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아시아엔 독자 여러분, 이런 사랑 해보셨나요?
‘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내 마지막 사랑인지?’?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사람들은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르다가 잃어버린 후에야 그 안타까움을 알게 되는 못난 인간의 습성이 있다. 그 회한을 곱씹지 않을 방법은 무엇인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다음에 슬퍼하지 않으려면 내일이면 나의 눈이 장님이 되어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처럼 그 사람의 모습을 우리의 마음에 각인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내일이면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못 만져보게 될 것처럼 스킨십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일이면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의 향기와 맛을 못 느낄 것처럼 임의 향과 맛을 음미해 보는 것이다.
세월은 가고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도 떠나간다. 지금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인연도 세월 따라 흘러가고 한때 사랑하는 사람과 품었던 꿈도 흘러가 버리고 만다.
또 우리가 만나는 시간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 꿈은 흘러가 버린다. 사랑하는 사람이 부부이건 부모자식이나 연인이건, 친구든 지금 마음껏 사랑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가고, 그 꿈도 사라진다.
연탄장수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있다. 그는 비좁은 산동네에서 연탄을 팔고 있다. 무더운 여름 그는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오르막길에서 말없이 리어카를 밀어주던 그녀는 외로운 노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 같았다.
산동네에 살기에 어울리지 않게 그녀는 비싼 옷과 멋있는 차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연탄장사는 그녀와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녀와 함께 산동네 독거노인들도 보살피고, 연탄도 같이 실어 배달하게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녀가 안보이기 시작했다. 미칠 것만 같았다.
아름다운 그녀가 혹시 잘못된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서너달이 지났을까, 그녀가 나타났다. 큰 짐 가방 두개를 들고서. “저 데리고 살 수 있지요? 당신이랑 함께 살고 싶어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젊은이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꿈에서만 바라던 그녀가 자신에게 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둘이는 하나가 되었다. 물론 그녀의 부모님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녀는 부모까지도 버려가며 그에게 온 것이다. 가난했지만 둘이는 행복했다. 가끔 그녀의 예쁜 옷에 연탄재가 묻을 때면 속상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나고 둘이는 월세집이 아닌 진짜 그들만의 집으로 이사를 하였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가끔 연탄을 배달하는 아내의 얼굴에 땀이 맺히곤 했지만 다른 걱정은 없었다.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고 연탄 값이 조금 내릴 때쯤 서둘러 연탄을 장만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아내와 그는 힘든 줄 모른 채 연탄배달에 정신이 없었다. 산꼭대기에 오르고 있을 때였다. 아내가 뒤에서 리어카를 밀다가 손을 놓쳐버려 넘어지고 말았다.
연탄재를 대충 털고 일어나 아내에게 다가갔을 때였다. 아내는 의식을 잃은 채 식은땀만 흘렸다. 병원에 도착해 한 시간이 지났을까, 아내가 죽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아내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아내의 소지품을 정리할 수 있었다. 아내가 그토록 감춰온 일기장을 보았다.
“오늘 정말 자상한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는 연탄을 배달하는 배달부였다. 남자의 연탄이 굴러 떨어질 것만 같아 뒤에서 남자의 리어카를 밀어주었다. 말 한마디 해보진 못했지만 따뜻한 남자 같았다. 오늘은 그와 연탄배달도하고 홀로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댁을 찾아 음식도 전해드렸다. 내 생각이 맞았다. 그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그가 사랑스러워 보이기 시작한다. 하루라도 그를 보지 못하면 내 하루는 엉망이 된다. 부모님께 그의 이야기를 해보았다. 하지만 부모님은 이해해주시지 않았다. 속상한 마음에 짐을 쌌다.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그만이 나를 감싸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에게 같이 살자고 말했다. 그는 당황했는지 아무 말도하지 못했다. 그도 날 사랑한 것일까? 같이 산지 3년 만에 우리 집이 생겼다. 그동안 그와 배달을 해서 번 돈으로 집을 장만한 것이다. 너무 행복하다. 병원에 다녀왔다. 병이 점점 악화되어 얼마 살지 못할 텐데 무리하지 말라며 의사선생님은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했다. 엄마가 보고 싶다. 넓은 집에 나의 느티나무가 가끔씩 보고 싶다.
죽을 때가되니 별생각이 다 든다. 이마에서 점점 식은 땀이 흐른다. 남편이 보지 않기를 바랐는데, 난 문둥병이다. 점점 눈썹과 머리가 빠진다. 남편을 처음 만나고 지금까지 눈썹을 그리고 다녔다. 다른 남자들처럼 남편도 날 떠나갈까 봐 너무 두렵다. 더운 날이었다. 한참을 오르고 오르다 남편이 쉬었다 가자고 말했다. 그리고는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아주었다. 걱정이 되었다. 눈썹을 지워버릴까봐.
이상하게도 남편은 이마와 볼만 문지르고 있었다. 눈썹 근처는 가지도 않은 채. 이제야 알았다. 처음부터 남편은 알고 있었던 거였다. 다른 사람은 모두 날 버렸지만 남편은 나의 병까지도 사랑해 준 것이다. 남편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넘 미안했다. 이제 남편의 리어카를 밀어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내 마지막 사랑인지?’ 하고 한숨만 쉴 뿐이다.”
부부의 안타까운 별리(別離). 있을 때 잘해야 한다. 소홀하면 회한만 남는다. 그렇다고 이 애절한 사랑이 끝은 아닐 것이다. 저 해가 오늘 진다 할지라도 내일 다시 솟아오르는 것과 같이, 사람이 이생에서 죽어간다 할지라도 죽을 때의 그 영혼이 다시 이 세상에 몸을 받아 나타나게 되는 것이 우주의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