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볼만한 곳] 인제 대암산 용늪과 DMZ 트레일 금단의 ‘비경’

용늪 기념봉에서 필자(앉은 이)와 일행 단체사진


용늪과 DMZ 트레일 금단의 비경…38도선 넘어 옛 민통선 쪽 포성 연발

연이어 포성이 울렸다. 여기는 위도 38도를 넘어선 지역이다. 남북은 대치 중, “쿵 쿠웅” 대포 소리에 놀란 가슴 쓸어내린다. 한파가 닥쳐 단풍이 절정을 지난듯하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러나 아침 햇살에 타오른 붉디붉은 선혈같고, 황금 빛 노오란 나무잎들에 눈은 부셨다.

이곳은 1280m 산정의 습지. 연평균 기온 섭씨 4도, 170일 간 안개에 싸인다. 그러니 습지가 높은 고원인데도 유지됐으리라.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흥리 대암산에 있는 용늪. 4500년 전 형성된 고층 습원으로 희귀 습지식물이 서식하는 자연생태계의 보고다. 1997년 국내 최초의 람사르조약 보호지로 등록됐다. 대암산(1304m) 정상 부근에 형성된 습지 면적만 1만평 가량(정확히 7490㎡). 용늪은 ‘하늘로 오르는 용이 쉬었다 가는 곳’이란다.

인제군 대암산 용늪

1966년 비무장지대(DMZ) 생태계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산 정상에 형성된 남한의 유일한 고층 습지다. 바닥은 평균 1m 깊이 이탄층(泥炭層, 습지에서 생물이 죽은 뒤 썩거나 분해되지 않고 쌓인 짙은 갈색층)으로 덮여 있다. 용늪 이탄층에서 추출한 꽃가루를 분석한 결과, 습지가 만들어진 시기는 4500여년 전이다. 환경부 조사 결과, 이곳에는 순수 습원식물 22종을 비롯하여 112종이 서식한다.

대암사초와 산사초, 삿갓사초 등의 사초류가 군락을 이룬다. 가는오이풀·왕미꾸리꽝이·줄풀·골풀·달뿌리풀 등도 늪 주위에 흔하다. 제비난초 등이 7월이면 자태를 드러낸다. 끈끈이주걱과 통발 같은 희귀한 식충식물도 있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금강초롱꽃과 비로용담·제비동자꽃·기생꽃도 서식한다. 늪 가운데에는 폭 7~8m 연못이 2개 있다. 물이 매우 차고 먹잇감이 없어 물고기는 없다.

히지만 미생물이 많은 독특한 생태계로 손꼽힌다. 물벼룩과 장구말이, 도룡뇽과 물두꺼비, 개구리도 서식한다. 1989년 자연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1997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람사르조약의 습지로 등록된다. 역사적·문화적 가치로 문화재청은 천연보호구역(1973년)으로, 산림청은 자생식물의 종 보호·관리를 위하여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2006년)으로 지정했다.

일반도로에서 용늪까지는 13km의 비포장도로다. 걸으면 두시간 반, 자동차로 30분 걸린다. 용늪 생태탐방로 입구엔 습지 해설사와 산림청 등 관련 기관의 담당자들이 과니소를 두고 컨테이너에 상주한다. 자연생태계 보호구역과 군사보호구역까지 중첩된다. 환경청, 산림청, 인제군, 21사단이 각기 자신의 영역으로 여긴다. 용늪 오르는 길에 큰 장석들을 왜 깔아뒀는지, 걷기에 불편하다.

몇년 전 람사르에 등록된 습지 가운데 낙동강변 우포늪도 가봤다. 6, 7년 전에 이어 두번째지만 이곳 고원습지는 생태의 신통방통함에 눈과 귀가 쏠린다. 첫 방문 때는 해설사 설명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두 명이나, 한상훈 박사까지 친절하고 자상한 안내로 많은 걸 새로 알게 됐다.
최근 한파와 된서리로 단풍이 한 물 가는 중이다. 고산지대라 풀잎이나 낮은 관목에 얼음, 상고대가 곳곳에 보였다.

누군가 “나무 위가 상고대니, 이건 하고대”라고 우스개 재치문답을 한다. 용늪을 둘러보고 그 위의 대암산을 오른다. 정상 가는 길, 묘하게 서 있는 장사 바위가 눈에 꽂힌다. 전설로는 장사가 들어 올려놓았다는 믿기 힘든 형상이다. 대암산 정상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능선들이 참으로 장관이다.

맨 눈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금강산 능선을 비롯한 백두대간 등줄기가 굽이쳐 흐르는 광경 앞에서 우리는 언어의 한계를 깨닫는다. 바로 앞, 도솔산 전투로 유명한 펀치볼도 내려다 보인다. 6.25 때 수많은 포탄이 펀치볼처럼 떨어졌고, 인명 피해도 막심했다 한다. 산으로 빙 둘러싸인 형상의 분지 지형으로 펀치볼 이름을 얻었다고도 한다.

다시 대암산에서 내려와 설악산 능선을 잘 조망할 수 있다는 임도로 갔다. 이 구간은 인제 천리길에도 포함된 비경의 구간이다. 설악산의 대청봉과 공룡능선 그리고 향로봉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겼다. 여긴 벌써 겨울이 왔다. 어제 아침 영하 3도, 자정 지난 오늘은 더 춥다니…아무튼 위도 38도를 훨씬 넘는 곳, 금단의 곳을 들러본 행운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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