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뱅이의 노래> 남기고 떠난 시인 이정우 알베르토 신부

강론 중인 이정우 알베르토 신부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1969년 봄이었다. 경북대 문리대 국문과에 입학하니 전설적 선배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K, H, L 선배가 대표적인 경우인데 그들이 늘 전전긍긍하는 글방에 가면 습작한 원고지를 쌓아놓은 더미가 가히 키높이 쯤은 된다는 소문이 있었다.

나는 그 말에 미리부터 주눅이 들었다. 전설적 선배들 부근에도 다가가지 못하고 그들 또한 아득한 풋나기 후배에 대해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 가운데 L선배가 바로 이정우(李庭雨, 1947~2018) 시인이다.

젊은시절 이정우 신부

경북대 국문학과의 과가(科歌)를 작사했던 명망이 자자한 선배였다. 이야기할 때 집중의 표정으로 늘 눈을 깜빡이던 이지적 얼굴의 마스크가 부러웠다. 굵고 두툼한 안경 뒤에 숨어서 사물과 세상을 내다본다는 시도 썼다. 경북 의성 신평 출생으로 부친이 시골에서 병원을 운영한다고 했다.

대학졸업 후 합동통신 기자로 입사해서 잠시 서울생활을 했었다. 그러다가 돌연히 광주의 대건신학대학으로 입학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신학생 초기에 신앙과 문학 두 갈래길에서 고뇌도 많이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학대 2학년 승급을 앞둔 1973년 새해, 동아일보 신년호를 읽고 몹시 놀랐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눈길도 주지 않았던 까마득한 대학후배에게 축하전화를 먼저 걸어왔고 일부러 주중에 시간을 내어 나를 만나러 왔다.

당시 나는 어느 요정에서 가정교사로 있었는데 시내 맥주집에서 한잔 나눈 뒤 밤이 깊어서 내 방으로 함께 돌아왔다. 그 식당은 꽤 이름 있는 요릿집으로 밤이 깊으면 커다란 철문을 닫아건다. 대문을 닫아 걸기 직전에 돌아와 내 방에서도 다시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선배는 시인이 된 후배가 몹시 자랑스러웠나 보았다. 나보다 훨씬 먼저 문학을 시작했고 또 학과의 전설적 존재로 군림했지만 아직 등단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후배의 신춘문예 당선에 몹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정중한 예우로 말투도 공대를 하면서 조심스럽게 대해주셨다.

다음날 새벽 4시 경, 선배는 광주로 돌아가는 새벽 차를 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철문이 잠겨 나갈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선배는 철조망이 처진 담장을 기어올라 철망을 아슬아슬 넘어서 월장(越墻)으로 건너갔고 그 얼마 뒤 이런 긴 편지를 보내주었다.

그로부터 아주 여러 해가 지난 뒤 이정우 선배는 사제로 서품이 되어 대구의 봉덕동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선물을 준비해서 성당으로 찾아가 로만칼라 차림의 선배와 해후했다. 선배가 집전하는 미사도 참석했다.

또 그 몇 해 뒤 다른 지역으로 옮긴 선배를 일부러 물어 물어 찾아갔는데 그때는 이미 관록이 느껴지는 사제였다. 이정우 알베르토 신부는 <앉은뱅이의 노래>, <이 슬픔을 팔아서> 등의 영성(靈性)이 느껴지는 시집도 여러 권 내었고 대구의 가톨릭문학회 지도신부로 여러 해를 맡아서 일했다. 그러다가 지난 2018년 초여름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고인이 되셨다.

이정우 알베르토 신부의 묘와 비석

이정우 신부시인의 호젓한 시작품 ‘겨울 저녁’ 한 편을 소개하고, 당신의 신학대학 2학년 때 보내준 친필편지도 50년 만에 처음 공개하고자 한다.

누군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저 들녘 끝으로
아주 조그맣게 사라져갑니다
이 겨울 저녁엔
먼 옛날처럼
진눈깨비가 내리고

저희도
저 눈밭 속에 저물어
한 세월을 보냅니다

누군가 이세상의
사랑도 다 잊고
저 들녘 끝으로 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정우 신부의 시 ‘겨울 저녁’ 전문

젊은시절 이정우 신학생이 갓 등단한 시인, 후배 이동순에게

+ 지상에 평화!

李 東 洵 仁兄 앞

그간 안녕하셨나요?
대구서 하룻밤 잠도 불편할 만큼 굴어서
미안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그런 덕분에 다시 이곳엘 와서
새 학기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원고는 ‘낙엽’이란 것 빼놓고는 모두 이전의 것입니다.
가끔 詩 생각만 할 뿐, 통 쓰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욕구에 대한 보상을
이곳에서는 詩 말고도 얻어서 그런지,
또 아니면 공부과목 중
읽어오라는 지정도서만에 매달려도
부실한 형편에 제가 있어서 그런지,
이러한 변명이나 합니다.
그런데 근래엔 ‘詩=말씀’이란 등식이
괜히 뇌리에서 오가고 있습니다.
그냥 언어(소리)가 일정한 의미-로고스(Logos)랄까?
로서의 말씀으로 피어나오는 과정을
창조과정에 비겨봅니다.
그저 아직 어린아이라 치고
다시 제대로 이 말을 배우고,
또 대화할 수 있는 힘을 길러보려는 것이지요.
성대를 통해 나오는 그것이 아닌
‘요한서 서문(序文)’을 연상시키는
‘말씀으로서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낙엽’을 그런 태도(관심, 입장)로 써보려 했는데
아주 미흡합니다.
자주 편지 주시면 저도 덜 외롭게 될 것이고,
서로 얘기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충만 가득한 은총이 늘 있게 되기를 기원하면서
이만 총총……
Salom hahere!(안녕 친구여!)

1973년 3월 6일

李 庭 雨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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