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해직·<한겨레> 창간 ‘두 이종욱 기자’와의 인연

파주의 명사로 꼽혀 소개된 이종욱(李宗郁) 시인 

이종욱(李宗郁, 1945~ ) 시인을 아시는가? 대개는 그 이름이 생소할 것이다. 동아일보에 입사해서 기자를 오래 했고 <반시> 동인으로도 활동했으며 창비시선으로 “꽃샘추위”란 시집도 발간한 적이 있다.

경북 예천 출생으로 고려대 영문과를 나왔고 동아일보에서는 주로 <신동아> 파트에서 일했다. 1975년 동아일보의 반민주적 작태에 저항하다 여러 기자들과 함께  강제 해직된 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즉 ‘동아투위’에서 여러 해를 싸우며 힘든 여건 속에 일했다.

동아일보 해직 후 이종욱 시인과 2세

1975년 <창비> 겨울호를 통해 시 ‘이제 다 보여요’ 등을 발표하며 시인이 되었다. 1977년에는 <창비> 편집부 직원으로도 일했고 그 이듬해에는 <반시> 동인이 되어 시를 발표했다. 이후 한겨레 창간 때 합류해 문화부장 등을 역임했다. 

한겨레신문 창간 당시 시인 이종욱(李宗郁)은 문화부장으로 역할했다. 당시 종합편집부장이던 이종욱 기자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한겨레 동료들은 시인 이종욱을 작은이종욱으로 지칭했다. 

대표시집으로는 <꽃샘추위>가 있으며 번역서 <현대아프리카 시선> 등을 발간했다.

이종욱 시인과의 만남은 불과 한두 번 뿐이다. 정호승 시인이 신동아에 근무할 때
세종로 동아일보 건물에 우연히 올라갔다가 옆자리의 이종욱 기자를 소개해서
인사를 나눈 것이 모두이다.

깡마르고 날카로운 인상이었지만 검정 뿔테 안경 뒤에서 활짝 웃는 눈이 선량했다. 그후 전화통화도 여러 차례 했지만 서로 자주 만날 인연은 아니었던가 보다.

경기도 파주의 문화마을 헤이리 쪽에 살면서 여전히 책과 관련된 일을 한다고 들었다. 시는 전혀 안 쓰는지 후속작품을 볼 수 없었다.

이종욱(李鍾旭) 기자. 동아투위 위원장 시절로 그는 동아일보 해직 후 88년 한겨레 창간에 동명의 이종욱 기자와 함께 참여해 종합편집부장을 맡았다. 한겨레에선 큰이종욱이라 했다.

같은 동아투위 출신인 한길사의 김언호 대표께서 일부러 연락 주셔서 동아일보 해직기자로 또다른 이종욱이 있는 줄 알았다. 그 역시 한겨레 창간 때 종합편집부장으로 참여했다. 두 이종욱이 서로 다른 동명이인임을 염무웅 선생께서도 알려주셨다.

시인 이종욱은 김명수 시인과 외사촌이라고 한다. 한글 이름은 같고 한자는 다른 이종욱 선생은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후 <주간시민>이란 간행물을 펴내었는데 그리 여러 해 이어가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청탁서를 보내며 곁들여 쓴 이종욱 선생의 친필 편지 하나가 눈에 띤다. 이처럼 오래된 편지는 그 시절 그 현황을 고스란히 실감나게 증언해준다.

이런 점에서 편지는 소중한 기록문학의 범주에 든다. 어쨌건 시인 이종욱의 대표작 ‘꽃샘추위’를 함께 읽어보기로 한다.

이종욱 시인의 <꽃샘추위>

살아서 갚을 빚이 아직 많다
새벽 공기를 돌려야 할 집이 아직 많다
죽어서도 물음을 묻는 무덤이 아직 많다
우리 발에 올가미가 걸릴 때
우리 목을 억센 손이 내리누를 때
마주보는 적의 얼굴
가거라
한치도 탐하지 말라
몇 점 남은 우리 몸의 기름기
겨울의 마지막에 아낌없이 불을 당겨
겹겹이 쌓인 추위 녹일 기름
한치도 탐하지 말라
우리의 머슴이 되지 않으면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가져가거라
마주잡는 손과 손을 갈라놓는 찬바람을
씨 뿌린 자가 열매 거둘 날이 가까왔다
번개가 번쩍이는 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안다
갚을 빚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 안다
식중독으로 뜬눈으로 새우는 밤
우리는 하늘의 뜻을 버렸음을 깨닫는다
무덤 속에서 살아 있는 불꽃과 만난다
바람이 셀수록 허리는 곧아진다
뿌리는 언 땅속에서 남몰래 자란다
햇볕과 함께 그림자를 겨울과 함께 봄을
하늘은 주셨으니
                                                               -이종욱의 시 ‘꽃샘추위’ 전문

이종욱(李鍾旭) 당시 <주간시민> 편집장이 이동순 시인에게 보낸 원고청탁 편지

李東洵 선생께

더위에 어떻게 지내십니까?
창비(創批) 여름호에서 이 선생의 작품을 읽고
저희 신문에도 한편 주셨으면 해서
청탁드립니다.
지금까지 30여 분의 작품을 저희들이 실어왔으나
대개 창비의 염 선생이나
신경림 선생의 추천으로 청탁해 왔습니다.
신문체제상 분량은 21행 정도가 적당하옵고,
마감은 따로 없습니다만
가급적이면 일찍 보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아직은 보잘 것 없는 주간지(週刊紙)이나
동아일보 기자들 몇이 모여
그나마 제대로 된 신문을 만들려 노력하는 것이
오늘의 <주간시민(週間市民)>입니다.
옥고(玉稿) 기다리옵고 건필 빕니다.

<주간시민> 편집장

李 鍾 旭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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