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화제] 안도 타다오의 ‘청춘의 확장’

<사진 최영훈>


강원도 바다와 산, 자연에서 예술로

뮤지엄 산이 어느덧 개관 10주년을 맞았다. 4월 1일~7월 30일, 10월 29일까지 연장 중. 여기에 30만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두 거장, 안도 타다오와 제임스 터렐을 보러 온 것이다. 안도를 조명한 국내 최초 개인전은 눈부셨다. ‘안도 타다오-청춘’ 전을 누가 기획했을까?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로 돋보인 전시였다.

안도 <사진 최영훈>

그가 설계한 건축 공간에서의 첫 전시이기도 하다. 1995년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받은 안도는 노출 콘크리트 기법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물과 빛, 유리와 노출 콘크리트로 자연친화로 갔다.

1989년, 오사카 ‘빛의 교회’는 걸작이다. 십자가가 세워질 정면을 ‘십’자로 뚫었다. 자연 빛이야말로 신비로운 성스러움이었다. 안도 명성을 일거에 드높인 위대한 작품이다. 빛의 교회는 일본 내 최고 관광명소가 됐다. 건축학도들의 현장 방문 발길이 꼬리를 문다.

안도는 우리나라에도 발자취를 깊이 남겼다. 제주도 섭지코지의 글라스 하우스(2008), 본태박물관(2012), 원주시 산뮤지엄(2013), 서울 종로구 JJC아트센터(2015), 제주 유민미술관(2017) 등등…

건축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축가로 우뚝하다. 도쿄(2017), 파리(2018), 밀라노(2018), 상해(2021), 북경(2021), 대만(2022)에서도 전시했다. 산 뮤지엄 ‘청춘’전은 ‘끝없는 도전’을 그린다. 안도는 프로복서로 데뷔해 몇번 링에 올랐다. 그는 인생이든 건축이든 승부 의식이 강했다.

뮤지엄산 입구, 사람 키만한 푸른 사과가 있다. 화두인 ‘청춘’을 푸른 사과에 빗댄 것이다.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이 그 모티브였다. 청춘이란 스쳐가는 삶의 한 시절이 아니다. 마음먹기 나름으로, 꿈을 잃을 때 늙는다.

때로는 스무 살보다, 예순이 더 청춘이다. 안도가 행복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러하다. ‘언제 행복하냐?’고 물으면, “완성한 순간보다 완성을 향해 가는 시간”이 행복하단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 자체가 행복인 것이다.

<사진 최영훈>

누구나 목표를 이루고 나면 허무해진다. 그래서 다른 행복을 생각하고 찾아간다. 목표가 아닌 과정에 몰입할 때, 청춘은 커진다. ‘빛의 공간'(The Space of Light)은 명상의 세계다. SBS는 안도 타다오 다큐를 만들어 방영도 했다. 도전하는 거장의 ‘청춘’에 집중한 기획인 셈이다.

안도 건축세계는 반세기 넘게 종횡무진 중이다. 1969년~1990년대 중반까지 독학하다시피 나름의 건축 세계를 창조했다. 전반기부터 30년에 걸쳐 예술도시 프로젝트로 완성한 ‘나오시마 프로젝트’. 1990년대 중반 이후에 세운 세계 곳곳의 공공건설 작품들까지 즐비하다. ‘Bourse de Commerce’ 리노베이션 프로젝트(2020년)까지 총망라했다.

“단순히 한 건축가의 아카이브 전시가 아니다”(산 뮤지엄 측) 건축이 미술사와 미학으로 넘어오는 지점을 포착하려 했다. 프로 복서로 번 돈 몇푼으로 유럽으로 떠난 안도는 트럭 운전을 하며 번 돈으로 유럽의 도시들에 살면서 그곳의 건축물들을 몸소 체험했다. 안도는 유럽으로 떠난 지 근 1년 만에 파리에 도착했다. 그때 만나고자 했던 마음의 스승 르 코르뷔지는 없었다. 몇 개월 전, 세계 건축사에 족적을 남긴 그는 별이 됐다.

안도의 삶이 녹아있는 청춘 기획전은 울림이 컸다. 뮤지엄 산에선 제임스 터렐 특별전도 열리고 있다. 올해 여든인 터렐은 화가이기 전, 퀘이커 교도다. 빛을 다루는 설치미술가로 심리분석에도 능하다. 그 손끝에서 빛은 전혀 다른 상징으로 빚어진다. 캘리포니아 자연과 애리조나 사막의 빛을 찾아 50년 외길을 걸어온 이력이 독특하다.

“안으로 들어가서 빛을 영접한다. 모든 인간은 자기안의 신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을 기르는 법을 배우면 다 구원 받을 수 있다” 퀘이커교에 독실한 할머니가 그의 메타포가 됐다. 덥수룩한 수염, 카우보이 모자를 쓴 ‘빛의 예술가’. 그는 관객들을 명상과 영성의 세계로 손짓 한다. 터렐은 빛을 가두거나 조금씩 모아 길을 만든다.

<사진 최영훈>

하늘로 원형의 창이 놓인 스카이 스페이스(SkySpace). 로마의 판테온 신전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빛을 감상하면서, 시선은 내면으로 향하게 만든다. 이 작품들로 관객을 명상의 세계로 초대하려는 거다. 터렐은 빛이 인간의 사고를 전환시킨다고 믿는다.

그런 철학을 바탕으로 미술 영역 밖을 탐구했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보츠, 미술가 로버트 어윈과 함께 빛의 생리학도 연구 중이다. 조각과 설치미술, 현상학과 인지생리학도 관심 분야다. ‘위대한 세계의 화가 50인’에 들어간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현상학적 지각과 관련된 독창적인 미학을 개척했다. 영성을 내면에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사진 최영훈>

한 관객의 체험담을 소개한다. “좁고 캄캄한 공간을 따라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가늠하기 어려운 거리에서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빛이 아니라 느리게 흘러내리는 빛이었다.”

벽에 걸린 그림이 발원지였다고 한다. 푸르스름한 면을 만져보았다. 빈 공간이 싸늘한 감촉으로 다가왔다.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 그 안에 거대한 방이 또 하나 숨겨져 있었다. “놀라움과 신비함의 연속이었다. 강렬하지도 노골적이지도 않은 빛은 얼마 만에 나를 완전히 다른 사고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때 그의 내면에 시간은 이미 지워져버렸다. 속세와는 끊겨, 빛의 심원에 빠져들게 됐다. 후각과 짐작만으로 공기의 움직임을 느꼈다. “참으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기하학적 사면에서 이뤄지는 파랑과 빨간빛의 오묘한 교차는 인간들을 신의 울타리 밖으로…”

사진 최영훈

빛은 끓임 없이 내면을 들락거렸다고 한다. 그 순간 외부가 아닌, 내면의 빛을 찾아 침잠해가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참으로 놀라운 체험이었다고 놀라워했다. 우리가 매일 몸에서 때와 먼지는 씻어낸다. 정신을 지배하는 영혼을 청소하고 있는가? 그것을 빛의 예술가는 작품들로 묻고 있다.

안도에게 맡겨 빚어낸 한솔 이인희 회장의 역작이다. 산 뮤지엄의 훌륭한 기획들에도 박수 보낸다. 다만 전체를 다 보려고 하면, 입장료가 비싸다. 값어치는 있지만…

사진 최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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