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EXPO] ‘욕심쟁이 군주’의 착취와 악행을 기념하라?

1935년, 브뤼셀 박람회

공식명칭: 브뤼셀 국제 만국 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 et Internationale de Bruxelles)
주제: 콩고자유국(Congo Free State) 창설 50주년 기념
장소: 브뤼셀 북부 하이젤(Heysel) 공원
기간: 1935년 4월27일~11월6일
랜드마크: 박람회전당(Grand Palais)
박람회장 규모: 152헥타르(45만 9800평)
참가국: 30개국
관람객: 2000만 명

'욕심쟁이 군주'로 불린 벨기에 왕 레오폴드 2세.

벨기에는 19세기 말부터 여러 차례 크고 작은 박람회를 개최해 왔다. 후대에 길이 남을만한 ‘히트작’은 없었지만 박람회의 의미를 높이 산 단골 개최국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또 한 번 박람회 개최를 추진했다. 벨기에는 1935년 브뤼셀박람회를 신청했고, 국제박람회기구(BIE) 창립 이래 두 번째 승인을 받아냈다. 벨기에는 브뤼셀 북부 하이젤(Heysel) 공원에 의욕적으로 새 박람회장을 건설했다. BIE가 회원국 초청에 적극 나선 덕분에 참가국은 비공식 5개국을 합쳐 모두 30개국에 달했다. 관람객 수도 2000만 명을 헤아리는 성황을 이뤘다.

벨기에 건축가 빅토르 부르주아가 설계한 아르데코 양식의 박람회 전당.

욕심쟁이 벨기에 군주의 만행을 기리다

문제는 박람회 주제였다. 브뤼셀박람회는 ‘콩고자유국(Congo Free State) 창설 50주년 기념’이라는 다분히 시대착오적 주제를 내세웠다. 과거 제국주의 식민지 개척사 중 ‘가장 혹독하고 비인간적인’ 수탈로 알려진 콩고 식민지 정책을 찬양하자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콩고 자유국은 ‘욕심쟁이 군주’로 불렸던 벨기에 왕 레오폴드 2세가 1885년에 창설한 개인 소유 식민지였다. 아프리카 내륙에 벨기에 면적의 76배에 이르는 거대한 사유 영지를 만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벨기에 지배자들의 착취와 악행이었다. 레오폴드 2세는 해외 식민지 개척만이 부국강병의 길이라 믿고 콩고 토착민들을 무자비하게 다루었다. 식민지 주민들을 고무나무 수액 채취 등 강제노동에 동원하는가 하면, 원주민들이 생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거나 반항하면 신체를 절단하거나 사살하는 등 끔찍한 악행을 일삼았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제적인 비난이 일었고, 결국 1908년 자국 의회에서 통치 중단을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콩고 자유국은 국가가 관장하는 ‘벨기에령 콩고’가 되었다가 1960년 6월 30일에 독립했다.

이처럼 비인간적인 식민지 개척사가 평화와 진보를 기치로 내세운 박람회의 주제로 등장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전시 내용은 벨기에의 수준 높은 예술품이 주류를 이뤘는데 그 중에는 콩고에서 가져온 상아로 만든 공예품도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샬로트 페리앙, 피에르 잔느레, 르 코르뷔지에가 1935년 브뤼셀박람회에서 선보인 '젊은 남자의 집'.

박람회장의 핵심 전시관은 벨기에 건축가 빅토르 부르주아(Victor Bourgeois, 1897~1962)가 설계한 아르데코 양식의 박람회전당(Grand Palais)이었다. 건물 내부는 포물선 아치 형태로 청동 동상이 네 구석을 장식했다.

외국 전시관 중에서는 거장 르 코르뷔제(Le Corbusier, 1887~1965)가 설계한 프랑스관이 명성을 얻었다. 박람회전당 등 3개 건축물은 1958년 박람회 때 재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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