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명물 ‘미도다방’서 쌍화차와 부채과자에 진한 향수
대구의 중심가인 중구 진골목엔 “미도다방”이라는 오래된 찻집이 있다. 60년대식 다방 풍경을 그대로 실감하게 해주는 이 미도다방의 주메뉴는 계란 노른자를 띄운 쌍화차. 어떤 차를 마시든 탁자엔 그릇에 담긴 옛날식 부채과자가 수북히 담겨있다.
주인마담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정인숙 여사. 이곳 주변에서 50년 넘게 자리를 지켰다. 대구 사람으로 미도다방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근대골목 유적지를 다니는 동선에서 이 미도다방은 필수코스이다.
그 때문인지 요즘은 청년세대들도 이 미도다방에 앉아 두리번거리는 풍경도 보인다. 과연 생활문화사의 살아있는 장소라 하겠다.
지난날 이 미도다방을 드나들었던 대구의 문화계 인물들이 많았다. 화가, 시인, 작곡가, 조각가, 무용가들이 단골이었는데 다들 세상을 떠나고 그 후배나 제자들이
지금도 찾아오는 추억의 공간이다. 언제건 이 미도다방엘 가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정인숙 여사가 두 손을 모아 배에 대고 다소곳 인사를 한다.
이런 마담의 인사에 반해 미도다방을 평생토록 드나들었던 한 시인이 있었다. 그는 1960년대부터 대구에서 시를 쓰던 전상렬(全尙烈, 1923~?) 시인, 호는 목인(牧人). 서울의 불교전문강원을 졸업하고 조선일보신춘문예에 당선했다. 시집 “피리소리” “하오 한 시” 등 다수를 발간했다. 교사로 활동하며 평생 대구에 살았다.
그가 미도다방을 늘 드나들며 고전적인 분위기에 매력을 느끼다가 어느 날 한 편의 시를 지어 마담에게 헌정했다. 그 작품이 바로 ‘미도다향’이다. 이 시는 지금도 다방 입구에 걸려 있다.
종로 2가 미도다방에 가면
정인숙 여사가 햇살을 쓸어 모은다
어떤 햇살은 가지 끝에 걸려 있고
어떤 햇살은 벼랑 끝에 몰려 있고
어떤 햇살은 서릿발에 앉아 있다
정 여사의 치맛자락은
엷은 햇살도 알뜰히 쓸어 모은다
햇살은 햇살끼리 모여 앉아
도란도란 무슨 얘기를 나눈다
꽃 시절 나비 이야기도 하고
장마철에 꺾인 상처 이야기도 하고
익어가는 가을 열매 이야기도 하고
가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아도
추억은 가슴에 훈장을 달아준다
종로 2가 진골목 미도다방에 가면
가슴에 훈장을 단 노인들이
저마다 보따리를 풀어놓고
차 한 잔 값의 추억을 판다
가끔 정 여사도 끼어들지만
그들은 그들끼리 주고받으면서
한 시대의 시간벌이를 하고 있다
-전상렬의 시 ‘미도다향’ 전문
나도 지난날 청년 시절에 전상렬, 조기섭 시인 등 대구의 원로문인들과 여러 차례 술자리에 함께 어울린 적이 있다. 이제 당시의 원로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고 그들이 남긴 자취는 신화나 전설이 되어 어렴풋이 실낱 같은 흔적을 전하고 있을 뿐이다.
70년대 중반, 작은 시집을 내어 전 시인께 보냈는데 당시 그는 포항의 흥해중학 교장직에 있었다. 출판기념 자리에 못 온 것을 애석히 여기며 흥해중학교 교장 전용 메모지에 쓴 짧은 편지 하나를 보내주셨다.
李東洵 선생 귀하
시집 “백자도”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5일 출판기념회가 있는 줄
미리 알았습니다마는
때마침 몸이 불편해서
참석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귀한 詩集 시골까지 보내주신
고마움 잊지 않겠습니다.
두고 두고 감상하겠습니다.
두 분이 더욱 文運 있으시길 빌면서
여불비례(餘不備禮) 합니다.
1975년 4월 24일
흥해중학교
교장 전 상 열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