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학때 화장실 단골 청소당번으로 훗날 총통된 사람은?
1907년 일본의 어느 대학의?총장이 그를 불렀다. “학생이 매일 밤 청소하는가?” “예!” “고맙네, 그런데 공부가 바쁜 학생이 어찌 그렇게 하나?” “저는 중국인 신입생인데 우리나라 화장실이 가장 더러워서 중국의 명예를 위해 매일 청소를 합니다. 이 학교 졸업할 때까지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제 이름은 장개석입니다.” “장개석이라…”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임제선사(臨濟禪師, ?∼866)가 한 말씀이다. 해석을 하면 “네가 가는 곳마다 주인이 돼라, 네가 서 있는 곳이 진실 된 곳이다”란 뜻이다. 주인의 마음으로 살면 주인이 되고, 손님의 마음으로 살면 손님이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세상에 빗대면 주인의 마음으로 일하면 결국 주인이 되고, 머슴의 마음으로 일하면 계속 머슴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럼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우리가 사는 사회나 조직을 ‘공가(公家)’라고 한다. 그 공적인 집을 필자는 ‘공가(空家)’라고 부른다. 이 공가는 바로 비어있는 집이다. 그럼 빈 집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가 아닌가? 주인정신의 사전적 뜻은 “모든 일을 항상 주인된 입장에서 생각하고 실천하는 정신”이다. 가정, 사회, 국가, 세계의 모든 일을 자기 일로 알아서 앞장서 책임지고 행하는 정신을 뜻한다.
우리나라 화장실의 위생환경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오래 전 백두산에 가서 화장실에 들어가 깜짝 놀랐다. 남녀의 구분도 없고 칸막이도 없이 뻥 뚫린 화장실은 가히 놀랄 만 했다. 그 이후 티벳, 네팔, 인도 등지를 돌아보아도 비슷했다.
일제 치하의 일이다.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少太山) 부처께서 어느 때 한 제자를 데리고 서울행 기차에 탔다. 차 속은 무척 어수선하였고 한국인들의 모습은 가난과 압제에 시달리고 있는 간고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기차가 대전역을 지나 서울을 향해 달리는데 소태산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간 분이 오래도록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 수행하던 제자가 무슨 일인가 싶어 화장실로 가보았다. 그 때 마침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게 아닌가. “스승님, 무슨 일로 그렇게 오래 계셨나요.” “응, 화장실 청소 좀 하느라고 그랬다.” “아니, 스승님께서 화장실 청소를 다 하시다니요?” “사실은 화장실에 가보니 너무 더럽더라. 일본인들이 볼 때 한국인들은 화장실도 깨끗하게 사용할 줄 몰라서 나라조차 빼앗기는 열등민족이라 멸시할 것 같았다. 우리 민족이 이렇게 역경에 놓여 있을수록 스스로 민족의 긍지를 지키고 명예를 손상시키는 일이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
1907년 일본의 어느 대학에서의 일이다. 영국, 독일, 불란서, 한국, 일본, 미국 등 모든 국가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으므로 화장실 역시 국적별로 사용했다. 그 가운데 중국인 화장실이 제일 더러웠고, 매주 화장실검사에서 늘 지적을 당했다. 그런데 1908년도가 되니까 중국 화장실이 제일 깨끗한 화장실이 되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밤 12시가 되어 이 대학 총장이 학교를 둘러보았다. 기숙사 불이 하나 하나 꺼져 가는데 유독 불이 꺼지지 않는 방이 있었다. ‘야! 저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방에서 문이 삐걱 열리면서 한 학생이 대야에 걸레와 비누, 수건을 가지고 나왔다. 그는 곧장 중국인 화장실로 가더니 비누칠을 해가면서 청소를 깨끗이 하는 것이었다.
총장이 그를 불렀다. “학생이 매일 밤 청소하는가?” “예!” “고맙네, 그런데 공부가 바쁜 학생이 어찌 그렇게 하나?” “저는 중국인 신입생인데 우리나라 화장실이 가장 더러워서 중국의 명예를 위해 매일 청소를 합니다. 이 학교 졸업할 때까지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제 이름은 장개석입니다.” “장개석이라…”
총장은 그 학생 이름을 수첩에 기록했다. 그리하여 특별 장학금을 주고, 좋은 교수를 붙여주었으며, 큰 격려를 해 주면서 학생의 앞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장개석(蔣介石, 1887~1975)은 훗날 중국의 총통이 되었다.
바로 이것이 빈 집(空家)을 차지하는 묘방(妙方)이 아닌가?
원불교의 2대 종법사(宗法師)이던 정산종사(鼎山宗師)는 <법어>(法語) 공도편 17장에서 이런 말씀을 한다. “주인정신은 모든 일에 앞장서서 자기가 주인이기 때문에 불평이 없으며 중심 되는 일이나 변두리 되는 일이나 모든 일꾼들을 다 아끼고 챙기며 모든 고락을 전체와 같이 하며 순역경계(順逆境界)를 따라 버리지 아니하고 그 성취를 위하여 끝까지 힘쓰는 정신이다.”
주인은 불평불만이 없다. 그러나 주인은 특권이 있다.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는 특권이다. 주인은 태평세월을 보내지 않는다. 주인은 다 같이 기뻐할 줄 알고 슬퍼할 줄 안다. 주인은 걱정이 많다. 주인은 항상 책임이라는 특권이 주어진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주인이고, 사회에서는 그 사회의 기관 단체가 구성원의 주인이며, 국가에서는 정부와 그 나라의 국민 개개인이 모두 다 주인이다.
하나의 물건을 놓고 주인과 머슴이 생각하는 것은 천차만별이다. 주인은 작은 일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생각하기를 “문제점은 없는가?” “이것을 어떻게 해야 바람직한가?” “이것을 어디에 놓아야 가장 어울리는가?” 등의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간다. 그러나 머슴은 그저 일이 큰지 작은지도 모르고 무심히 지낸다. 설사 안다 할지라도 그저 있는가 보구나 하는 무관심으로 대하는 것이 보통이다.
모름지기 주인은 스스로 발원(發願)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 영생토록 몸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 주인은 누가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할 것도 없고, 대우해 주지 않는다고 성내지도 않는다. 한 가정의 살림에도 주인은 머슴보다 걱정이 많다. 그래서 주인은 모든 일에 앞장을 서며, 자기가 주인이기 때문에 불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