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EXPO] ‘지상 최대의 쇼’ 1939년 뉴욕②
1939년 뉴욕박람회
서기 6939년에 개봉 예약된 ‘타임캡슐’
뉴욕박람회는 ‘미래 세계 건설’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먼 훗날 세대에 보내는 선물을 마련했다. 당대의 물건을 담아 묻은 타입캡슐이었다. 개봉일은 자그마치 5000년 뒤인 6939년으로 설정됐다.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 전시관 앞 기념탑 아래 15m 지하에 묻힌 타임캡슐은 웨스팅하우스가 부식되지 않는 합금으로 제작한 2.3m짜리 통이었다. 음향 장치를 갖춘 기념탑은 ‘노래하는 조명 탑(Singing Tower of Light)’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타입캡슐 안에는 1939년 시대상을 대표하는 물건 35가지가 담겼다. 자명종 시계, 미키마우스 손목 시계, 깡통 따개, 큐피(Kewpie) 인형, 여성용 모자, 야구공, 질레트(Gellette) 안전 면도기, 카멜(Camel) 담배, 1 달러짜리 동전, 나이프, 포크, 스푼 등 생활 용품과 신문, <라이프(Life)> 등 잡지, 아인슈타인의 책 등 간행물 등이 포함됐다.
옥수수·콩·보리·쌀·면화 등 12개 농작물 씨앗은 유리관에 밀봉되어 묻혔다. 개봉년 숫자인 6939명의 시민들이 쓴 메시지도 담겼다. 또 과학·기술·산업·예술·교육 등 각 분야의 현황을 담은 글과 사진을 마이크로필름에 담아 이를 볼 수 있는 마이크로스코프 기기와 함께 넣었다. 마이크로필름에 담긴 정보의 양은 한 번 읽는 데 1년 이상 걸리는 방대한 양이었다.
관람객들은 타임캡슐과 그 수장품을 전시된 복사본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박람회 공사는 타임캡슐이 묻힌 자리에 표지석을 세우고 타입캡슐에 관한 기록물을 3000부 찍어 공공도서관과 박물관에 배포했다.
세계 최초의 텔레비전 중계 개막식…아인슈타인의 연설
“박람회에 온 사람들은 미국의 눈이 미래를 향하고 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역마차는 이제 우주의 별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 별은 국제 사회의 호혜와 인류의 진보, 더 큰 행복, 그리고 무엇보다 평화의 별입니다.”
1939년 4월 30일 일요일 저녁,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욕박람회 개막연설이 박람회장은 물론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가정에 울려 퍼졌다. 박람회장에 모인 20여만 명의 시민은 세계 최초로 상업 텔레비전 방송이 공중파를 탄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았다. NBC방송은 개막식 중계를 첫 정규 편성 방송으로 내보냈다. RCA가 개발한 기술과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송신탑을 이용했다. 바야흐로 텔레비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뉴욕 시 일대로 송출된 이날 방송은 당시 보급된 200대의 텔레비전 수상기를 통해 1000여 명이 지켜보았다. 국제박람회는 이렇듯 첫 상업 텔레비전 방송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됐다.
평화의 미래상을 강조한 루스벨트의 개막 연설과는 대조적으로 그 무렵 유럽은 독일군의 프라하 진주 등으로 이미 개전 상태에 돌입해 있었다. 뉴욕박람회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과 파멸 전야에 열린 축제와도 같았다.
개막 연설이 끝나자 과학자의 대표격으로 앨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이 우주 광선에 관한 연설을 했다. 이어 축하 행사를 여는 화려한 조명 쇼가 펼쳐졌다. 밴드가 울렸고 축하 행렬이 이어졌다. 행렬의 선두는 백마가 끄는 마차에 탄 조지 워싱턴 대통령 모형이었다. 각 나라의 민속 의상과 산업 분야별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 군인과 박람회장 건설 노동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퍼레이드에 이어 15미터 높이의 조지 워싱턴 동상이 제막되었고, 조지 워싱턴으로 꾸민 대역 배우가 초대 대통령의 취임 연설을 재연했다.
규모가 가장 큰 주제 섹터는 중앙의 상징탑 남쪽에 자리 잡은 교통구역(Transportation Zone)이었다. 특히 ‘퓨처라마(Futurama)’라 불린 GM 전시관은 관람객들에게 인기 있는 코스였다. 퓨처라마에서는 페리스피어에서 상영하던 것과 유사한 3250제곱미터짜리 대형 영상 쇼가 펼쳐졌다. 회전의자에 앉은 채로 위에서 내려다보도록 되어 있었다.
영상쇼는 20여 년 후인 1960년대의 미국 풍경을 그린 디오라마였다. 주택 50만 채, 나무 100만 그루, 각종 자동차 5만 대, 고속도로와 산, 강, 농장, 공장, 도시 등이 정교한 미니어처로 연출되었다. 어찌나 세밀하게 묘사해 놓았는지 7차로 고속도로에 50·75·100마일 제한속도까지 표시해 놓았을 정도였다. 자동차 제조사의 작품답게 고속도로 등 도로망이 강조되었고, 원격 조종으로 움직이는 자동차 모형도 설치되었다.
하루 평균 2만 7500명이 관람한 이 전시물은 미래 세계에서 고속도로가 산업과 생활의 중추 역할을 할 것임을 두 눈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우아한 전경과 고층건물, 다면적 교통 시스템, 공공시설과 공원, 주거 지역 등이 쾌적하게 배치된 도시 계획 디자인도 높이 평가되었다. 영상 쇼의 절정은 시청각 효과를 통해 관람객들이 마치 도시 안에 있는 듯 느낄 수 있게 한 대목이었다. 쇼를 보고 나온 관람객들은 GM의 최신형 모델 자동차를 둘러보았고, ‘나는 미래를 보았다’는 문구가 새겨진 잎사귀 모양 배지를 기념품으로 받았다.
포드 전시관은 관람객들이 최신 자동차 모델을 직접 운전해볼 수 있는, ‘미래의 길’이란 나선형 시험도로를 설치했다. 이와 함께 향후 모터쇼의 전형이 된 회전식 원형 무대 위에 새 모델 자동차를 전시했고, 철판 제작부터 완성차까지 일괄적으로 진행되는 생산 라인도 보여주었다. 모두 창업자 헨리 포드의 아이디어로 제작된 것이었다. 박람회 기간 중인 6월16일은 포드 사 창설 36주년 기념일이었다. 포드는 이날 생산 기록 270만 대째 차를 전시관에서 소개했다. 뉴욕박람회와 동시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고 있던 골든게이트 국제박람회장에서 생산된 뒤 대륙을 횡단해 달려온 신형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