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발치로만 바라본 인연, ‘풀잎 끝의 이슬’ 이승훈 시인

이승훈 시인

사람은 길을 잘못 접어든 경우라도 어떤 번민과 용틀임 끝에 반드시 자신의 길을 찾아 접어들게 된다. 이승훈(李昇勳, 1942~2018) 시인이 그렇다.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의사를 꿈꾸었으나 공학도 시절을 거쳐 결국 시인이 되었다.

부친은 공공의로 시골을 옮겨다녔으며 가족들도 가장의 이동에 따라 함께 이사를 다녔다. 이런 표류와 같은 생활 속에서 소년 이승훈의 시인적 감성이 성장했으리라.

춘천 출생으로 처음엔 한양공대 섬유과를 진학했으나 대학 3학년 때 국문과로 전과한다. 그때 이미 속에서 시가 꿈틀거렸던 것이다. 대학시절부터 박목월 시인의 사랑을 받았고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친 뒤 박사과정은 연세대 박두진 선생의 제자가 되었다.

졸업 후 즉시 춘천교대 교수로 부임하였다. 이때 가르친 제자 중 시인이 된 경우가 최승호다. 나중에 한양대 국문과로 자리를 옮겨 평생을 그곳 교수로 살았다.

1962년 <현대문학>지에 시 ‘낯’ 등 2편이 추천되어 시인이 되었는데 스승은 목월 선생이다. 초현실주의와 언어기호학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선시, 해체시,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시에 대한 저서를 지속적으로 발간하기도 했다. 정신분석학과 시를 연관시킨 연구서도 있다. 아방가르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비대상시’라는 고유의 시론을 내세웠는데 이는 자신만의 방법이라기보다는 ‘무의미시’를 언제나 주장하고 실천했던 김춘수 시인의 방법에 대한 흠모와 계승이다.
실제로 두 시인은 자주 만나 서로에 대한 공감과 애착을 표현하곤 했다.

이는 각자 남남으로 멀리 떨어져 살지만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동류의 스타일인 경우 처음 만나도 마치 오래 만나온 친척, 혹은 같은 혈족으로서의 공감이나 반가움을 갖는다. 김춘수는 한 편의 시에서 의미가 구축되는 것을 끝까지 파괴하고 방해해서 흩어놓았다. 그것을 ‘무의미시’라고 일컬었다.

의미의 세계는 공중화장실 변기처럼 다중에 의한 빈번한 사용으로 오염되었으니
의미 이전의 고결함으로 돌아간다는 그런 이상적 논리와 시적 추구를 담고 있다.
이승훈의 ‘비대상시’란 관념의 설정도 시인이 어떤 시적 대상을 미리 갖추어놓고 쓰는 건 단순하고 따분하며 비겁성까지 품는다고 한다.

그리하여 자신은 어떤 대상을 미리 염두에 두지 않고 시 속에서 헤매는 불특정 비대상을 포착해서 그 내부의 숨은 시를 찾아낸다고 한다. 워낙 실험정신의 농도가 강렬해서 이승훈의 시는 난해하고 접근하기가 어렵다.

그는 김수영 김춘수 등의 뒤를 이어 시와 시론 모두에서 탐색과 변주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시문학사에 일정한 충격파와 미학을 전했다. 삶의 후반에는 불교의 선시(禪詩)에 심취해서 그러한 실험을 계속 이어갔는데 승려처럼 삭발하며 승복을 입고 살았다. 당시에 그가 쓴 선시풍의 시 한 편을 소개한다.

풀잎 끝에 이슬 풀잎 끝에 바람/ 풀잎 끝에 햇살 오오 풀잎 끝에/ 나 풀잎 끝에 당신 우린 모두/ 풀잎 끝에 있네 잠시 반짝이네/ 잠시 속에 해가 나고 바람 불고/ 이슬 사라지고 그러나 풀잎 끝에/ 풀잎 끝에 한 세상이 빛나네/ 어느 세월에나 알리요?                                                                      -이승훈의 시 ‘풀잎 끝의 이슬’ 전문

1970년대 중반 내가 한 친구와 공동작업으로 시집을 발간하고 보냈을 때 엽서로 쓴 답신을 보내왔다. 당시 그는 춘천교대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아직 한양대로 옮겨가기 전인 30대 초반의 한창 때였고 그의 시적 실험이 활발하게 펼쳐지던 시기였다.

나는 이승훈 시인과 생전에 대면의 기회가 없었다. 서울역 부근에서 승복을 입고 걸어가던 시인의 모습을 먼 발치로 본 것이 모두이다. 첫눈에도 사진에서 보던 시인을 알아보았으나 끝내 나는 다가가서 말을 걸지 않았다. 차갑고 무표정하고 낯선 사람과 사물에 대해 늘 경계하는 그런 기색이 뚜렷했다.

이승훈이 이동순에게

부쳐주신 2인 시집 “백자도”
고맙게 받았습니다.
이하석 형에게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부디 좋은 시 많이 쓰시어
이 땅 시단(詩壇)을 더욱 빛나게 해주십시오.
바람 속에서 춘천(春川)의 5월이
가나봅니다.

1975년 5월

李 昇 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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