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속으로] ‘스트레스 제로’ 숲으로 가라

틀을 깨고 몸을 굴려 야지에 사는 風翁
‘구속이 자유다’ ‘고통 뒤에 즐거움이 온다’

나는 내 방식대로 삶을 펼쳐왔다. 틀을 깨고 몸을 굴려 야지에 살아남아 오늘도 자연에 논다. 생계를 위시해 모든 일상의 일들을 호미질하며 김매듯 살아낸다. 내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도전의 삶이다. 그 주적(主敵)은 나다. 나를 혹사해 ‘구속이 자유다’ ‘고통 뒤에 즐거움’이 온다.

이 행동원칙은 말없고 잔소리 없는 숙엄한 자연에서 깨우쳤다. 인생의 허무니 좌절이니 갈등이니 하는 번민 따위를 거둬치웠다. 순간을 살아내고 뒤돌아보지 않는다. 마치 자연처럼! 이 즐거움은 자연과 문예정신과 나를 한 몸으로 노는 것으로 증거 한다.

자연과 문예정신의 즐거움 이란 무엇인가?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오는 순수 무궁한 정서를 인문학정신으로 살아내는 행동하는 기쁨이다. 가슴 조이는 경탄과 기쁨을 자아내는 자연의 질서와 그 안에 깃든 오묘한 것들에 대한 흠모의 삶이다. 이 근원적 원리를 삶의 교서(敎書)로 삼고, 그 기쁨의 복이 여러 사람과 공유되기를 바란다. 이런 삶을 행동으로 해내는 것만이 내가 가는 길이다.

자연의 아름다음에 대한 심미주의(審美主義)를 철학사상의 장르로 삼는다. 인생관으로서의 삶을 숲에서 ‘자연의 정신’으로 문예와 흙과의 소꿉놀이로 만신창이 되어 살아낸다. 인간공장 쪽보다 자연생태계에 신경 쓴다. 제로스트레스의 숲에서 노닌다.

오직 자연을 사랑하며 함부로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름다음은 진실이며 진실은 아름다음이다. 허나 아름다음은 진실보다 우위에 있다.

<사진= 박상설 제공>

나침반에 길을 묻자

돈이 먼저냐 즐거움이 먼저냐 이것이 문제이다. 일의 보람을 느끼며 돈을 벌어 절제된 소박한 삶으로 마음의 풍요를 누린다. 이 판가름은 철학과 문화수준의 안목차이로 결정된다. 삶의 방식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천차만별이고 욕구를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 여기서 독자들은 마음 편한 삶의 길은 무엇인지 나침반에 길을 묻자.

생활 형편이 어렵더라도 정신세계를 택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 반대의 사람도 있다. 자연세계는 영원하고 물질세계는 유한하다. 결핍이 나를 다스리는 채찍이고 채근이다. 삶은 살아낼 수밖에 없는 고통스런 연속이다. 그 해결책으로는 자연을 사랑하는 심미주의와 휴머니티의 정신을 일상생활화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삶의 고통은 줄어들고 삶의 품격은 높아진다. 가장 진리적이고 가장 독자적이며 유연하고 신축성 있는 막강한 Entropy적 세계관으로 살 일이다.

시간의 화살···.

인생은 불가역(不可逆)이며, 도리킬 수 없는 숙명에 갇혀 산다. 사변적 말꼬리가 아니라 행동이다. 홀로 존재하는 절대적인 순수한 색은 없다. 자연의 색을 음미하며 나라는 일 인 칭을 벌이고 내가 자연이다. 사람들은 못사는 것과 잘사는 것에는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다고 믿는다. 그 선이란 것이 재화(財貨)이다.

재화는 중요하다. 하지만 재화는 마음대로 좌지우지 못한다. 그래 그것은 그렇다 치고, 잘살아야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인생의 명제이기 때문에 나는 삶의 틈새를 교묘하게 비집고 들어가 ‘자연풍의 놀이’를 슬쩍 끼어 넣어 놀며 일하며 잘도 산다. 나는 아흔 살 가까운 나이에도 하고 싶은 것 여한 없이 다하며 공고히 살아 내고 있다. 나에게는 자연이 직장이며, 죽는 날까지 자연으로 출근하고 걷다 쓰러질 것이다. 늘 숲을 동경하며 그렇게 하나 된다.

