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시인의 자책과 감사···”아들아, 고맙다. 사랑한다”

어린 이동순과 부친. <목포의 눈물> 영화 보러 갈 때 사진으로 이동순은 기억한다. 이 시인 아들도 이  사진 속 부자의 정을 십분 느끼리라. 

세상에 가장 미덥고 든든한 게 가족의 신뢰와 사랑이다. 그런데 주변을 조금만 돌아다 보면 가족들로부터 배척받고 소외당한 뒤 아픈 가슴을 움켜 쥐고 살아가는 외롭고 힘든 사람들이 많다.

이 세상엔 외롭고 힘든 처지가 정말 많지만 가족과 하나 되지 못하고 혼자 떠돌이별처럼 튕겨져 나와 바람찬 거리를 헤매거나 후미진 골목 차디찬 쪽방에서 겨울을 견디는 인생이 생각 외로 많다.

예전 대학시절에 외로운 사람에 대해 배웠다. 환과고독(鰥寡孤獨)이 그들이다. ‘환(鰥)’은 아내를 잃은 홀아비를 말한다. 내 어릴 적 아버지가 바로 그러하셨다.

‘과(寡)’는 낭군을 잃고 홀로 된 여인이다. 식민지와 분단과 이념대립의 소란과 기어이 터진 전쟁으로 천지가 뒤집혔던 우리의 파란 많은 근현대사에선 무수한 과부를 양산했다.

‘고(孤)’는 부모 중 어느 한쪽을 잃은 자식이다. 서포 김만중은 돌아가신 어머니 행장을 쓸 때 글의 끝에서 스스로를 고애자(孤哀者)라 했다. 태어난 지 열달 만에 엄마가 세상을 떠나신 나도 바로 그러한 고애자(孤哀者)였다.

‘독(獨)’은 부모를 둘 다 잃은 애달픈 자식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를 잃었으니 나는 하늘 가에 심신을 의탁할 곳이 없는 영원한 고독자(孤獨者)이다. 하지만 세상엔 극단의 외로움에 내동당이 쳐져 삶의 갈피를 잃은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물질이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어떤 막다른 경우에도 작은 정 하나가 삶의 새로운 힘과 의욕을 소생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주변을 돌아다보아야 한다. 특히 설 명절은 다가오는데 몸과 마음이 여전히 추운 사람은 없는지 조금만 주위를 천천히 돌아보자.

지난 2003년 가을에는 내가 오랜 시간 끌어온 민족서사시 “홍범도”를 발간하고 스스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전5부작 10권 짜리 전집물 수준이었다. 20년 동안 쏟아부은 공력의 시간에 작은 위로와 격려라도 받고싶은 그런 심정이었다.

가까이에선 제자들이 행사를 주선하느라 바빴고 주변의 많은 지인들이 꽃을 들고 와주셨다. 멀리서 친구들도 일부러 달려왔다. 그 고마움을 어디에 견줄 것인가?
당시 내 아들은 20대 초반의 대학생이었다. 제 한 몸 건사하기에도 넉넉하지 못한 처지에 아버지의 시집 출판기념회를 맞아 혼자 얼마나 걱정하고 노심초사했으랴?

행사 전날 아들은 하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정성들여 또박또박 쓴 편지와 제법 많은 돈이 거기 들어있었다. 나는 그 편지를 읽으며 눈물이 흘렀다. 아무도 모르게 돌아서서 손등으로 눌러 눈물을 닦았다.

이런 진심, 이런 사랑, 이런 존경심을 모르고 내가 그동안 무심히 소홀하게 살았구나. 심한 자책이 일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아들아, 고맙다. 사랑한다.

위로 부모님을 잃었지만 이젠 아래로 가족사랑이 계속 이어지니 그 행복이 곧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닌가? 20년 전 받았던 아들의 편지를 소개한다.

이동순 시인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홍범도” 출판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출판기념 선물로 무엇을 해드릴까’ 라는 고민 끝에
출판기념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루어내신 대업(大業)에
너무나도 부족하지만
아버지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하는
아들 응이의 마음으로 생각해주세요.
다시 한 번 아버지께서 혼신을 다 바치신
“홍범도”의 출판을 축하드리며…

2003년 10월

아들 응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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