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군대생활 돌아보며…”어머니, 어머니”

“바지를 벗고 아랫도리를 보니 피멍든 허벅지엔 보랏빛 구렁이 여러 마리가 이리 저리 서로 휘감은 그림이 보였다. 나는 내무반 막사 뒤로 나가 철조망을 붙들고 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본문 가운데, 이미지와 직접 연관은 없음)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내 나이 스물다섯에 군 입대를 했는데, 입소해보니 대개 서너 살 후배들이다. 하지만 머리 빡빡 밀고 국방색 훈련복을 입으니 나이랑 직업이랑 그 어떤 것도 깡그리 희석되고 증류수처럼 탈색되었다.

목청껏 내지르는 구호와 복창, 시도 때도 없이 불러대는 군가의 합창, 입소 첫날부터 삼엄한 일과가 시작되었다.

그저 달리고 뺑뺑이 돌리고 무얼 잘못했는지 이유도 모른 채 온갖 방식의 기합과 얼차려의 연속이다. 헉헉거리는 숨은 턱 끝에 닿고 무거운 훈련화는 땅바닥에 들어붙어 왜 그리도 무겁고 불편하며 떨어지질 않는가.

서너 살 많은 노병이라 뺑뺑이돌기 기합에선 언제나 꼴찌다. 그래서 늘 군화발로 엉덩이를 걷어차였다. 이러니 군대는 제 나이에 가야 한다. 늙은 훈련병의 일과는 힘들고 고달팠다.

한번은 중대본부 앞 연병장에서 돌연한 집합명령이 떨어졌다. 하필 그때 나는 화장실 뒤에서 화랑담배 한 대를 맛있게 피우고 나서 다른 훈병 하나랑 대화 중이었다.

그때 표독하기로 소문난 병장 하나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귀관들은 지금 여기서 무얼 하십니까?” 우리는 부동자세로 “담배를 피웠습니다!” “담배 맛이 좋았습니까?” 우리는 목청껏 “네,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모두들 집합 중인데 귀관들은 변소 뒤에서 담배를 즐기셨군요.”

우리는 일제히 묵묵부답, 싸늘한 공포의 정적이 감돌았다. “30분 뒤 중대본부로 왕림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동시에 “네,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정확한 시간에 중대본부로 입장하니 그 야차 같은 병장 놈은 혼자 의자에 앉아있다. “내 앞으로 바싹 다가와 무릎 꿇으세요.” “그리고 묻는 말에 자세히 답변하시기 바랍니다.” “학교는 어디까지 하셨습니까?” “네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했습니다.” “참 공부 많이 하셨네요. 난 국민학교 중퇴입니다.”

1970년대 군대, 시인이 거쳐온 그 시절이다.

빈정거림이 흘러넘치는 말투가 분명했다. 맹목적 복수심이 느껴졌다. “졸업하고 뭘 했습니까?” “네, 고등학교 교사를 했습니다.” “대단히 훌륭하신 선생님이군요.” “그런데 선생님이 집합을 거부하고 변소 뒤에서 흡연이나 하면 되겠습니까?” “이를 제자들이 알면 어찌 생각하겠습니까?”

이제부터 본격적 속내를 드러내는 기색이다. 그는 무릎을 꿇고 있는 나를 자기 의자 앞으로 바싹 다가오라 했다. “귀관은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됩니다.” “내가 군화 뒤축으로 귀관의 허벅지를 건드리면 그 숫자를 크게 외치기 바랍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군화 뒤축은 내 허벅지를 사정없이 내려찍었다. 나는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며 모로 쓰러졌다. 맞은 숫자를 하나씩 외치며 아마 30회도 넘게 강타 당했으리라.

정신은 점점 혼미해지고 생땀이 빠작빠작, 어떻게 역천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나는 드디어 악마에게서 놓여나 비틀비틀 절뚝거리며 막사로 돌아갔다. 때는 삼복염천이라 훈련소 낮잠 시간이었고 모두들 정신없이 코를 골고 있었다.

바지를 벗고 아랫도리를 보니 피멍든 허벅지엔 보랏빛 구렁이 여러 마리가 이리 저리 서로 휘감은 그림이 보였다. 나는 내무반 막사 뒤로 나가 철조망을 붙들고 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울음소리가 터져나오는 걸 억지로 꺽꺽 삼켰다. 이렇게도 분하고 억울하고 어디에 하소연조차 할 수 없는 신세. 그 가련함이 불쌍해서 더욱 눈물이 났다. 내 입에선 첫돌 전에 세상을 떠나 계시지도 않는 “어머니”란 말이 저절로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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