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고통받고 싶은가요? 그럼 세상을 원망하세요!

우리 몸이 자연을 원하는 것은 원초아적(原初我的) 인간본능입니다. 나는 적잖은 긴 세월을 살았습니다. 때로는 견디기 어려운 시기도 있었고, 느슨한 좋은 세월도 있었습니다. 비몽사몽 하는 사이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속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 따라 사는 건 쉬워도 만들어 사는 것은 익숙하지 않아 그날이 그날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흔히 봅니다. 이렇게 살아도 신통치 않고 저렇게 살자니 엄두가 안 나고 이리저리 삶은 고됩니다. 허나 숲은 걷기만 해도 늘 그랬던 것처럼 마음이 맑아지니 갈팡질팡 할 것 없이 실험은 끝장났습니다. 자연이 선물한 ‘스트레스 자정(自淨)’의 작용 결과입니다. 레저생활이 답입니다. 이것이 나의 또 다른 세계입니다.

철학이다, 문화다 하지만 ‘지식’으로 사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자연을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의 원초적 본능욕구의 자연DNA가 우리 몸에 새겨져 있습니다. 문명물질에 현혹되다 보니 자연DNA가 병들고 탈이 나는 것입니다.

그래 힐링이다, 치유다 하며 자연을 쫓아다니지만 겉핥기식의 자연이용은 또 다른 거품일 뿐입니다. 우리 몸은 자연을 원합니다. 자연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요리하는 것 외에는 딴 방도가 없습니다.

여지껏 미혹(迷惑)의 덫에 빠져 자연을 멀리하고 달려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연을 최우선시하는 소박한 ‘Simple life’라고나 할까···. 일상을 번민 없이 사는 길이지요. 주말에는 농사일하며 산에 가고 캠핑으로 자연에 뒹구는 생활을 50년이나 하다 보니 수도 없는 빛과 그림자의 스토리가 있습니다.? 자연에서 몸으로 부대끼는 고난의 삶은 희한하게도 고생스럽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해방감을 만끽하는 즐거운 나의 시간입니다.

이런 짓을 하다 보니 오로지 흙과 숲, 들꽃과 바람, 구름과 나만의 관계가 성립됩니다. 마치 화가가 캔버스와 풍경에만 몰입하듯 말입니다. 여기서 오는 희열과 상쾌함은 집안이나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생한 날 것의 자연뿐입니다. 그래서 자연에 빠질 수밖에 없는 보다 넓고 깊은 세상이 몸을 받쳐주니, 그 신명바람이 산을 타게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 짓을 아니 하고는 못 견디는 노인으로 살아왔습니다.

이제 어렵사리 인생의 마지막 결승골선상에 이르렀으니 마지막 한발자국에 평생을 살아낸 내 생애를 걸고 천진난만하고 호방하게 너저분한 모습 안보이고 마지막 순간까지 환한 삶을 이어갈 꿈으로 늘 산에 나를 버리러 갑니다.

캠핑과 등산용 장비와 농사기구를 모으는 것이 내 생애의 재미가 되었습니다. 주말에는 늘 그랬던 것처럼 지난 주말에도 야외생활소품과 프랑스작가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의 책과 <매거진 N> 3월호를 배낭에 챙겨 넣고 소풍가는 아이 모양 신비스런 힘에 끌려 걸었습니다.

걷다 보니 짙은 향을 풍기는 생강나무가 외로이 서있어 그 아래에 텐트를 마련하고 꽃을 바라보는 존재의 절정, “박상설, 그것이 바로 너다”라고 했습니다.

배낭 하나면 나는 아무 것에도 방해를 받지 않습니다. 쉬며 산책하며 봄 길을 그냥 걷습니다. 그 길은 내가가는 길입니다. 그 길이 마음농사 짓는 이야기로 이어지고 또 그렇게 이어져나갈 것입니다. 배낭하나로 나의 생은 쉬엄쉬엄 마무리되어가고 그 외의 것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인문학 책은 책상머리를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 책은 침묵보다는 행동으로 살아나 산에서 읽으면 맛이 다릅니다.

작은 오류도 비켜가지 않습니다. 책을 끼고 흩어진 내 마음을 단속하려고 산에 있습니다. 자연과 연결되는 생명줄은 책과 걷기이며, 그의 완성이 글쓰기이고 글쓰기로 또 다른 낯선 하루가 열립니다.

이제 확연한 봄입니다. 봄 햇살이 출렁이는 샛바람이 쾌연(快然)합니다.

그 바람은 어디서 살다 온 바람일까? 계곡에 들어 바람과 같이 쉬었습니다. 그리고 능선에 오르니 먼 산 너머에서 살던 바람이 쫓아와 숲을 훑고 지나갑니다. 소리를 못내는 군락을 이룬 나무들은 일제히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상념을 무어라 표현할 재주가 없어 내가 가엾고 딱할 뿐입니다. 그게 숲의 소리인지, 바람의 소린지? 헛갈립니다. 나무가 소리를 낸다?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삼라만상 쪽에 서면 알 수 있는 것일까?