<사진=박상설 제공>

Simple life 무임승차 노인

자연이란 ‘원시’를 일컫는 말이다. 가능한 원시상태를 끼고 산다. 자연의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고달픈 세상살이도 한결 나아지게 보인다. 자연에 놀다보니 Simple life의 무임승차 노인이 됐다. 나는 일상을 ‘레저놀이’로 꾸며 마냥 자연에 뒹군다.

자연은 그냥 흘러간다. 그대로 버려둔다. 그대로 좋다. 덩달아 내가 좋다. 자연에 노는 놀이문화는 창조생산이 무제한 가능하다. 인플레니 디플레니 하는 것도 없고 인허가도 필요 없다. 보람과 삶의 의욕을 북돋아주는 독점생산이며 소비다. 살며, 주말에 야영하며, 농사일하며, 산에 가며 여행을 한다. 이 놀이가 자연을 모태로 삼은 레저문화이다.

감성과 호기심을 유발시키고 땀 흘려 일하고 땅에 뒹굴어 건강을 다지며 마음을 넉넉히 하는 평화로운 삶이다. 배우지 않고 늘 하던 대로만 노는 방식을 부끄러이 여기고 고품위의 아웃도어 메커니즘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훈련을 거듭 쌓아가야 한다. 시선(詩選) 한권 들고 숲에 들어 한 줄의 보들레르의 ‘대기의 색채’ 구절을 발견하고 몸을 떨며 스스로 아름다워지는 앤솔로지의 기쁨, 무엇으로 이 감동을 사랴!

<사진=박상설 제공>

여한 없다, 삶의 굴레를 벗어던지니

인생을 단순화시켜 자연에 기대 산다. 근심 걱정 따위는 자연에는 없다. 허나 나는 고뇌한다. 사유하는 고뇌의 고통이 얼마나 멋진 게임인가! 레저놀이는 삶의 근본인 행복프로젝트이다. 레저의 행위문화를 몸으로 솟구치게 하는 일에 골똘 한다. 서재를 박차고 숲을 두리번거리며 뭔가에 젖어 독백한다. 오늘밤에는 사력을 다한 글을 쓸 것이다. 레저놀이는 글로 완성된다. 나의 글은 늙는 것도 죽는 것도 잊은 채 몸을 펜대로 삼아 흙에 흔적을 남기는 처절한 기록이다.

위트와 재주 넘치는 찬란한 글은 모른다. 내 생애는 오늘을 위한 모든 날이었다. 신명나는 레저놀이를 섬세하고도 세련된 문화설계로 접근한다. 그 과정이 즐거움이며 세계화를 향한 가정경쟁력의 공력이다. 변화무쌍한 새로운 레저놀이 기술을 배우고 임기응변의 순발력 있는 모험서바이벌로 단련한다. 각종 레저장비의 취급사용에 통달한다. 그리하여 숲으로 산으로 바다를 쇼핑한다. 주말에 땀 흘려 밭을 가꾸고 텃밭에 무릎 꿇고 절하며 고맙게 여긴다.

아름다운 영혼과 향기로 가득하다. 내 생애는 오늘을 위한 모든 날이었다. 나는 산에 가고 밭을 가꾸며 국내외의 오지를 피와 땀으로 탐험해왔다. 그 전쟁터 이야기를 글재주도 없는 주재에 ‘나침반’이란 이름으로 칼럼을 써서 동호인들과 정감을 나누어왔다. 그런데 그 글이 사람들 사이에 흘러 다니며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일들이 벌어진 모양이다. 이런 인연으로 글이 점차 퍼져나가면서 강의 요청도 가끔 오고, 나침반을 교재로 한 고랭지 현장체험 워크숍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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