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참사 1주기 추모 인요한과 험지 출마 권유받는 김기현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대회에 참석한 인요한 혁신위원장(가운데)

29일 시청앞 광장,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대회’가 열렸다. 인요한 혁신위원장도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앉아 있었다. 193㎝ 거한, 백발의 인요한은 수많은 인파 속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 그는 행사 시작 10분 전 김경진·박소연·이소희 혁신위원들과 함께 왔다.

거기엔 ‘김건희 구속’ 깃발도 보이고, 좌파단체들의 깃발도 즐비했다. 국민의힘에선 오세훈 서울시장과 이만희 사무총장, 유의동 정책위의장, 권영세 의원 등도 왔다. 오 시장 빼고, 다들 개인 자격으로 왔기에 빈자리에 차례로 가서 앉았다.

이태원참사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이재명 대표

인요한 위원장만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 옆자리에 앉았다. 인요한은 민주당 주요 인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에 자리에 앉았다.

“잃어버린 우리 아이를 추모하는 이 시간은 결코 정치집회가 아니다”(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불참한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한 발언으로 들렸다. 인요한은 무대를 응시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민주당, 정의당 등 각 당 대표들이 나와 추모사에 윤 정부를 비판했다. 그때마다 “윤석열 꺼져!“ ”탄핵하자!”를 연호하며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인요한은 다소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올라 ‘천개의 바람이 되어’ 등을 연주할 때였다. 광장에선 ‘윤석열 탄핵’ ‘검찰독재’ 등 대형 깃발들이 바람에 휘날렸다. 김기현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의 조화들은 파손된 채 바닥에 굴렀다.

1부가 끝나고, 2부 행사로 넘어가자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자리를 떠났다. 가는 길에 인 위원장과 악수를 나눴다. 주최측이 ‘진상을 규명하라!’ 피켓을 단체로 들고 사진 촬영을 했다. 그때 인요한도 휠체어를 탄 이소희 위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상을 규명하라!”던 참석자들 외침이 삽시간에 인요한에게 쏠렸다. 그가 차량에 오를 때까지 한동안 광장 한켠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그를 향해 거친 언사와 구호를 쏟아냈다. 일부는 뒤를 쫓아가면서 욕설까지 퍼부었다.

“한국놈도 아니면서 여기가 어디라고!” ”XXXX 확 죽여버린다!” 일부 과격한 이들은 빈 담뱃갑이나 피켓을 구겨 던지기도 했다. “바른 말만 하더니 왜 그쪽으로 갔냐”고 외치는 이들도 보였다.

순식간에 고함치던 사람들이 인 위원장 쪽으로 쏠려 철렁한 순간도 연출했다. 이소희 위원이 탄 휠체어가 옴짝달싹 못해 인명사고가 날 뻔한 순간도 있었다.

인요한은 항의와 욕설을 묵묵히 들으며 걸음을 옮겼다. 덩치가 큰 그는 상기된 채, 굳은 얼굴로 승용차를 탔다. “여당과 정부는 당연히 무한책임을 지고 애도해야 한다. 다소 소홀한 측면을 반성하고 국민통합을 위해 참여했다”(인요한) 

소동을 예상했을 텐데도 참석한 인요한의 의연함에는 박수를 보낸다. 그 인요한이 김기현을 거명, ‘영남 스타’ 의원이라며 서울 출마를 주장했다. “인요한 위원장에게 전권을 주겠다”고 강조한 김 대표의 처지가 난처해졌다. 당내에 “당장은 아니라도 결단해야 될 시기가 올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오른쪽)와 인요한 혁신위원장

“TK·PK 스타들은 서울에서 출마해야 한다”(10월 27일, 첫 회의 후 인터뷰 때) 인요한은 5선 주호영(대구)과 4선 김기현(울산) 실명까지 거침없이 거론했다. 당내 일각에선 이런 발언을 은연중 반기는 눈치다. 3월 전당대회에서 김기현 후원회장을 맡았던 신평도 한마디 보탰다. “김 대표가 버텨나가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29일, 페북)

홍준표는 한 술 더 떠, ‘고만고만한 너희들끼리!’라 뼈를 때렸다. “혁신의 본질은 국민 신뢰를 상실한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새판을 짜야…”라면서 말이다. 일각에선 “총선 승리를 위해 수도권 출마 결단을 내려 달라”고 촉구한다.

김기현 대표는 여기에 답장을 하지 않고 침묵 모드로 갔다. 그는 선거를 많이 치러본 당직자로 보좌관을 교체했다. 총선 불출마나 험지 출마와는 일단 거리를 두려는 거다. “거물급으로 도약하기 위해 자기 희생을 보여줘야 한다”(수도권 A)

인요한은 당내에선 혁신위원장으로서 합격점을 받고 있다. 기대한 것보다 더 쾌주의 스타트를 끊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전권을 주겠다고 한 김 대표가 딴소리 하기는 쉽지 않을 것!”(수도권 B)

영남권 일부 의원을 빼고, 김기현을 편들 사람이 많지 않다. 어찌 보면 시간이 갈수록 그는 사면초가에 빠져들 공산이다. 그렇다고 당장 결단을 내릴 가능성 또한 높지 않아 보인다. 영남 의원들이 수도권에서 당선될 만한 경쟁력을 갖추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그런 현실적인 애로 상황을 모르쇠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이들에게 서울 출마는 험지가 아니라 사지나 마찬가지”(중진 C) 우리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흔히 떠올리는 문자가 있다. 바로 궁즉통(窮則通)이다. 주역의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를 줄인 것.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 갈 것”이라는 뜻일 거다.

세상을 살다보면 도저히 어찌하기 힘든 난관에 처할 때가 종종 있다. 이때 궁즉통의 뜻처럼 변화를 먼저 구해 보는 것이 최선의 해법이다. 세상 일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면 돌파구는 늘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바로 이 말이다.

지성감천이면, 사람이 최선을 다하면 하늘도 감응하는 법이다. 궁즉통은 주역이 지향하는 변화와 만물순환의 심오한 철학이다. 시간이 가면 어찌 되겠지 하는 자세로 가면 큰 코만 다칠 뿐이다.

‘시간이 약’일 때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닌 게” 틀림없다. 인요한은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이 결코 아니다. 혁신위나 인재영입으로 시간을 벌 수는 있을 거다. 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은 결코 아니다. 자기희생의 변화를 꾀하고 오래갈 길을 택해야 한다. 그러니 김 대표의 결단을 나는 끝까지 기대해 보련다.

YS DJ와 같은 거목들 또한 정치를 하면서 크고 작은 희생을 치렀다. 그 결과가 그들은 거물로 오르고, 궁극에는 최고가 됐다. 자기희생은 아픈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 없이는 큰 나무가 될 수 없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