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각별한 부탁을 어찌 거절하리오

1959년 대구 서내동 시절 이동순 시인과 부친 이현경. 올해 생존하셨다면 114세다. 

아버지께서는 1908년 무신생이다. 아들에게 보내신 편지가 그리 많진 않다. 독립운동을 하시던 일괴공(一槐公) 조부께서 당신 아드님들의 일본식 학교교육을 일절 거절하고 오로지 마을 서당에만 다니게 하셨다.

그 때문에 아버지의 편짓글은 대개 한문투의 문장으로 고전적 격조를 지키셨다. 이것은 오로지 서당에서 훈장 선생이 읽어가는대로 소리 내어 “통감”, “동몽선습”, “명심보감” 등을 따라 읽었던 전통적 학습 효과와 그 습관이 몸에 밴 탓이다.

그래도 오늘 올리는 이 편지는 국한문혼용도 아닌 너무 심한 한문현토체이다. 난삽한 한문에 오로지 국문 토(吐)만 달아놓은 그런 이해불가의 문장으로 쓰셨다.
그 까닭을 가만히 헤아려보니 아버지가 아들에게 무슨 어려운 부탁을 하고 싶은데 그 속뜻은 겉으로 슬쩍 감추고 짐짓 체통과 자존심은 당당히 지키시고 싶은 그런 심정으로 쓰신 게 분명하다.

내 어릴 적 아버지는 부부간 비밀대화를 나눌 때 꼭 일본말로 얘기를 주고받았다. 마치 그것처럼 난처한 부탁을 하시느라 일부러 한문투의 격식을 갖춘 문장으로 쓰셨다. 말하자면 아들에게 은근한 과시를 하신 게다.

그런데 그 부탁이란 다름 아닌 아버지가 다니시던 노인복지대학에서 교지(校誌)를 발간하는데 거기 실을 원고 한 편을 대필로 요청하시는 것이다. 아들이 신춘문예에 당선한 시인이고 문장가이니 그런 부탁쯤은 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신 게 분명하다.

당신 아들은 현재 사병으로 군 복무 중인데 일부러 편지까지 써서 부대로 보내어 대필 작품을 당당히 청탁해 오셨다.

아버지의 각별한 부탁을 어찌 거절하리오. 뭐라고 쓰긴 했는데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들의 대작(代作)을 자랑스럽게 마감기일 안에 제출하셨을 것이다. 그것이 교지에 실렸는지 여부는 모른다.

다만 아버지의 부탁을 충실히 지켰던 그 기억만 떠올라 혼자 빙그레 미소 짓는다. 아버지께서는 성주골 뒷산 묘소에서 이 추운 겨울밤을 지금 어찌 지내실까?

응달진 아버지 무덤엔 하얀 눈이 덮였으리라. 살아계신다면 올해로 114세가 되신다. 봄이 되면 예쁜 증손녀를 안고 가서 보여드려야겠다.

시인 아버지의 편지

東洵 열어보거라

네가 부모 슬하를 떠난 지
여러 달이 지나니 생각이 많이 나는구나.
날씨는 추워지고 한 해도 저무는데
너는 부대장님 모시고
군 복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곳 아비는 늘 하루 같이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다름 아니라
너도 잘 알고 있다시피
한국사회사업대학 부설 노인복지대학
수료식이 2월 26일이다.
2월 8일까지 수기나 감상문을
원고지 5~6매 분량으로 작성해서 제출하라고 한다.
네가 잘 궁리해서 한 편 써보내거라.
좋은 작품은 신문에도 싣고
원고는 본교에 영구보존한다더라.
되도록이면 잘 지어 보내주기 바란다.
그리고 이번 음력 설 엄마 제사엔 꼭 참석하거라.
하고싶은 말은 많지만 이만 줄이노라.

1976년 2월 2일

부(父) 서(書)

추신 : 작품 마감기한은 2월 8일까지이니
한 주일 내로 보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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