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걸 선생님 ‘애타게 울어대는 밤벌레 소리’ 듣고 싶습니다”

김병걸씨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지난 1974년으로 잠시 돌아가보자. 당시 박정희 독재정권은 파쇼적 유신헌법을 제정하고 그 중 53조인 ‘대통령긴급조치권’이란 괴물조항으로 독재권력에 저항하는 민주인사들을 마구 잡아들이고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1월에는 장준하, 백기완 선생이 구속되고 4월에는 이른바 ‘민청학련사건’이란 걸 조작해서 비판적 학생들을 체포 투옥시켰다. 뿐만 아니라 ‘민청학련’의 배후조직이라면서 ‘인혁당’이란 유령조직을 급조하여 진보적 지식인들 8명을 체포 투옥했다.

서둘러 그들을 법정에 세우고 공판이란 절차를 거쳐 황급히 통과시키더니 불과 한 해 뒤인 1975년 4월, 8명의 투옥지식인들을 모조리 사형시켰다. 온 세상을 얼어붙게 한 폭거였다.

1974년 11월 27일, 재야인사 70명이 서울 기독교회관에 하나둘씩 집결했다. 함석헌, 이병린, 천관우, 이태영, 계훈제, 서남동, 이우정 선생을 비롯하여 김규동, 백낙청, 김병걸 선생 등 문단인사들도 여기에 속속 참석하게 되었다. 이날 민주회복국민회의 결성이 있었던 것이다.

김병걸(金炳傑, 1924~2000) 선생은 함경남도 이원 출생으로 문학평론가였다. 일찍이 일본유학을 다녀왔지만 해방 후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사회적 불안 속에 1946년 서울로 내려와 교사생활을 했다. 1962년 <현대문학>지를 통해 평론 ‘에고에의 귀환’ 등을 발표하고 비평가로 등단의 과정을 거쳤다.

박정희 독재정권의 잔학한 부조리에 저항하며 리얼리즘비평의 기수로 활동하다가 경기공전 교수직에서 강제해직이 되고 오랜 고통과 시련의 세월을 겪으셨다. 유신독재정권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YMCA 위장결혼식 사건’에 참여하셨고, 민족통일민중운동 연합,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족문학작가회의 결성에 참가하신 대표적 민주인사 중 한 분이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여러 반독재 시위나 행사에 참석하면 반드시 뵙던 분, 1987년 내가 신동엽문학상 수상자로 뽑혀 작가 현기영 선생과 공동수상으로 받게 되던 날, 축하객으로 오셔서 격려해주시던 그날의 다정하신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김병걸 선생은 작고 가냘픈 느낌의 체구에도 어찌 그처럼 엄혹한 세월을 저항으로 일관하며 꿋꿋이 버티어 오셨는지 참으로 경이롭다. 해직과 감시, 온갖 신분의 제약 등 불편과 속박의 가두리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평생을 불굴의 투지로 살아가신 분. 대표저서로는 <리얼리즘문학론>, <민중문학과 민족현실>, <실패한 인생 실패한 문학>, 유고집으로는 <격동기의 문학> 등이 있다.

신경림 시인은 김병걸 선생의 회갑 축시에서 선생의 기질이나 살아오신 생애를 ‘송죽(松竹)’, ‘방파제에 부서지는 파도소리’, ‘애타게 울어대는 밤벌레 소리’에 비유한 바 있다.

1975년 내가 아주 작은 시집을 만들어 댁으로 보내드렸을 때 뜻밖에도 정성스럽고 겸손하신 필치로 직접 쓰신 엽서를 보내주셨다.

짧은 글 속에서도 당신을 한없이 낮추셨다. 새삼 김병걸 선생을 추모한다.

김병걸 평론가가 이동순 시인에게

안녕하십니까?
답장이 너무 늦어졌습니다.
보내주신 詩集 “百子圖”를
잘 받았습니다.
저의 문학공부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계속해서 이같은 훌륭한 詩集을
출간하시기를 바랍니다.

1975년 5월 13일

金 炳 傑

김병걸이 이동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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