작곡가를 고뇌하게 만드는 요인이란다.

그의 영화음악이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마 엔니오는 수시로 교향악에 도전했다. 수도승의 고뇌하는 자세로 수백 편을 감당해냈다. 전위적인 다양한 시도들이 가능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1961년~2020년까지 60년 가깝게 롱런한 저력이다. ‘불멸의 탑’을 쌓은 거목의 탄생 비결이라면 지나친가?

스승 페트라시와 동료들은 엔니오에게 ‘메기 역’을 했다. ‘부와 인기에 무릎 꿇고 클래식과 예술혼을 저버렸다.’ 오랜 세월 그들은 엔니오를 비판하고 마구 씹어댔다. 그렇기에 매너리즘에 빠진 고인물이 되지 않으려 했다. 변화무쌍한 도전으로 자신을 극한에 몰아넣고 애 썼다. 영화음악 외 순수음악에도 시간을 할애하며 정진한다. 마침내 스승 페트라시와의 화해와 극적인 해후도 이뤄진다. 그의 동료들도 진솔하게 엔니오의 내공을 증언해줬다.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를 ‘동네 상’이라고 꼬집었다. 엔니오에게 헐리우드 아카데미는 특히 가혹하게 굴었다. 무려 6번 음악상 후보로 올랐지만 번번이 미끄러져야 했다. 마피아의 고향 이탈리아 출신이라서는 아닐까?

본인뿐 아니라 영화계가 이런 상황을 난처하게 여겼다. 88세에야, 음악상을 그의 마니아 쿠엔틴 티란티노의 ‘헤이트풀 8’로 기어코 수상했다. 평생공로상은 10년 전에 주긴했지만 말이다.성취의 순간들과 함께 엔딩 사인으로 접어든다. 스크린에는 그를 향한 상찬과 헌사로 가득하다. 영화음악의 성전에 모셔질 존재들도 그리했다. 존 월리암스와 한스 짐머, 퀸시 존스와 같은 또 다른 영화음악의 레거시들도 말이다. 그에게 두말 할 나위 없을 헌사와 존경을 보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존 바에즈, 메탈리카 같은 대중음악계 거목들도 그를 드높였다. 과장이 심한 타란티노는 엔니오를 예찬하며 모차르트나 베토벤, 슈베르트 같은 존재라 했다. 물론 엔니오는 쑥스러워하면서 손사래쳤다. “200년 뒤에 어떻게 될지 보자”고만 했다. 영화음악의 아이콘, 엔니오 모리코네는 어쩌면 그런 반열로 후대에 기억될지 모른다.

“그의 음악은 곧 우리들 인생의 사운드트랙이죠!”(한스 짐머)
감동적인 이 다큐는 너무나 방대한 정보량 때문에 한번 봐선 소화하기가 힘들다. 그의 나레이션이 마지막 부근에 흐른다. ‘작곡가는 종이의 빈칸을 채워야 합니다. 곡에 대한 생각은 이미 있습니다. 그러나 곡이 되려면 더 다듬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한다. 무엇을?”이라고 스스로 묻는다. “그것은 알 수 없다”고 토로한다. 영화 말미에 작곡가의 숙명을 잔잔하게 말한다.

작품정보

영화 제목: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2021년: 이탈리아|다큐멘터리
2023.07.05. 개봉|156분|12세 관람가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
출연: 엔니오 모리꼬네, 클린트 이스트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존 윌리엄스, 한스 짐머, 왕가위, 브루스 스프링스틴, 퀸시 존스, 쥬세페 토르나토레, 제임스 헷필드, 올리버 스톤, 롤랑 조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다리오 아르젠토, 펫 메스니, 주케로, 질다 부타, 둘체 폰테스 외

2021년: 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2023년: 24회 전주국제영화제 각 초청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