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화제] 시인 김지하-이동순의 ‘마라톤 노래대결’

김지하 시인

노겸 김영일(김지하) 조용필과도 노래 대결
시인 동순에겐 졌고, 가왕 용필에게는 이겨

“아이쿠, 징그러워라! 이 따위 잔인한 짓은 다신 안 해!” 8시간 마라톤 노래 대결 끝, 김지하가 손을 들고 말았다. 전날 저녁 8시에 시작한 승부가 대단원의 막이 내린 거다.

고 전혜린 동생, 전채린 집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켰다. 이 내용은 시인 이동순의 회고로 알려졌다. 김지하의 49제 때 발간한 제법 두툼한 문집에도 나온다.

이동순 시인

이동순은 가요 에세이집 <번지 없는 주막>을 펴낸 바 있다. ‘1980년대 허리춤께, 충북 청주에 있는 불문학자 전채린 교수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시인 김지하와 시인 이동순이 마주앉았다. 작가 김성동과 철학자 윤구병 교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왜 둘이 대결하듯 비장하게 마주 했냐고? 두 시인 모두 노래하면 내로라로, 호가 난 사람들이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모르는 노래가 없다.

100곡 넘게 1절만 아니라 2, 3절까지 외워 부른다. 둘 중 누가 더 잘 부르는가 결판을 내는 엄숙한 자리였다. 김지하는 ‘돌아와요 부산항에’ ‘창밖의 여자’로 한창 잘 나가던 밤무대 가수 조용필과 시합을 벌여 꺾었다.

조용필은 그때 중앙정보부가 기획한 대마초 파동에 걸려 밤무대만 뛰고 있을 때였다. 원주관광나이트클럽에 원정을 와 김지하와 첫 상면했다. 그날 재야의 도시, 군사도시, 주먹의 도시답게 원주의 난다긴다 하는 인사들은 총집결했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지학순 주교와 무위당 장일순 선생까지… 그 공연 후 지하가 용필을 집으로 데려가 노래 시합 끝에 가왕의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생명’이라는 불후의 명곡이 고 전옥숙 작사로 나오게 된 배경이다. 그때 김지하는 ‘봄날은 간다’를 3절까지 불렀다. 비상한 머리로 가왕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요량이었다.

승부는 싱겁게 끝이 났다. 노래를 끝절까지 막힘없이 부른 지하를 형으로 모셨다. 그리고 곡을 하나 주십사해 그 자리에서 뚝딱 내놓았다. 바로 그게 가요 생명의 탄생이다. 70년 중후반쯤으로 난 알고 있다. 그때가 생명사상의 맹아에 지하가 빠지기 시작한 때일까? 

지하 요량은 노래깨나 불러본들 밤 새워 소주 마시며 겨루면 제 풀에 나가떨어질 거로 여겼다. 지하는 작가 김성동과 함께 청주 무심천 방뚝에 있는 국밥집에서 소주를 곁들여 저녁까지 든든히 먹었다. 그리고 밤참으로 먹을 과일과 술, 라면 따위를 잔뜩 사들고 이동순과 그 일행들이 묵고 있는 숙소로 갔다.

노래 부르는 규칙도 엄격했다.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나면 1분 안에 이어서 불러야 하고, 한번 부른 노래를 다시 부르면 가차없이 실격이다. 3절까지 노래를 부르면 보너스 점수를 주기로 했다. 가사를 컨닝할 노래책도 없고, 가라오케는 당근 없었다.

노래시합은 저녁 8시부터 시작됐다. 두 시인이 주고받은 노래시합은 새벽 4시를 훌쩍 넘겼다. 동이 틀 무렵, 불러도 불러도 쉬지 않는 동순에게 지하가 “아이쿠, 징그러워라! 이 따위 잔인한 짓은 다신 안 해!”라고 했다.

김지하 시인이 이동순에게 쓴 편지

그러곤 고단한 얼굴로 드러누워 버렸다. 천하의 김지하, 돌아갈 때 노겸 김영일(김지하)의 완패였다. 노겸은 감옥소에서도 “도둑님들과 통방 때 노래를 불러제끼곤 했다” 한다.

전라도 주먹들이 범죄와의 전쟁 땐가 우루루 잡혀왔다. 그 중에 오기준, 조양은, 김태촌도 있었던 모양이다. 김지하는 태촌이는 못 봤고, 오기준 조양은은 봤단다.

특히 양은이는 맛난 카스테라를 잔뜩 싸들고 와 노겸 담당 교도관에게 안겼다. 그러면 교도관이 자기 먹을 것 챙긴 뒤, 노겸에게 건넸다. 그리고 통방 시간마다 죄수들이 한가락 하는 노겸의 노래를 청했다.

그 무렵, 누군가가 조용필의 꽃 피는 부산항에를 불렀다. 출소 후 KBS 최고의 다큐 PD 정수웅에게 청해 맥주집에서 용필을 만났다. 그러저러 인연으로 원주관광호텔 공연과 가왕과의 노래시합이? 거의 야사 수준이라 정확한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가왕 용필은 김민기와는 노래시합은 안 했다. 대신 술 시합을 해서 둘이 마신 소주병만 20여병…벽 한쪽에 세워둔 게 벽 한면을 채웠다고 한다. 그 술시합을 목격한 게 명리학에 빠진 가요평론가 강헌. 칼럼을 몇년 전 썼던 걸 본 일이 있다.

김민기는 나의 친정 동아일보 정치부장을 지낸 이도성과 절친이다. 초중고에 대학까지 동창인 그야말로 한 세대를 같이 지내고 지금도… 이도성의 환갑 때, 김민기가 왔다. 그 자리에는 광명 야학 후배들이 근 20명 가깝게 왔다.

다들 한가락한 인간들이 많았다. 삼성 사장인 이인용에게 환갑 소식을 듣고 나도 가봤다. 검찰총장 지낸 김준규, 전북은행장 지낸 김한, 이번에 배지를 다시 단 4선 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그 자리에서도 김민기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고, 누구도 청하지 않았다. 그래본들 자기 노래를 결코 부르지 않는 게 김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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