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프랑스·소련 농락’ 히틀러 vs 김정은 ‘중국·미국 쥐락펴락’ 닮은꼴은?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이었다. 여기에는 지도자들의 잘못된 판단도 문제이지만 평화를 지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의지의 결핍이 치명적이었다. 이는 오늘날에도 명심해야할 요소이다. 독일 국민은 ‘뮌헨 맥주홀 쿠데타’ 이후의 히틀러의 간교함을 파악하지 못했다. 1933년 나치가 선거에서 제1당이 되자 힌덴부르크는 히틀러를 수상에 지명했고, 힌덴부르크가 사망하자 히틀러는 대통령을 겸하여 총통이 되었다.

히틀러는 1938년 무혈로 오스트리아를 합병했다. 오스트리아인은 오스트리아 출신 히틀러를 열렬히 환영했다. 히틀러는 이어 독일인이 다수 거주하고 있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쥐데텐란트를 요구했다. 이른바 민족자결의 원칙이었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영국 수상 챔벌린은 뮌헨에서 히틀러와 불가침 각서를 교환하고 히틀러에 양보했다. 독일군은 체코를 무혈점령했다. 챔벌린은 영국 정치와 같이 대화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으나, 이는 망상이었다. 챔벌린의 유화정책은 오늘날에도 국가 지도자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교훈으로 인용된다.

1939년 9월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해 들어갔다. 폴란드의 지도자 시미위그는 독립을 위해 싸워온 애국자였고 훌륭한 군인이었으나, 전쟁을 지도할 만한 전략가는 못되었다. 폴란드는 2만명에 이르는 기병군단을 보유하였으나, 기병은 이미 시대착오였다. 폴란드 기병이 독일군 판자 사단에 돌격하다가 기관총의 밥이 되어 전멸하는 것은 目不忍見의 비극을 넘어, 동키호테가 풍차에 돌격하는 것과 같은 희극이었다. 게다가 소련군이 폴란드의 등 뒤에 침공해 들어오자 만사휴의(萬事休矣)였다. 폴란드를 위해 개입을 약속했던 영국과 프랑스의 공언은 휴지조각이었다. 폴란드는 독일과 소련에 분할되고 폴란드는 지구에서 말살되었다.

독소불가침조약으로 히틀러를 속아 넘겼다고 자신했던 스탈린은 바바롯사 작전으로 독일군이 물밀듯이 침공해오자 루즈벨트의 미국이 일본에 진주만 기습을 당한 것과 같이 황당하였다. 스탈린의 전략적 미스로 침공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소련군은 초전에서 박살되었고, 이후 러시아 국민은 2차대전에서 최대의 희생을 치르게 된다.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독일에 선전포고 했다. 당시 프랑스의 전차와 항공력은 히틀러보다 우세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마지노선을 믿고 독일이 침공해오기까지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1940년 6월 독일군이 아르덴느 숲을 뚫고 마지노선을 우회하여 침공해 들어오자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영불해협을 앞에 두고 포위되었다. 영국군은 모든 중장비를 버리고 덩케르크를 통하여 철수했고, 파리를 포위당한 프랑스는 항복했다. 이 모든 파국은 눈앞에 보는 듯한 오늘의 역사다.

김정은은 간교함과 포악한 점에서 히틀러에 진배없다. 미국을 상대로 장난치는 것을 은근히 즐기고 있는 시진핑에 의존하는 것이 국가전략인가? 고작 이지스함으로 북한 미사일 발사를 최초 포착하는 것이 군의 임무인가? 일본은 북한 미사일을 요격하겠다고 기세가 등등한데…

이제라도 한·미·일 공조를 다그쳐야 한다. 이것이 국가 지도자와 군이 할 일이다. 그동안 앞선 정부를 통한 이완(弛緩)은 더 이상 훼예포폄(毁譽褒貶)할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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