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중앙일보·동양방송 원고지에 쓴 심만수 손편지 “동수니兄···”

출판인 심만수

심만수(沈萬洙)라는 이름이 있었다. 경남 창녕 출신으로 대구로 이주해서 대구고를 거쳐 영남대 국문과를 졸업한 소설가였다. 홀어머니랑 둘이 살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였다’라는 말은 이젠 소설가가 아니란 말이다. 그는 일찍이 <문학과지성>을 통해 중편소설이 뽑혀서 등단했다. 김현을 비롯한 그곳 비평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후 중앙일보, 문예중앙 등을 거치며 출판 경력을 쌓았는데 마침내 독립출판사 ‘살림’의 설립자가 되었다. 첫 시작은 1989년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의 작은 다락방에서 시작하였다.

살림출판사의 주요필진들은 문단의 쟁쟁한 문사였다. 고은, 이문열, 황지우, 양귀자, 임철우, 강석경 등 다수의 시인, 작가들이 살림출판에서 책을 발간했다. 특히 이문열, 양귀자 등의 책은 발간할 때마다 베스트, 혹은 밀리언셀러가 되어 출판사의 위상과 두께는 점점 신장되었다.

심만수는 작고 아담한 체구에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를 때가 많았다. 가늘고 상글거리는 미소를 담은 눈으로 웃으며 불쑥 나타나 사람을 즐겁게 했다. 70년대 대구의 그 무더운 여름 저녁이면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맨발에 엄지발가락만 끼우는 멋진 슬리퍼를 끌고 상큼한 차림으로 나타났다.

나직한 목소리에 은근한 화법이지만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상글거리던 눈이 몹시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며 반드시 끝장토론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 심만수가 서울로 옮겨가서 처음엔 대구 출신 문청들이 대개 거치는 코스인 김원일의 국민서관에서 출판 일을 배우다가 중앙일보와 그 산하기관으로 오래 머물며 일을 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소설창작은 완전히 접고 아주 출판전문인으로만 이름을 내었다. 살림출판이 화려하게 성공하면서 파주출판단지로 들어가 당당히 자리를 잡았다.

출판인 심만수와 소설가 양귀자의 한때

주로 양귀자 소설의 출판을 전담했고 <모순>, <부엌신>,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등은 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제작자와 공급자의 관계로 만난 출판사 대표 심만수와 작가 양귀자는 자연스럽게 부부가 되었고 함께 출판사를 꾸렸다. 외동딸을 영국유학 보냈다고 전화로 자랑했지만 그 뒤로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다.

얼마 전 전주 시내 중심가에서 큰 빌딩을 보았는데 소설가 양귀자의 소유라고 했다. 전해 들으니 두 사람은 어떤 일로 이혼하고 지금은 남남이 되었다고 한다. 대규모로 이룩한 재산도 모두 분할했으리라. 세상사란 예측불가이다.

스크랩을 뒤적이다 보니 심만수가 서울 <문예중앙>에서 일하던 시절에 쓴 오래된 편지 하나가 눈에 띤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주 전화나 편지를 보내왔는데 출판경영인이 된 다음에는 아주 소식이 끊어지고 기억조차 희미하다.

심만수란 이름을 떠올리면 우선 맨발 엄지발가락에 끼운 샌들이 떠오른다. 아득히 흘러간 추억의 실루엣이다.

심만수가 이동순에게 쓴 원고청탁서 겸 안부편지. 세로쓰기 신문사 원고지가 이채롭다

동수니 兄,

그간 안녕하십니까?
청주로 자리를 옮겼다는 소식을
정호승 형으로부터 전해 듣고,
소식을 띄우려고 주소를 받아 적고
정말 편지 쓸 것처럼 뎀비다가
그냥저냥 날짜가 가고 했습니다.
“월간조선”에서 두 번,
“신동아”, “샘터”에서 한 번씩 보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참 반가웠습니다.
이름은 사람의 얼굴이라더니
참 옛말이 틀리지 않구나,
이름字에 안경도 보이고, 곱슬머리도 보이고,
동수니兄 특유의 준엄한 깔끔함도 보았습니다.
형수랑 아기랑 다 잘 있는지요?
청주는 객지지만
그래서 그 나름의 어려움도 아직은 있겠지만
그러나 동순 兄은 어쩌면 청주가 잘 어울립니다.
가까우니까 이제 자주 볼 수 있을 일이
무엇보다 좋습니다.
또 소식 전할 때까지, 만날 때까지
건강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1981년 4월 27일

둔한 아우

심 만 수

심만수가 이동순에게 쓴 원고청탁서 겸 안부편지. 신문사 원고지가 이채롭다

* 참 깜빡 잊을 뻔했습니다.
지난 번 호승 형께 이야기 드렸는데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예중앙” 가을호에 실을 시 4편 정도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청탁서 보내겠습니다.
한 달쯤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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