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EXPO] 대공황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다②
1933년 시카고박람회
값싼 박람회장
1929년 10월, 월 스트리트를 진앙으로 한 금융시장 붕괴에 이어 대공황(Great Depression)이 닥쳤다. 시카고박람회에는 심각한 위협이었다. 기업 부도와 대량 실업, 부동산 가치 폭락이 잇따르면서 정부의 재정 지원은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암울한 사회 분위기에다 재원 조달 방안마저 불투명해지자 박람회 개최를 포기해야 할 상황에 몰렸다.
그러나 대공황은 양날의 칼이었다. 경기 침체가 오히려 박람회 추진의 동력이 되는 반전이 일어났다. 박람회장 건설이 대량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프로젝트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추진력이 되살아난 것이다. 값싸고 풍부한 인력, 저렴해진 건설자재 가격 등도 박람회 추진에 유리한 환경이었다. 기업인과 경제 단체가 중심이 된 박람회 주도 세력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박람회를 성공시키자는 의지를 다졌다.
조직위는 결국 연방 정부와 주 정부 재정 지원을 포기하고 자체 재원 조달에 나섰다. 회원권 판매와 채권 발행이 유력한 방안으로 제시되었다. 회원권은 창립 회원 1인당 1000달러, 보통 회원에게 50달러씩 가격이 책정되어 사실상 개인 후원금 형태로 판매됐다. 회비를 낸 후원자들은 아무런 반대급부가 없었음에도 어려운 시기를 무릅쓰고 국제박람회 개최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으로 적지 않은 돈을 냈다. 결국 대공황의 와중에도 박람회 조직위는 회원권 판매로 63만 4000달러, 채권 공매로 1000만 달러, 박람회장 사업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300만 달러를 모았다. 연방 정부는 미국관 건설과 전시에 100만 달러 정도만 썼을 뿐이다.
시카고박람회는 결국 정부의 재정 지원을 전혀 받지 않은 유례없는 기록을 남겼다. 주도 세력의 사업적 수완과 공화당 정권인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 1874~1964) 정부의 보수주의 경제관이 두루 반영된 결과였다.
박람회 개막 전 경제 전문지 <포춘(Fortune)>은 “경기 침체로 인해 여름철 산과 바다로 휴가를 떠날 중산층들이 상대적으로 값싼 박람회장에 많이 몰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시카고박람회에는 1933년과 1934년 두 시즌 동안 3800만 명 이상의 많은 관람객이 몰렸다. 시카고박람회는 암울한 대공황에 지친 미국 대중의 숨통을 터주는 역할을 했다.
바우하우스와 아르데코 기법의 현대적 건축물
박람회장은 40년 전 박람회 때보다 시카고 다운타운에 가까운 미시건 호반으로 낙점되었다. 호숫가를 따라 남북으로 띠처럼 길게 이어진 5킬로미터 길이의 부지였다. 동서 폭이 좁아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부챗살처럼 펼쳐지는 전형적인 박람회장 레이아웃은 불가능했다. 역대 박람회장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이었음에도 관람객들이 길을 찾기가 불편했다. 대형 건물들이 밀집된 형태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몰고 온 방문자들의 편의를 위해 주차장이 설치된 것은 박람회 역사상 처음이었다.
건축물은 이전 박람회 때와 완전히 모습을 달리했다. 기존의 웅장하고 화려한 신고전주의 건축이 바우하우스(Bauhaus)와 아르데코(Art Deco) 건축 기법에 따른 현대적 양식으로 대체되었다. 교통전시관(Travel and Transportation Building) 건물이 대표적이었다. 38미터 높이의 12개 철근 탑에 연결된 현수(懸垂) 케이블이 돔 지붕을 지탱한 미래주의적 외양이었다.
이 밖에도 과학의 전당과 전력전시관, 미국관 등 주요 전시관이 모두 실용적이고 현대적인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건물의 색상도 밝고 대담한 23가지 색채를 사용하여 ‘무지개 시티(Rainbow City)’로 불렸다. 아르데코 원리에 입각한 전시관 설계 양식은 5년 후 뉴욕박람회에서 보다 완성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밖에도 ‘미래의 집(Homes of Tomorrow)’이란 타이틀 아래 철근·유리·콘크리트 등 새로운 자재를 사용한 모델하우스 12채가 전시되어 현대 주택 양식의 이정표를 제시했다.
박람회장에는 관람객의 이동 편의와 전망을 위한 케이블카가 건설되었다. 600미터 간격으로 높이 190미터의 거대한 철근탑 2개를 세우고 고도 70미터에 탑승용 곤돌라를 매단 형태였다. 로켓 모양을 본뜬 곤돌라는 위아래 2개 층으로 운행했고, 차량 당 32명이 탑승할 수 있었다. 케이블카에 탄 관람객들은 운행 시간 3분 동안 박람회장과 미시건호, 시카고 시내 전경을 즐겼다. ‘스카이 라이드(Sky Ride)’라는 이름의 이 케이블카는 박람회장의 명물이자 흉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애용했지만 구조물이 지나치게 두드러져 미관을 해친다는 지적을 받았다. 무엇보다 건축 전문가들의 비난이 거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