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당신이 원하는 동행이 이런 것 아닐까요?

<사진=뉴시스>

누나는 빠듯한 형편에도 고아원에다 매달 후원비를 보낸다. 누나는 파스칼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남모르게 한 선행이 가장 영예롭다”는 파스칼의 말을 실천하고 있다. 그런 누나가 중앙선을 넘어온 음주운전 덤프트럭과 충돌해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나에게는 너무나 큰 불행이었다.

실연(失戀)의 아픔에서 벗어날 때쯤, 어느 늦은 오후에 누나가 후원하는 고아원을 방문하기 위해서 누나와 나는 외출을 하게 됐다. 그런데 길에 나가 1시간을 넘게 택시를 잡으려 해도 휠체어에 앉은 누나를 보고는 그대로 도망치듯 지나쳐갔다. 도로에 어둠이 짙게 깔리도록 우리는 택시를 잡을 수가 없었다. 분노가 솟구쳤다. 누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때였다. 택시 한대가 우리 앞에 멈추었다. 그리고 운전사 자리에서 기사가 내리는데 놀랍게도 여자였다. 내가 누나를 택시에 안아 태우는 동안 여기사는 휠체어를 트렁크에 넣었다. 고아원에 도착하자 캄캄한 밤이었다. 휠체어를 밀고 어두운 길을 가는 동안, 여기사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길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나는 지금 아름다운 두 여자와 살고 있다. 나는 그 여자택시기사와 혼인해 누나와 함께 한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땅에 떨어진 도덕을 바로세우기 위한 운동으로 필자는 오랜 동안 ‘원불교청운회’(靑耘會) 활동을 해왔다. 서울 중랑구 신내동에 원광장애인복지관을 설립해 함께 하고 있다.

원불교청운회장에 취임하고 가장 역점적으로 추진한 사업이 서울 노원구 월계동 ‘사회복지법인 청운보은동산’을 설립한 일이다. 그리고 산하에 ‘노원 제1사회종합복지관’을 비롯해 여러 기관을 수탁(受託)하여 운영했다.

어느 해, 휠체어를 탄 장애인 50명과 함께 한라산 등반을 감행한 것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다. 장애인을 위한 사회사업은 결코 쉽지 않다. 물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적인 도움으로 꾸려가지만 직원 모두가 세상을 사랑하고 장애인을 내 몸으로 여기는 뜨거운 연민(憐愍)의 정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나라가 복지선진국일까? 아니다. 너무 열악하다. 아직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배려는 아득하다.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태어나 산다는 것은 지옥에서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직 신체1급 중증장애인이 갈 수 있는 장애인시설은 없다. 장애인 시설은 많지만 돌보기 쉬운 장애인들만 받는 것이 현실이다.

장애인 활동보조원제도(도우미)가 있다. 그러나 이들도 자기가 하기 싫으면 그만이다. 어차피 시간당 받는 돈은 똑같아 돌보기 쉬운 장애인들만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이 제도 역시 신체1급 장애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왜냐하면 국가에서 주는 보조금이 일반장애인과 중증장애인이 같기 때문이다.

장애인 콜택시라는 것이 있다. ‘교통약자이동지원센타’를 말한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신체1급 중증장애인을 태우는 곳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복지정책은 연계성이 없다. 어쩌면 후진국보다 못한 장애인복지인지도 모른다.

더욱이 장애인을 자식으로 둔 부모는 죽을 때까지 부양의무를 져야 한다. 이 장애인의 부양의무를 부모에게 전적으로 떠넘긴 데서야 장애인을 둔 부모는 죽으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 이 역시 국가와 정부가 나눠 책임져야 하지 않을까?

한 가정에 암, 희귀 난치성 질환, 정신질환, 노인성 질환 등이 있으면 혼자 소득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이런 사정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무조건 소득을 기준으로, 또 기초수급자 위주로 복지제도가 이뤄지고 있다.

정신장애인은 정부에서 표준약관을 정해 아예 보험회사에서 보상을 받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렇다면 대신 정부에서 보상을 해야 하지 않을까?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표준약관을 만들어 보상자체를 못하게 하는 것은 정말 정부의 엄청난 폭정이 아닌가?

한국에서 부자들이 사는 것은 천국에서 사는 것과 같다.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지옥에서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들도 귀중한 국민이다. 최소한 장애1급을 가진 사람이 정부나 지자체 등 공무원에게 시설이나 병원 이동 등 도움을 요청하면 담당 공무원이 책임지고 시설입소와 병원을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공무원들이 몇 군데 알아보고 없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럼 장애인들은 다 죽으라는 말인가?

중증장애인 가운데도 자력으로 살아가며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수기를 옮긴다.

[누나와 나는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힘겹게 거친 세상을 살아왔다. 누나는 서른이 넘도록 내 공부 뒷바라지를 하느라 시집도 가지 못했다. 학력이라곤 중학교 중퇴가 고작인 누나는 택시기사로 일해서 번 돈으로 나를 어엿한 사회인으로 키워냈다. 누나는 승차거부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노인이나 장애인이 차에서 내린 곳이 어두운 길이면 꼭 헤드라이트로 앞길을 밝혀준다.

누나는 빠듯한 형편에도 고아원에다 매달 후원비를 보낸다. 누나는 파스칼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남모르게 한 선행이 가장 영예롭다”는 파스칼의 말을 실천하고 있다. 그런 누나가 중앙선을 넘어온 음주운전 덤프트럭과 충돌해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나에게는 너무나 큰 불행이었다.

여자쪽 집안에서는 내가 누나와 같이 산다면 파혼하겠다고 했다. 그녀도 그런 결혼생활은 자신이 없다고 했다. 누나와 자신 중에 한사람을 택하라는 그녀의 최후통첩은 차라리 안 들은 것만 못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생각했던 그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실연(失戀)의 아픔에서 벗어날 때쯤, 어느 늦은 오후에 누나가 후원하는 고아원을 방문하기 위해서 누나와 나는 외출을 하게 됐다. 그런데 길에 나가 1시간을 넘게 택시를 잡으려 해도 휠체어에 앉은 누나를 보고는 그대로 도망치듯 지나쳐갔다. 도로에 어둠이 짙게 깔리도록 우리는 택시를 잡을 수가 없었다. 분노가 솟구쳤다. 누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때였다. 택시 한대가 우리 앞에 멈추었다. 그리고 운전사 자리에서 기사가 내리는데 놀랍게도 여자였다. 내가 누나를 택시에 안아 태우는 동안 여기사는 휠체어를 트렁크에 넣었다. 고아원에 도착하자 캄캄한 밤이었다. 휠체어를 밀고 어두운 길을 가는 동안, 여기사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길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나는 지금 아름다운 두 여자와 살고 있다. 나는 그 여자택시기사와 혼인해 누나와 함께 한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일체생령(一切生靈)이 다 한 포태(胞胎)에서 태어났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가 한 통속이요, 한 형제다. 장애인 문제는 결코 우리가 먼 산 보듯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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