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EXPO] ‘지상 최대의 쇼’ 1939년 뉴욕③
1939년 뉴욕박람회
소비 욕망의 극대화…달리의 ‘비너스의 꿈’
뉴욕박람회를 대표한 개발품은 텔레비전 수상기와 로봇, 에어컨디셔너, 전자계산기, 나일론 등이다. 이들 전시물은 그저 신기하기만 한 호기심의 대상일 뿐 아니라 머잖아 일상 생활에 보편화될, 소비자의 손길을 유혹하는 기술 문명의 이기였다.
특히 RCA 전시관의 텔레비전은 누구나 갖고 싶어 한 꿈의 기기이자 뉴욕 박람회의 최고 인기 품목이었다. 텔레비전은 브라운관 등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투명한 플라스틱 틀 안에 담겨 전시되었다. RCA의 텔레비전이 본격적으로 팔린 건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부터였다. IBM 전시관은 펀치 카드를 사용하는 전자계산기와 전동 타이프라이터를 선보였다.
웨스팅하우스가 제작한 ‘일렉트로(Elektro)’란 이름의 로봇도 화젯거리였다. 이 로봇은 관람객과 악수하고 대화까지 나눠 큰 인기를 끌었다. 로봇은 1933년 시카고박람회에 원시적 형태로 처음 등장한 이후로 성큼 진화했다. 키 2.1미터인 이 로봇은 걷고 움직이는 것은 물론 담배를 피우고 색깔을 구별하고 손가락으로 숫자를 헤아리고 명령을 수행하는 등 36가지 작업을 수행할 줄 알았다. 일렉트로는 스파코(Sparko)라는 이름의 로봇 애완견도 데리고 다녔다.
참가국 전시관(Hall of Nations) 또한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영국은 한꺼번에 1만 3000명이 관람할 수 있는 대규모 전시관을 세웠다. 영국 의회 정치의 기틀이 된 대헌장(Magna Carta) 원본과 왕실 기물, 9000종에 이르는 영국 전함 모형 등이 주요 전시물이었다. 미국 각 주와 연방 정부가 세운 26개 전시관에는 독립선언문이 채택되었던 건물의 모형 등 다양한 미국 역사물이 전시되었다. 소련 전시관은 55미터 높이의 대리석 기둥 위에 붉은 별을 오른손에 든 24미터짜리 노동자상을 세워 사회주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했다. 1937년 파리박람회 소련관 설계자인 보리스 이오판(Boris Iofan, 1891~1976)의 작품이었다. 벨기에관은 식민지 콩고에서 채굴한 휘황찬란한 다이아몬드를 선보였다.
오락 구역에는 역대 박람회에서 개발된 롤러코스터 등 온갖 놀이 시설이 들어섰다. 그 중 두드러진 건물은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가 바닷속 세계를 주제로 만든 ‘비너스의 꿈(Dream of Venus)’ 전시관이었다. 물고기 모양의 티켓 부스에서 입장권을 끊고 들어가면 거대한 물탱크 안에서 거들과 그물 스타킹을 입은 에로틱한 인어들이 헤엄치고 가슴을 드러낸 비너스가 빨간 새틴 침대에 누워있는 환상의 세계를 볼 수 있었다.
개발업자에게 ‘대박’ 안겨준 낙하산 점프
뉴욕 박람회 오락 구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놀이기구는 80m 상공에서 낙하산을 타고 떨어지는 스릴 만점의 ‘패러슈트 점프(Parachute Jump)’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낙하대까지 올라가는 데 1분, 2인 1조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데 20초가량 걸렸다. 좌우로 흔들리거나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유도철선을 장착했다.
낙하산은 늘 펼쳐진 상태의 모습이었고 2명이 타는 낙하산 ‘좌석’에는 완충기가 장착되어 착륙할 때 충격을 흡수했다. 12개 고공 낙하대 중 11개를 운영하고 1개는 균형 유지를 위해 비워두었다.
이 놀이기구는 낙하산 개발 초기 미군이 실제로 사용했던 훈련 장비를 본떠 만든 것이었다. 이용료는 어른 40센트, 어린이 25센트였는데, 낙하산을 타보려는 관람객들의 긴 줄이 끊이지 않았다. 운영업자는 곧바로 돈방석에 앉는 듯 했지만 곧 위기가 닥쳤다.
운행 중 낙하산 줄이 꼬이는 바람에 탑승했던 중년 부부가 5시간 동안 공중에 매달려 있었던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 부부는 운영업체의 보상과 간곡한 부탁을 받고 다음날 다시 낙하산을 탔다. 놀이기구의 안전성을 홍보하려는 ‘위기 관리 대책’이었다.
낙하산 점프 개발·운영업자는 라이프 세이버(Life Savers)라는 업체였다. 이들은 아이디어도 기발했지만 사업 수완 또한 뛰어났다. 하루는 놀이기구 꼭대기에서 ‘낙하산 결혼식’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신혼부부는 80m 상공에서 혼인 서약을 한 뒤 20초간의 낙하산 강하로 신혼여행을 대신했다.
낙하산 탑은 박람회 이후 코니아일랜드(Coney Island) 놀이공원에 팔렸다. 라이프 세이버는 이 놀이기구를 만드느라 1만5000 달러를 들였지만 코니아일랜드 측에 15만 달러를 받고 팔아넘겨 장비 값으로만 10배의 이익을 챙겼다.
코니아일랜드로 이전한 낙하산 점프는 ‘브루클린(Brooklyn)의 에펠탑’이라 불리며 놀이공원의 명물이 됐다. 코니아일랜드 운영사는 낙하산(parachute)과 탑승자 2명(pair)이란 말을 조합하여 페어로슈트(Pair-O-Chutes)란 이름을 붙였다. 낙하산 점프는 수많은 영화와 대중 소설의 무대로 등장하면서 1968년까지 운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