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에 관한 두가지 실험···’베르테르 효과’ vs ‘파파게노 효과’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 박사] 한국 야구 해설의 레전드, 고 하일성씨의 장례식이 열린 9월 10일은 세계 자살예방의 날(World Suicide Prevention Day)이었다. ‘세계자살예방의 날’은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가 전 세계 여러 나라와 함께 자살문제 예방과 대책을 마련하고 이에 대한 공동의 노력과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2003년 9월 10일 제정했다.
필자가 거주하는 서울 마포구에 있는 마포대교는 ‘자살 다리’로 악명 높다. 서울시는 2012년 9월부터 삼성생명과 마포대교에서 투신하는 사람을 줄이기 위해 ‘생명의 다리’ 캠페인을 벌여왔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다리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겠다는 취지로 교량 난간에 “당신은 혼자가 아니예요” “밥은 먹었니” 등 마음을 위로하는 글귀를 적고, 사람이 난간에 다가오면 조명이 들어오는 센서도 달았다.
하지만 자살예방 캠페인 이후 투신 횟수가 오히려 더 늘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2011-2012년 마포대교에서 투신을 시도한 사람은 각각 11명, 15명이던 것이 캠페인 이후인 93명(2013년), 184명(2014년), 202명(2015년)으로 급증했다.
이에 서울시는 이 다리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하여 다리(총 2.16km) 양쪽 인도의 난간 높이를 현재 1.5m에서 2.5m으로 높이기로 했다. 그리고 난간에는 20cm 간격으로 철제 와이어를 가로로 설치해 난간 사이를 비집고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고, 난간 맨 윗부분엔 주판알처럼 롤러를 촘촘히 설치해 사람이 매달리기 힘들게 만든다.
자살(自殺, suicide)은 스스로 삶을 중단시키는 행위다. 자살은 현실의 고통을 중단시키는 한편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다. 죽음은 택하는 동기와 미치는 영향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이해되기도 한다. 스스로 삶을 중단하는 행위라는 넓은 의미에서는 자살과 자결은 같지만, 죽음의 동기와 영향을 고려한 좁은 의미에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유서는 사망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산 인물이냐에 따라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의미에서 성찰의 자료가 되기도 한다.
유명인의 자살을 언론에서 상세하게 다루면 자살을 되레 부추기는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가 나타날 수 있다. 미국의 자살연구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유명인의 자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일반인의 자살이 급증하는 패턴을 발견했다. 즉 유명인 또는 평소 존경하거나 선망하던 인물이 자살할 경우, 그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모방자살(copycat suicide)이라고도 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은 독일 문학가 괴테(1749-1832)가 1774년 출간하자 젊은 세대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 베르테르는 약혼자가 있는 로테라는 여인을 사랑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자 깊은 실의에 빠진다. 결국 베르테르는 로테와의 추억이 깃든 옷을 입고 권총 자살을 한다. 당시 유럽의 청년들은 소설에 묘사된 베르테르의 고뇌에 공감하여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한편 자살에 대한 언론보도를 자제함으로써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효과를 ‘파파게노 효과’(Papageno effect)라고 한다. 이는 모차르트(1756-1791)의 오페라 마술피리(Die Zauber Flote)의 캐릭터 파파게노가 요정의 도움을 받아 자살 충동을 극복한 일화에서 유래되었다. 모차르트 말년의 걸작인 ‘마술피리’는 18세기 유행한 독일 민속음악극으로 통속적 내용에 노래와 대사가 혼합된 형태의 오페라다.
자살의 원인이나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제시되고 있으며, 자살자들이 직접 남긴 유서를 통해서도 추측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정신질환, 고통, 스트레스, 비탄, 이념, 죄책감, 심각한 상해, 금전 손실, 자기희생, 명예회복, 삶에 대한 허무감, 부조리, 사회구조의 불합리 등 개인적인 것부터 사회적인 것까지 다양하다.
현대의학은 자살을 정신건강의 문제로 보고 있다. 특히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자살 위험이 높은 것으로 본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자살자 10명 중 6명이 우울증에 시달렸다. 국내 우울증 환자는 2010년 51만명, 2012년 58만명, 그리고 2015년에는 60만명을 돌파했다. 우울증(우울장애, depressive disorder)은 다양한 인지 및 정신적·신체적 증상을 일으켜 일상 기능의 저하를 가져온다. 우울증은 초기에 약물치료와 정신치료적 접근을 함께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다.
우울증 환자는 만성질환과 빈곤에 시달리는 노인이 많은 농어촌에 많다. 즉 대화 상대가 적고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자신이 치료 받아야 한다는 사실도 잘 모르고 있다. 또한 어려운 형편으로 선뜻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치료를 결심해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갖춘 병의원이 너무 멀어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자살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은 한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기보다는 사회, 국가적인 노력과 국민, 개인의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국민과 정부, 시민단체, 관련 전문가와 자살예방활동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이 공동 노력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고 국민 모두가 동참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자살 예방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주변의 관심’이다. “Suicide is 100% Preventable. Speak Up, Reach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