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12월 2일자 육군 052탄약창 제대명령서 한번 보실래요?”

이동순 시인의 제대명령서. 명령서 맨 위는 유신시대의 정치적 구호인 ‘근면 검소 저축’이다. 어디나 이걸 써붙였다. 그 다음 줄은 ‘제052 병기탄약창’이다. 이곳은 경북 영천에 위치해 있다. 그 아래로는 군대의 행정문서 표시로 ‘인사명령 제136호’이다. 날짜는 1977년 12월 2일, 입동 무렵이다. 계급과 군번이 찍혔고 소속은 700중대. 이 하급부대는 052탄약창에서도 가장 변두리다. ‘특기는 900’, 이건 보병표시다. 그 시점에 9명이 함께 제대하는 내용도 있다. 대학시절 교련수업을 모두 이수했으므로 ‘3개월 단축’이라는 표시도 보인다. 

내 어릴 적 아버지는 온갖 것을 모아두는 습관이 있었다. 물품을 포장한 노끈에서부터 묶어싼 보자기는 물론 안에 든 메모까지 편지 모아두기는 기본이셨다.

부고로 왔던 불길한 소식이 담긴 봉투는 담장 목재 틈새나 변소 천장 나무 틈에 끼워두고 절대 보거나 손을 대지 말라 하셨다. 아버지의 물품 보관은 거의 굵게 쪼갠 대나무를 얽어 짠 큰 고리짝이었고 그 안에 든 것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늘 혼자 다락방에 오르셔서 한참 만에야 내려오셨는데 그 경우는 새 물품을 비밀스럽게 보관하신다든가 아니면 보관물품의 일부를 꺼내오실 때였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일한 사진을 계모 몰래 아들에게 전해주신 곳도 다락방이다.

그런데 그 귀한 사진을 잃어버렸다. 너무 깊이 갈무리해두어 결국 찾지 못했다. 나는 아버지의 이런 버릇이나 습관을 그대로 자연스럽게 내림받았다.

세상에 버릴 건 하나도 없다며 아버지는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닮아 나도 별난 수집벽이 생겼는데 세월이 지나서 되돌아보니 참 별별 것을 다 모았다. 어떤 것이든 냉큼 버리기를 주저하고 일단 모아둔다는 것이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다.

그 습관 덕분인지 내 스크랩 북에는 온갖 기상천외의 물품들이 더러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등사판 인쇄로 된 타자로 찍은 군대의 제대명령 공문서이다. 어찌 이런 것까지도 버리지 않고 삶의 기념물로 남겨둔 것인지 별난 취향이다. 일단 내용을 한번 살펴보자.

맨 위는 유신시대의 정치적 구호인 ‘근면 검소 저축’이다. 어디나 이걸 써붙였다.
그 다음 줄은 ‘제052 병기탄약창’이다. 이곳은 경북 영천에 위치해 있다. 그 아래로는 군대의 행정문서 표시로 ‘인사명령 제136호’이다. 날짜는 1977년 12월 2일, 입동도 소설도 지나 대설을 앞둔 무렵이다. 계급과 군번이 찍혔고 소속은 700중대. 이 하급부대는 052탄약창에서도 가장 변두리다. ‘특기는 900’, 이건 행정병 표시다. 그 시점에 9명이 함께 제대하는 내용도 있다.

대학시절 교련수업을 모두 이수했으므로 ‘3개월 단축’이라는 표시도 보인다. 제대명령을 받고 부대를 공식적으로 떠나는 출발일자는 큰 배려와 혜택을 받아서 하루 전이다. 이 제대명령서를 기안하고 실행한 주체는 행정과장 ‘대위 최진’이라는 분이다.

이 문서를 전해 받고 얼마나 기뻤던지 이것을 무슨 신주단지 모시듯 구김도 가지 않게 소중히 갈무리해서 마치 귀한 선물처럼 고이 고이 품에 지니고 집으로 조심조심 돌아왔던 것이다. 어서 복무날짜가 줄어들라며 다른 병사들이 흔히 하는 방법인 사병 작업모 창 아랫쪽에다 달력을 그리고 하루 하루 ×표로 날짜를 하나씩 지우며 망연히 세월을 보내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참으로 별것 아닌 허섭쓰레기에 불과한데 세월이 45년으로 접어드니 무슨 보물처럼 귀한 기록물로 떠오른다. 야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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