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화교육’ 받은 북한 김영철 상장의 ‘인생유전’

North Korea's General Reconnaissance Bureau Director Kim Yong Chol, bottom, takes his seat prior to the start of a briefing for foreign diplomats regarding the latest situation at the border between the two Koreas at the People's Cultural House in Pyongyang, North Korea, Friday, Aug. 21, 2015. North Korean leader Kim Jong Un on Friday declared his frontline troops in a "quasi-state of war" and ordered them to prepare for battle a day after the most serious confrontation between the rivals in years. (AP Photo/Dita Alangkara)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핵심 측근으로 대남정책을 총괄하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최근 혁명화 교육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통일부는 “김영철은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고 당 통전부의 무리한 권한 확정을 추진하다 지난 7월 중순부터 한달 가량 지방 농장에서 혁명화 처벌을 받았다”고 밝혔다. 혁명화 교육은 고위 간부가 지방 농장이나 탄광으로 가 노역하며 ‘사상 무장’을 다듬는 것으로, 중대한 처벌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김영철은 김정은의 후계자 시절인 2009년 대남공작 총책인 정찰총국장을 맡다가 지난해 말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후임이 됐다. 김영철은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지난해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 등 대남 도발을 주도한 대남 강경파로 알려져 있다. <아시아엔>은 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이 김영철에 대한 기억을 편지체 형식으로 적은 글을 싣는다.<편집자>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김영철 상장! 귀하가 남북장성급 회담에 대표로 나온 것을 보니 여러 생각이 드는군요.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 동안 귀하와 敵手로서 다투어왔던 나로서는 북한의 간부정책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곧 무너질 것같은 북한이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도 이러한 간부정책의 덕분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2007년 김용순에 이어 통일전선부장이 된 백전노장의 김양건을 보고 느꼈던 것도 이와 같소.

그러고 보니 1996년 강릉지역에 잠수함 침투사건으로부터 귀하와 나의 승부가 시작되었지요. 귀하의 존재와 역할을 확인한 것은 사실 2000년 9월 제주도에서의 남북국방부장관회담 부터였소. 그날 밤 회담을 마무리하는 공동성명을 가지고 협상할 때 귀측 대표는 유영철 대좌였고 우리측 실무대표는 나였지요. 외무부의 송민순 북미국장, 김희상 국방대학교 총장도 있었지만, 조성태 국방부 장관에게 결재를 받아야 할 실무대표는 나였지요.

유 대좌와 내가 새벽 2시경에 문안을 확정짓고 상부에 결심을 받는 것만 남았는데, 우리는 조장관이 임동원 수석과 협의하여 대통령의 재가를 바로 받을 수 있었으나, 귀측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시간을 끌기에 의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바로 옆에 있는데 그 이상 결재라인이 왜 이리 복잡한가? 총정치국장 조명록 차수를 거쳐 국방위원장에 올라가느라고 이리 시간이 걸리는가? 하고 짐작하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 후 남북군사실무회담 등 수백 시간을 귀측과 회담하다 보니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결재를 받은 것은 대남업무에 정통한 귀하였고 김일철, 조명록은 형식적 채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남북군사실무회담에 안익산 해군소장(1성)을 내보내며 남에서도 소장(2성)이 나오라고 하기에 북에서도 2성이 나오면 응하겠다고 하면서 (북의 2성은 중장이다) 줄다리기를 하던 일도 있었지요. 통일부와 국정원은 들어주자고 했지만 나는 이 문제로 北이 군사회담을 깨지는 못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고집을 밀어붙였지요. 결과는 남의 완승이었지요!

남북군사실무회담이나 장성급회담에서, 회담장에는 누가 나왔든지 간에 회담을 지휘한 사람은 귀하와 나였지요. 영화에서 배우는 화려한 각광을 받으나, 결국은 감독이 모든 것을 연출하고 최종책임을 지듯이, 귀하와 나는 10년 동안 남북군사회담 진행에서 실질적으로 책임을 졌던 것을 잊을 수가 없군요. 둘의 입장은 사뭇 달랐던 점도 간과할 수 없지요. 귀하는 자기 경험과 논리에 따른 주장을 국방위원장에게만 납득시키면 되었지만, 나는 합참, 통일부, 유엔사를 설득하고 국회와 언론을 이해시키느라 애를 써야했지요. 그에 비하면 귀하와 2004년의 회담에서의 무박 3일의 밀고 당기기는 차라리 약과였지요.

당신이 혁명화 교육을 받았다고 보도가 났더군요. 북한에 혁명은 일어나기 어렵고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당신을 제1용의자로 꼽았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눈치를 챈 모양인가요? 김영철 상장, 참으로 인생유전(人生流轉)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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