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속으로] 시베리아 대장정 나서는 소아암 전문의 김태형 교수 인터뷰
고려인 흔적 더듬으며 자연에서 길 찾고파···고국 떠나 삶의 고뇌를 껴안아 보니 ‘이게 인생이구나’
박상설 캠프나비 대표가 재미 의사인 김태형 박사의 인터뷰와 박 대표의 단상을 보도한다. 김태형 박사는 소아심장병 전문의로 서울아산병원과 국립암센터, 미국 에모리대의대 교수 등 한국과 미국에서 50년 진료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도 앞장서고 있다. 김 교수는 40여년간 마라톤 풀코스에 출전하고 있으며 올 가을 시베리아 3000km 대장정에 나설 계획이다.-편집자
[아시아엔=박상설 <아시아엔> ‘자연과 삶’ 전문기자] 미국 애틀란타에 거주하는 재미동포 의사인 김태형 교수의 메일을 받았다. 그는 이국만리 땅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고절(孤絶)의 번뇌와 싸우며 세속과 아득히 떨어져 뛰는 백발의 마라토너다. 이른 새벽, 이슬 너머에 홀로선 곱고 부드러운 도라지꽃 같은 사람이다. 그가 지난 20일 이메일을 보내왔다.
박상설 선생님. 보내주신 ‘국립공원에 바란다’란 제목의 글은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많은 독서와 한평생 자연 속에서 키워진?선생님의 맑은 지혜가 강물처럼 흘러나네요. ‘인문주의적 순례의 길’, 참 어려운 문구지만, 그것은 선생님의 삶 자체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제안으로 국립공원이 우리나라 국민의 인성교육의 장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누이야, 시베리아에 가봐> 책을 어제 구하는 즉시 선생님처럼 단숨에 읽었습니다. 지금 한방 얻어맞은 기분으로 얼떨떨합니다. 90세이신 이정면 교수, 88세이신 서무송 학자, 그리고 이들과 함께 3000km의 ‘아리랑순례길’을 동반한?환갑의 이창식 회장 등 지난 번 선생님께서 시베리아횡단을 말씀하셨을 때 어리석게 저도 걱정을 했었지요. 이번 가을에 있을 ‘제2차 3000km 시베리아 아리랑 루트 탐방’엔 선생님도?당연히 동행하시겠지요? ?
그리고 저는 이곳에서 하고 있는 독서클럽에 <누이야, 시베리아에 가봐>를 선정해 친구들과 시베리아 횡단을 함께 맛보겠습니다.
김 태 형 배
그는 <누이야, 시베리아에 가봐>를 단숨에 읽고 살롱문화독서 클럽인들과 마음을 흔들고 땅을 열어 시베리아횡단여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듣는 것만으로도 자작나무가 하얗게 우거진 시베리아 숲의 광활한 그늘에 앉아있는 듯하다. 저 멀리 유라시아 낯선 어느 숲 한 그루의 자작나무이고 싶다.
참아 꿈엔들 잊으랴, 교포들의 염원~
살구꽃 피는 언덕의 조국 고향땅!!
고향은 가도 가도 고향이다. 언덕 넝쿨엔 참새 떼가 조잘대고, 살구꽃 나무에 고요가 잠들고, 바람결에 하루 종일 기쁨을 누려도 탓하는 이 없는 고향은 고향이다. 여름날의 적막한 고요···. 마음의 고향은 빈 들길을 걷는 외로움이 그리움에게 죄스러움을 알리는 듯, 그리하여 고향이 진하게 다가오곤 했다.
애잔하다 할까? 더 나은 삶을 위해 고국을 멀리 떠난 동포들은 오늘도 밤이면 조각달 비켜 흐르는 구름 사이로 고향을 감돌며 훔쳐볼 것이다. 고향살이 아닌 타향살이, 이제 그들의 고향이란, 지구 구석구석의 세계를 넘어 연두 초록 바알간 꽃을 낯선 흙에서 피워 자라게 하는 ‘그리움이 끝끝내 찾아가고야 말 고향’을 만든다.
다음은 올 가을 시베리아 대장정에 나서는 김태형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누이야, 시베리아에 가봐>의 어떤 점에 그렇게 매료됐나.
“아리랑을 전세계에 울며 퍼지게 한 조국의 꿈 그리고 그 길 위의 나라사랑이다. ‘자연과 삶’의 숨결을 찾는 아름다운 길에 심취됐다. 만년 시름 잊을 길 없는 발자취를 찾아 꼭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오랫동안 그리고 멀리 떨어져 사는 고려인의 감성을 재미동포가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시대적 배경은 크게 다르지만 우리와 같이 조국을 떠나 이국만리에서 하루도 고국을 그리지 않은 날이 없는 그 처절한 마음은 같다고 본다. 그래서인가 우리는 늘 고국의 평화를 빌고 있고, 동시에 고려인도 자신이 사는 나라에서의 안정적 삶을 담보하는 노력을 치열하게 펼칠 것이며 그 공력은 재미동포도 같은 맥락에 있다.”
-여행은 개인적으로 놀이 겸해서 즐기는 건데 3000km 대장정 그러면 너무 구속되는 것 아닌가.
“일상의 삶을 떠나봐야 안다. 석양으로 저무는 처절한 향수는 고국을 떠나본 사람만이 느끼는 가슴을 파고드는 절해고도의 대답 없는 만고수(萬苦愁)다. 미국을 위시해 산업화의 물결을 따라 기회의 땅을 찾아간 해외동포와 같이 고려인들의 고국을 그리는 마음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원형 희구의 겨레 사랑일 것이다.”
-고려인의 어떤 삶이 가슴에 와 닿나.
“100년을 울며 요동치며 쫓겨 산 한 맺힌 드라마라고 생각된다. 일제의 강압과 궁핍에서 도망쳤으나 연해주에서 또다시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추방된 18만명의 고려인의 처절한 삶의 애환이 가슴을 내려친다. 불모의 땅에서 아리랑 가락에 실린 생명의 위대함을 찬미하고 싶다.”
-<아시아엔> 독자들에게 할 말씀은.
“고국을 떠나봐야 안다. 낯선 땅에서는 한낮에 디딘 땅도 낯 설고 풀꽃에도 가슴앓이 한다. 밤의 총총한 별빛을 바라보며 어릴 적 고향친구, 그리고 내 어머니를, 내 조국을. 무릎 꿇고 눈물지으며 근원적 고향의 사랑의 화신에게 합창 올렸던 이민 초기의 그때를 잊지 못한다. 이창식 상임이사(전 우리은행 부행장), 이정면 교수, 서무송 교수가 아리랑의 정체성 발굴을 위해 시베리아 대장정의 길을 탐험하고 책을 펴낸 업적에 경의를 드린다.”
김태형 교수는 1939년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서 출생한 서울 토박이로 경기고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에모리대 의대 소아혈액종양분과 과장 △울산대 의대 소아과교수 △국립암센터 소아과교수 △대한소아뇌종양학회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소아암, 알면 완치할 수 있다>(2013년)가 있다. 현재는 에모리대 의대 명예교수로 재직중이며 44세부터 아마추어 마라톤을 생활화하고 있다. 보스턴마라톤대회와 미국과 한국의 마라톤대회에 정기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어린이 심장병환자와 뇌종양환자 돕기 기금 마련에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