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 송몽규의 고종사촌 ‘윤동주 평전’ 낸 송우혜···간호사 출신 작가
꼭 국문과나 문창과를 나와야 시인이나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계통에서 일한 경력의 소유자가 두께있는 작가의식을 지닌 경우가 많다.
약사, 경찰, 고물상 운영자, 미용사, 시장의 닭장수, 일용직 노동자 등으로 일하던 분이 시인, 작가로 등단해서 빛나는 성과를 이룬 경우가 많다. 그런 분들의 문학이 오히려 신뢰도가 높다.
오늘 소개드리고자 하는 작가 송우혜(宋友惠, 1947~ ) 선생은 작가가 되기 전 간호사 경력을 가진 분이다. 서울대 간호학과를 다녔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작가의 길로 변신하였다.
1980년 소설 ‘옛 야곱의 싸움’이 동아일보에 당선되어 화려하게 등단했고 이후 소설, 수필, 르뽀르따쥬 등 다양한 장르에서 왕성한 필력을 과시하였다. 1982년에는 한국문학 신인상도 받았다.
“투명한 숲”, “하얀 새”, “벽도 밀면 문이 된다” 등 12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하지만 ‘작가 송우혜’란 이름을 특별히 빛낸 것은 단연 1998년에 발간한 “윤동주평전”이다. 이 책은 2014년에 더욱 보완된 개정판이 나왔다.
송우혜의 이 책에 독자들이 갈채를 보내는 까닭은 작가가 지닌 송몽규와의 관계성 때문이다. 송몽규는 윤동주와 함께 일본유학을 했고, 함께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까 감옥에 갇혀서 고통을 받던 중 차례로 의문의 죽음을 맞았던 분이다.
나는 1990년대 중반, 중국 연길현 용정을 가서 윤동주의 생가터와 명동촌 일대를 둘러보고 용정의 은진중학교와 윤동주 무덤도 참배했다. 용정 시내가 환히 보이는 황량한 공동묘지에 오르니 윤동주 시에 등장하는 예언처럼 시인의 무덤에는 희한하게도 풀이 돋아 있지 않았다.
그 처연한 맨흙 앞에는 허술한 묘비가 있었고 거기 엎드려 두 번 절하는데 눈물이 났다. 윤동주 시인의 무덤에서 왼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고종사촌 송몽규의 무덤이 있었는데 그 앞에도 한 잔 술을 따르고 두 차례의 경건한 절을 올리었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식민지의 두 청년이 자신의 종생을 맞으려 왔다는 기막힌 운명적 사실을 과연 짐작이라도 했을까?
그들은 옥중에서 죄수로 이따금 파리한 얼굴을 서로 마주쳤다고 한다. 작가 송우혜는 바로 그 송몽규의 조카딸이다. 송몽규는 작가의 부친 송우규의 친형님 되신다.
이런 특별한 가족사적 배경을 지녔으니 송우혜가 쓴 “윤동주평전”이 얼마나 믿음이 가는 저술일 것인가. 작가는 이 평전의 완성을 위해 일본을 자주 다녀오고 북간도 용정도 샅샅이 훑었다.
송우혜는 독립투사 홍범도 장군에 대한 특별한 관점의 글도 다수 발표했다. 그때마다 주목받는 작가로 조명을 받았다. 내가 2003년 민족서사시 “홍범도”를 전5부작 10권으로 발간하고 출간기념모임을 열었을 때 고은, 염무웅 두 분 선생과 작가 송우혜 등 세 분의 선학들을 초빙해서 특강을 들었다.
그날의 가슴 떨리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이제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공동묘지에 계시던 홍범도 장군은 2021년 가을에 돌아와 국립대전현충원 고국 땅 흙에 묻히셨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작가 송우혜 선생의 특별한 관심과 노력도 큰 힘으로 작용했으리라. 여러 해 뵙지 못했는데 송 선생의 안부와 근황이 궁금하다.
李東洵 선생님
그간 안녕하셨어요?
우선 선생님께서 ‘시와 시학상’을 타신 것을
깊이 축하드립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수상하신 12월 6일에
국내에 있질 않아서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에 상을 타실 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대작 “홍범도”를 잘 읽고 있습니다.
처음 읽어가다가 그간 선생님께서 겪으신
고통과 애씀이 눈에 선하여 눈물겨웠고
읽는 것만으로도 몹시 아팠습니다.
정말 대단한 작업을 해내신 것을
다시 축하드리고 깊이 감사드립니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뜻하시는 일마다 모두 형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03년 歲暮
송 우 혜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