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도둑질’ 보고만 있을 것인가?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중국은 만리장성이 2만km가 넘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6000km를 조금 넘는다고 해오다가 2009년에는 압록강 하구까지 연장하여 8851.8 km라고 했다. 이번에는 2만1196.8km라고 발표했다. 현재의 국경을 기준으로 자국 영토 내에 있는 성(城)은 모두 만리장성이라고 부른다는 새로운(?) 정의에 따른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인이 알고 있는 만리장성(Great Wall)과는 다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만리장성은 진(秦)나라 때 시작은 되었으나 대부분 명(明)나라 때 이루어진 것이다. 닉슨을 압도했던, 팔달령(八達嶺)에서 바라보는 만리장성은 주로 명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진의 함양(咸陽), 오늘의 서안(西安은) 여기서 만리(萬里)나 떨어진 곳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영토 내의 역사는 모두 중국 역사라는 희한한 ‘역사도둑질’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던 것과 다를 바 없는 패악무도(悖惡無道)한 짓이다. 극성기의 대영제국은 지금의 중국보다도 넓은, 전세계의 6분의 1을 지배하였다. 영국이 인도를 지배한다고 하여 석가(釋迦)가 영국 사람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대만은 1895년부터 일본의 식민지였다. 그렇다고 일본이 대만을 개척한 정성공(鄭成功)이 일본 사람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만주도 한때 일본의 영역이었다. 그렇다고 누루하치가 일본 사람이라고 역사를 꾸미지는 않았다. 중국이 고구려의 구강(舊疆)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여 고구려의 역사도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하는 것은 일본이 만주를 점령하고 있을 때 대청(大淸)이 일본 역사의 일부라고 우기는 것과 같은 억지다.
1980년대 중국 외교부나 군부의 소장파들이 남지나해의 남사군도를 두고 분쟁을 일으키려 하자 등소평은 “남사군도는 필리핀에 더 가깝지”라고 점잖게 평결(評決)을 내렸다. 중국이 커졌다고 외교부나 군부의 엘리트들이 제국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데 대해 “아서라. 그만 두어라”고 말린 것이다. 등소평은 과연 대인이다. 도광양회(韜光養悔) 차원이 아니더라도 개인이든 국가든 각자의 몫이 있다. 그런데 그 이상을 넘보는 것은 참월(僭越)한 짓이라는 것은 알고 있던 등로(鄧老)였다. 그처럼 영악한 등소평도 베트남에 버릇을 가르쳐준다고 하였다가 혼이 나서 빠져 나왔다.
중국이 “고구려 역사가 중국 역사”라고 하는 것은 영국이 “무굴 제국의 역사를 영국의 역사였다”고 하는 것과 같다고 촌철살인의 지적을 왜 못하는가?
세치 혀로 강동 6주를 확보한 서희(徐熙)의 기상과 지혜가 필요한 때다. 외교관과 중국 전문가, 언론이 모두 서희를 다시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