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식 ‘천황제’와 한국의 ‘2원집정부제’···반기문을 ‘대통령’으로 내세운다면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김정일이 북한에 일본의 천황제 비슷한 체제를 수립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첩보의 정확도나 신뢰도 면에서 매우 의심스러운 공상소설 같은 이야기이기는 하나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있었다면’ 하는 차원에서 살펴볼 필요는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여섯 살의 단종을 김종서 등 고명대신(顧命大臣)들에게 부탁하는 문종을 떠올리게 한다. 김정일도 10여년에 걸쳐 본격적으로 제왕학 수업을 받은 자신에 비해 아들 김정은이 못내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김정은에 의해 김일성 왕조가 계속 이어가도록 하기는 하되, 김일성 왕조 운영의 실질은 김경희, 김양건, 김기남 등에 의한 집단지도체제로 이끌어진다면 이는 중국이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인의 대통령’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과 같다. 1942년생인 김정일은 일본의 천황제가 가마쿠라 막부 이래 천년 동안 독특한 구조로 기능해왔다는 것도 들은 모양이다.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악용되었지만,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기초한 메이지헌법에서 일왕은 영국의 입헌군주제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오늘날 일본의 민주주의는 이를 꽃 피운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인민을 위한 정치’(爲民政治)를 하면 서방의 ‘인민에 의한 정치’가 아니더라도 공산당 일당통치가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국 지도자들이다. 어차피 수천 년 동안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중국 인민이다. 그런데 이 체제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중국의 고질인 관료의 부패가 없도록 해야 한다. 즉 관료와 공산당 간부들이 청렴해야 한다. 시진핑이 보시라이 등 상무위원까지 숙정에 예외가 아니라는 고육지책을 쓰는 것도 이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 신선도를 유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것은 일종의 법칙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생각과는 달리, 김정은이 장성택, 현명철을 처단하는 행태는 연산군의 황음무도(荒淫無道)를 연상케 한다. 만약 김양건이 보위부장 김원홍에 의해 암살되었다는 풍문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북한에도 공민왕이 자제위(子弟衛)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당 안의 당, 국가 안의 국가’가 된 조직지도부나 김영철의 정찰총국이 그런 일을 저지를 후보이다.
소련공산당이 1953년 스탈린 사후 껍질을 벗어 1980년대 후반의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에 이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역시 북한이 앞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다. 통일은 언젠가 다가오겠지만 이러한 전변이 영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며, 우리 스스로도 이 전변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2원집정부제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통치와 국민통합의 중심이 되고 정치는 국민을 잘 반영하는 국회 다수당이 맞도록 한다. 당장 개헌이 되지 않더라도 현재의 대통령제를 이러한 정신에 의해 운용하는 경륜과 원만한 성품을 갖춘 대통령이 있다면 생각해볼 만하다. 이와 함께 국회는 더욱 효율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다수결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도록’ 선진화법이 개정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소수는 배려되어야 하지만, 다수가 소수에 끌려가는 것은 ‘민주에 어긋나고 ‘공화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다가오는 4월 총선은 이 도정(道程)에서 획기적 매듭이 되어야 한다. 1987년 체제를 넘어서는 일대 쇄신과 충원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