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레모에 파이프 담배 조병화 시인 “럭비는 나의 청춘, 그림은 나의 위안”
조병화(趙炳華, 1921~2003) 시인은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난실리 출생으로
일제말 서울의 경성사범을 졸업한 뒤
일본 동경고등사범으로 유학 길을 떠나
그곳에서 물리와 화학을 전공했다.
자연과학을 전공한 시인 이력이 드문데
이 부분에서 그의 존재는 이채롭다.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으로 등단한 뒤
일생동안 무려 53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시집 발간 분량으로는 한국시인 중 단연 으뜸이다.
경희대, 인하대 교수를 지냈고
고향인 경기도 안성에 그의 문학관이 있다.
시인으로선 드물게 격렬한 럭비선수를 했으며
그림과 조각에도 재능을 보였다.
아호는 편운(片雲)이며 당호를 ‘편운재’라 했다.
1996년에 발표한 그의 시 ‘나의 생애’에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축도가 그려져 있다.
럭비는 나의 청춘
시는 나의 철학
그림은 나의 위안
어머니는 나의 고향
나의 종교
나는 어머니에서 태어나와
어머니로 돌아가고 그 길을
한결같이 살아왔을 뿐
그것이 그렇게도 어려웠습니다.
-시 ‘나의 생애’ 전문
워낙 다량의 시집을 발간했기에
낱낱이 기억하기조차 분간이 어렵다.
이러한 다작 때문에 너무 쉽게 쓴다는 지적도 있다.
말하자면 언어적 밀도가 떨어진다는 뜻이다.
요즘 나태주 시인도 그런 위험성이 느껴진다.
각종 저서는 무려 160권이 넘는다.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했고 인복도 많았던 편이다.
부모가 운수업을 했었는데
그 고용기사 중 화물차를 운전하던
조중훈이란 매우 성실한 청년이 있었다.
그가 놀랍게도 나중에 한진 재벌의 총수가 되었다.
그 인연으로 한진이 설립한 인하대학 교수가 되었고
학장, 대학원장 등 높은 보직을 두루 거쳤다.
대한항공 어떤 노선도 1등석에 무료였다.
베레모를 쓰고 파이프 담배를 즐기며
이런 한가롭고 여유가 느껴지는 모습은
조병화 시인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맹목적으로 그런 흉내를 내는 글쟁이도 많았다.
1970년대 중반 한국문협 주최로
대구에서 순회 문학강연이 열렸을 때
서정주, 모윤숙, 이일기 등과 함께 왔었고
그때 첫 인사를 드린 것이 유일한 만남이다.
내가 발간한 작은 시집을 보내드렸을 때
엽서에다 짧은 격려 말씀과 함께
그 특유의 파이프 그림을 그려서 보내주셨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보니
이런 작은 엽서조차 기념물로 남는다.
그래서 모든 기록물은 소중하다.
시간과 인물의 생생한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