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노래’ 남긴 ‘불멸의 고려인’ 빅토르 최

추모벽의 빅토르 최 <사진 이동순>

모스크바를 떠나는 날, 한국외국어대 김현택 교수의 안내를 받아서 김사인 번역원장과 길을 나섭니다. 김 교수는 가히 최고의 러시아통입니다.

모스크바는 간밤에 내린 눈이 쌓여 다소 미끄럽고 조심스럽습니다. 겨우내 눈이 많이 내립니다. 기온은 몹시 손이 아릴 정도로 쌀쌀합니다.

일단 명물 지하철을 타고 아르바트 거리를 향해 찾아갑니다. 모스크바에는 오래된 건물과 유명 문화예술인들이 태어났거나 거주했던 건물이 많은데 그곳에는 반드시 동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누가 언제 여기서 무얼하며 살았다는 사실을 간추린 내용입니다. 더 명망 높은 인물은 동상까지 세웠습니다.

빅토르 최를 기리는 기다란 추모벽

첫 목적지는 빅토르 최를 기념하는 아르바트 거리의 명물 추모벽입니다. 길이 약 50m의 벽에는 온통 빅토르 최를 추억하고 기념하는 글과 그림, 음반과 사진들로 가득합니다.

고려인 아버지 최씨와 우크라이나 출신 어머니는 1962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빅토르 최를 낳았습니다. 빅토르가 다섯 살 때 부모는 레닌그라드로 이사했습니다.

학창시절 빅토르는 그림, 조각, 음악에 빠져들기 시작했는데 그 중 음악이 가장 그의 영혼을 사로잡았습니다.

락그룹 ‘키노’ 를 조직한 빅토르 최

빅토르가 20세 되던 해에 키노(Kino)라는 락 그룹을 조직했지만 별반 대중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1987년 고르바초프 정권이 들어선 뒤 새롭게 시작된 페레스토로이카 정책의 개방성은 빅토르 최의 음악에 폭발적 동력을 주었습니다. 진정한 자유의 갈구,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저항, 전쟁 반대, 희망적 메시지의 전파 등 이 시기부터 빅토르 최의 음악은 러시아 청년들 마음 속에 깊은 뿌리를 내렸습니다.

빅토르 최 공연모습들 

레닌그라드 락 축제에서 입상한 다음 첫 앨범 ’45’를 발표한 뒤 잇달아 ‘밤’ ‘이건 사랑이 아니지요’ ‘혈액형’ 등을 발표하며 러시아 청년들의 우상이 되었습니다.

이후 활동무대를 해외로 확장하여 미국, 덴마크, 프랑스, 일본 공연에서 큰 반향을 얻었습니다. 1990년 모스크바 공연을 마치고 라트비아에서 새로운 작품 창작에 몰두하던 중 의문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지요.

추모벽에 붙어있는 빅토르 최 공연사진. <사진 이동순>

당시 빅토르의 나이 불과 28세였습니다. 그의 급작스런 죽음을 아쉬워하며 독특한 작품과 활동을 너무도 그리워하는 러시아 청년들이 페체르부르그, 모스크바 거리에 추모벽을 만들었고 이곳은 전국에서 빅토르 최를 추모하는 성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빅토르 최 우표 <사진 이동순>

그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 빅토르 최의 추모벽을 찾았습니다. 비록 러시아 국적으로 태어났지만 빅토르 최의 핏속에는 우리의 옛 유랑연예인 남사당의 피가 흐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의 작품 속에 들어있는 비판과 저항의식, 일그러진 현실에 대한 냉소, 끝까지 잃지 않는 변화와 희망적 메시지의 전달 등 모든 경로가 남사당 정신과 닮았습니다.

빅토르 최를 그리워하는 팬들이 꽃이나 촛불을 켜놓는 공간이다. <사진 이동순>

아르바트 거리의 추모벽에는 그가 남긴 음반과 사진, 신문기사가 붙어있고, “빅토르는 세상에 없지만 우리 가슴 속에서 영원하다”는 젊은 팬들의 글귀로 가득합니다.

눈발이 푸슬푸슬 뿌리는 아르바트 거리, 빅토르 최 추모벽 앞에서 잠시 눈을 감고 그의 짧았던 삶과 폭발적인 예술정신을 추모했습니다.

빅토르 최에 관한 신문기사와 사진 등이 벽에 붙어 있다. 

빅토르 최의 할아버지는 일찍이 두만강을 넘어간 한국인으로 연해주에서 살다가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던 고려인이었지요. 엄청난 디아스포라입니다.

빅토르 최의 혈액 속에 자리잡았을 이런 뿌리의 경로를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빅토르 최를 생각하며 쓴 한 편의 시를 올립니다.

 <사진 이동순>

빅토르 최

그의 몸과 피에는
뜨거운 남사당 기질 흘렀지
일찍이 함경도에서 건너간 할아버지

원동에서 강제이주 열차로
카자흐 벌판에 내팽개쳐진 아버지
그 가슴 속 슬픔과 서러움 아픔과 분노를
한시라도 어이 잊을 수 있으리

어머니는 집시 혈통의 우크라이나 여자
어린 빅토르 온몸엔
번개 천둥 번쩍이고 소낙비 쏟아졌네

늘 미친 돌개바람 불었고
걸핏하면 드센 눈보라 휘몰아쳤네

청년시절 조직한 락그룹 ‘키노’
빅토르의 연주와 노래는
꽉 막힌 철벽에 대한 절규였네 함성이었네
개혁 개방 요구하는 질풍이었네
전쟁에는 반대 부조리엔 저항이었네

갇혀 살던 청년들
그의 음악적 메시지로 삶의 희망 얻었네

‘밤’ ‘혈액형’ ‘마지막 영웅’
그의 음악이 전설로 바뀔 무렵
돌연히 달려온 버스가 그를 부수었네

죽음터에 꽃잎처럼 흩어진 유품
거기엔 녹음 테이프 하나 있었으니
그걸로 ‘검은 앨범’ 만들었네

몸 비록 세상에 없으나
음악과 영혼은 길이 살아 있지

그의 무덤에 오늘도
한 송이 꽃 바치는 연인들은 알지

하늘이 한 청년 잠시 내려보냈다가
왜 서둘러 거두어 갔던가를

빅토르 최

* 빅토르 최(Viktor Tsoi, 1962~1990) : 구소련 시절 락(Rock) 음악의 선구자.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의 실행으로 구소련 사회에 개혁 개방의 분위기가 급격히 전개되자 서양의 락 음악을 소개하여 유행시켰던 전설적인 러시아의 고려인 가수.

빅토르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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