모든 살아있는 나무의 제자리를 생각하며 태초의 조물주 음성이 이런 소리였다고 나무에게 일러주고 싶습니다. 빛이나 중력도 소리를 내는가? 무척 궁금합니다. 너무 한가한 물음인가? 어려운 질문인가?

하지만 다시 묻습니다. 138억년 전 빛에 새겨진 신비한 ‘중력파’를 처음으로 찾아냈다는 신문보도를 며칠 전 보았습니다. 그냥 그 소리도 듣고 싶습니다.

세상은 어찌 돌아가든 봄날의 산책도 해야 하고, 곧 피어오를 들꽃도 보아야 하고. 작년에 뿌린 야생화 씨가 피어나는지도 가보아야 하고, 라일락나무가 얼마쯤 자랐는지? 참 바쁩니다.

마지막 해가 될지도 모를 흔적으로 은행나무 300그루를 샘골농원에 심었습니다. 내년 봄에도 이런 날이었으면 합니다.

추신=저의 잠언록을 몇가지 소개합니다.

1. 고통의 핵심에는 지금의 ‘삶의 방식’이 도사리고 있다.
2. 지식을 얻으려면 책을 읽고, 지혜를 얻으려면 사람을 만나야 한다. 삶의 폭을 넓히려면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더 큰 자유를 얻으려면 자연을 통해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3.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를 위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 남을 위해 한 일은 무엇인가? 가족과 가정에만 빠져 있지 않나? 마음은 늙고 생활은 녹슬지 않았는지? 득총사욕(得寵思辱)-보살핌을 받으면 욕이 된다.
4. 인생은 남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 담금질, 나의 점검-나의 평가-나의 발견을 통해 삶의 뜻을 깨닫는다.? 항상 건강을 챙기는 나, 항상 부지런한 나. 항상 공부하는 나. 항상 시대의 흐름에 앞서가는 나. 세련된 매너와 감성으로 세파를 헤쳐가는 나. 유연한 사고로 미래를 열어가는 나.
5. 상부구조(上部構造) 문화(품위 있는 삶)에 산다. 세계적 관점에서 산다. 자유는 자각된 근검절약과 자립실천. 주입된 이데올로기와 타성(惰性)의 청산. 일상에 연연하지 않고, 밖으로 튀는 호기의 모험. 여가생활이 삶의 질을 결정.
6. 삶을 풍요롭게. 젊은 세대는 30~40년 후를 대비한 인생설계. 성인세대는 노년 설계 자립생활, 정년 없는 활동. 죽음 대비 훈련, 자연친화 생활, 과거를 버린다.
7. 산과 강과 망망한 바다가 제 스스로 그러하듯 일상을 자연으로 돌려야.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연의 숙명 속에 있다. 만물은 죽어 자연이 된다. 인간은 어제도, 오늘도, 미래도 자연에 있다. 자연은 모든 것의 치유력. 자연은 ‘자유’ ‘즐거움’ 자기실현’의 푸른 보석.
8. 공부와 일과 생활이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늘 파릇파릇하고 톡톡 튀는 즐거움의 어린 마음으로, 자연을 통해, 사람을 통해 나를 바꾼다.
9. 삶은 거친 풍랑을 헤쳐나가는 자기탐색의 긴 여정. 자연에 묻혀 삶을 풍요롭게 한다. 맑은 가난을 모르면 아픔도 모른다.
10. 조화로운 삶을 위한 대안은 일과 공부, 여가의 균형. 부자 보다는 잘사는 자유인 이것이 자연인이다.
11. 버려야 얻고, 자연에 머물러야 산다. 도시와 시골의 문화소통생활-2村5都의 여가생활. 늘 미지의 세계를 향한 담대한 도전.
12. 행동으로 결판내야. 모든 갈등은 행동 없는 지식. 행동 없는 지식은 칼집 속에 든 칼. 개척은 실패를 전제한 예고된 모험. 안 된다는 말은 고민 안했다는 증거. 변화 생활은 인습과의 결별이 우선이다.
13. 왜 행동인가? 세상은 나에게 맞추어 주지 않는다.(인간이 요구할 뿐, 세상은 나에게 원하는 것이 없다) 세상을 비난하는 한, 고통을 안고 산다. 세상은 늘 그대로, 내가 새 길을 뚫어야. 세상은 냉혹하지만, 끊임없이 도전하면 열린다. 답은 하나, 행동뿐!!
14. 상식을 버려야. 상식은 묵시적으로 전해온 모방(흉내 내기).? 상식에 갇히면 창조는 없다. 허송세월은 상식을 먹고산다. 상식은 다양성을 말살한다. 상식을 버리면 운명이 바뀐다.
15.콘크리트 숲 속에서-박쥐둥지 박차고 나와야 한다. 오지 산골에서, 별을 바라보며 밤이슬에 젖어보자. 모닥불에 배우자의 주름진 그늘이 점멸할 때, 한 인간에게 살가운 정을 느껴보자. 때로는 집을 버리고, 산과 들, 해변, 사막을 걸으며 땅에 눕자. 인간 세상에 대한 지혜보다, 자연을 보는 혜안을 길러야 한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