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네팔 지진으로 무너진 박타푸르 왕궁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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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타푸르 왕궁<사진=위키피디아>

박타푸르는 카투만두 ‘파탄’과 함께 카투만두 계곡의 3대 고도로 카투만두에서 약 15km 떨어져 있다. 14~16세기경에는 티베트와 인도의 중계무역으로 최대의 전성기를 누렸으나 18세기 ‘샤 왕조’ 정권교체기에 왕국의 중심이 카투만두로 이동하는 바람에 빛을 잃은 고대도시다. 그러나 관광산업 발달로 중세풍의 건축과 왕궁을 비롯한 사원들이 네팔 최고의 관광지로 다시 각광을 보고 있었다.

그 세계의 보물인 박타푸르왕궁이 이번 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사망자도 1만명으로 늘어날 공산이 크다고 한다. 우리는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정부에서도 구호금과 구조대를 급파했다. 또한 그 후속조처로 각계에서 온정의 물결이 쇄도하고 있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2015년 4월 25일 새벽, 네팔에서 강도 7.8의 대지진이 일어났다. 진앙은 네팔 간다키 구 람중 현이며, 진원까지의 깊이는 대략 15km라고 한다. 이 지진은 1934년 네팔~비하르 지진 이후 네팔에서 발생한 가장 강력한 지진이다. 이 지진으로 인해 네팔, 중국,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43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엄

10년 전 필자는 배낭하나 달랑 걸머지고 중국, 티벳트, 네팔, 인도 등지를 한달간 다녀온 적이 있다. 그 중 네팔에서 10일 정도를 보냈다. 네팔의 유적지와 인심이 나그네의 가슴에 따뜻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 중에도 가장 인상에 남았던 곳이 고도(古都) ‘박타푸르왕궁’이다.

박타푸르는 카투만두 ‘파탄’과 함께 카투만두 계곡의 3대 고도로 카투만두에서 약 15km 떨어져 있다. 14~16세기경에는 티베트와 인도의 중계무역으로 최대의 전성기를 누렸으나 18세기 ‘샤 왕조’ 정권교체기에 왕국의 중심이 카투만두로 이동하는 바람에 빛을 잃은 고대도시다. 그러나 관광산업 발달로 중세풍의 건축과 왕궁을 비롯한 사원들이 네팔 최고의 관광지로 다시 각광을 보고 있었다.

그 세계의 보물인 박타푸르왕궁이 이번 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사망자도 1만명으로 늘어날 공산이 크다고 한다. 우리는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정부에서도 구호금과 구조대를 급파했다. 또한 그 후속조처로 각계에서 온정의 물결이 쇄도하고 있다.

‘피겨여왕’ 김연아는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 10만 달러, 우리 돈으로 1억원을 기부했다. 유니세프측은 “김연아의 기부금은 피해 어린이들을 위한 영양, 식수위생, 보건, 보호사업 등에 쓰일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구호활동을 펼치기 위해 네팔 현지로 떠났다.

29일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에 따르면 김보성 월드비전 홍보대사는 네팔 지진 피해복구를 위해 1천만원을 기부했다. 의리의 사나이 배우 김보성은 28일 오후 늦게 전화로 기부의사를 전하면서 “더 많이 기부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해 죄송한 마음뿐”이라며 “아직도 생사조차 확인되지 못한 수많은 분들과 도움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지역의 네팔 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다.

한편 국내 기업들도 지원 활동에 나섰다. 아웃도어 브랜드 ‘블랙야크’는 지진 피해 지역 이재민들에게 4억원 상당의 텐트와 의류를 전달하기로 했고, ‘밀레’ 역시 3억원 규모의 구호물품을 지원하기로 했다. 기업들과 스타들이 발 벗고 나서고 있는 네팔 지원 활동은 사회전반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이제 종교계와 일반국민들이 나서야 할 차례다. 우리도 어려운 처지이긴 하지만 월 2달러 정도의 돈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참상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는 것이 양심이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작은 변화가 폭풍우와 같은 커다란 변화를 유발시키는 현상을 나비효과라고 한다.

나비효과처럼 혼자만의 작은 선행과 배려로 시작한 일이 세상 전체를 움직이고 변화시킬 만큼 큰 힘을 가질 수도 있다. 희망이 없던 사람도, 가진 것이 많든 적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그 날개 짓으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온정이란 따뜻한 사랑과 인정을 말한다.

어느 아파트 근처에 있는 세탁소에서 불이 났다. 불은 세탁소 전부를 태웠고, 며칠이 지난 후 아파트 벽보에는 사과문 하나가 붙었다. 사과문에는 불이 나 옷이 모두 타서 죄송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옷을 맡기신 분들은 옷 수량을 신고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공고가 붙은 후, 한 주민이 사과문 아래에 글을 적고 갔다. “아저씨! 저는 양복 한 벌인데 받지 않겠습니다. 그 많은 옷을 어떻게 변상하시겠습니까? 용기를 내세요!”

그 주민 말 한마디에 아파트 주민들이 속속 배상을 받지 않겠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그 후 누군가 금일봉을 전했고, 금일봉이 전달된 사실이 알려지자 또 다른 누군가도 또 다른 누군가도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다.

얼마 뒤 아파트 벽보에 또 한 장의 종이가 붙었다. 다름 아닌 감사문이었다. “주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월남전에서 벌어온 돈으로 어렵게 일궈 온 삶이었는데, 한순간에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따뜻한 사랑이 저에게 삶의 희망을 주었고, 저는 다시 일어 설 수 있을 것입니다. 꼭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온정이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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