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윤의 웰빙100세] 88세는 미수(米壽), 108세는?
대표적 장수음료 차에서 유래 차수(茶壽)
슬로푸드(Slow Food)운동 국제본부 자코모 모욜리 부회장은 우리나라 전통 다도(茶道)를 슬로푸드의 좋은 예로 꼽고 있다. 즉 손님을 존중하고 교감을 나누고 의식을 따르고 재료를 중시하는 것이야말로 슬로푸드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슬로푸드 운동은 음식ㆍ와인 저널리스트 카를로 페티리니 주도로 1986년 시작됐다.
슬로푸드 차(茶)를 마시기 위해서는 주전자에서 물이 끓는 소리를 듣고, 찻잎을 다호(茶壺)에서 우려 찻잔에다 따뜻한 차를 따른다. 우러난 차 색깔을 감상하면서 차의 향기를 코로 맡고, 모인 사람들이 서로 그 맛을 같이 음미하는 과정이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작용을 한다.
차(學名: Camellia Sinensis)는 동백나무 과(科), 동백나무 속(屬)에 들어가는 다년생 상록식물이며, 새잎과 연한 줄기를 채취하여 불로 덖거나, 증기로 찌거나 햇볕으로 말려서 더운 물에 우리거나 타서 마시는 음료다. 일반적으로 녹차는 섭씨 70~80도 온도가 알맞다. 물의 온도가 너무 높으면 차 맛이 탁해지고, 온도가 낮으면 차맛이 제대로 우러나지 않아 싱겁게 된다.
일반적으로 차를 대접할 때에는 도자기로 된 다구(茶具)를 사용한다. 다구의 구성은 대개 다관(茶罐, 찻주전자)과 숙우(물을 식히는 사발) 그리고 찻잔으로 이루어진다. 다관에 적당량(1인분에 1티스푼 분량)의 차를 넣고 끓인 물을 숙우에서 적당한 온도로 맞추어 다관에 부은 후 2~3분 지났을 때 찻물을 따르면 된다. 찻잔을 여러 개 사용할 경우에는 찻잔에다 2~3회에 걸쳐서 균등하게 따르는 방법과 숙우에 한꺼번에 찻물을 만들어 찻잔에 알맞게 따르는 방법이 있다.
차는 처음에는 약제로 사용되다가 780년경 당(唐)나라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에서부터 기호음료로 자리를 잡았다. 예부터 차는 장수음료로 알려져 108세를 맞는 해를 차수(茶壽)라 하였다. 즉 ‘茶’자를 풀어쓰면 ‘十+十+八八=108’이 된다. 차는 정신을 맑게 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물질 중 가장 고상하고 아름다운 공양물(供養物)로 이용되었다. 또한 차는 투명하고 맑은 덕성을 지닌 것으로 군자와 같다고 하여 사대부나 문사들 사이에서는 차를 가까이 하는 것이 고상한 취미로 인식되었다.
조선 중기 의관(醫官) 허준(許浚, 1546~1615)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차의 효능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차의 성질은 차고 그 맛이 달고 쓰며 사람에게 매우 좋은 음료다. 차를 마시면 갈증이 없어지고, 소화가 잘 되고, 담(痰)이 제거되고, 잠을 쫓아주고, 소변에 이롭고, 눈이 밝아지고, 머리가 맑아지고, 걱정을 씻어주며, 지방을 덜고 비만을 막아준다.”
오늘날 차는 각종 질병의 예방 및 치료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생리활성기능을 가진 음료이다. 차의 성분 중 카테킨(catㅊechin)은 항산화, 항암작용, 혈압상승억제, 혈중 콜레스테롤 저하, 알츠하이머(치매) 억제, 구취 제거, 충치예방 등에 효능이 있으며, 카페인은 각성, 강심 및 이뇨작용을 한다. 폴리페놀계 화합물인 탄닌(tannin)은 쓴맛과 떫은맛이 있으며 납, 카드뮴 등 중금속 제거에 효과가 있다. 또한 각종 비타민, 무기질, 감마 아미노산 등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면역기능과 노화 억제 기능 등이 있다.
차의 역사는 중국이 가장 오래되며, 전한(前漢) 선제(宣帝, BC 74~BC 49) 연간에 왕포(王褒)라는 선비가 노비 매매문서인 동약(?約)에 적은 애용이다. 우리의 차 역사는 2세기경 가락국의 수로왕 때부터라고 본다. 그러나 차 재배가 시작된 것은 신라 흥덕왕 3년 대렴(大簾)이 당나라에서 차 종자를 가져왔고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게 한 이후 사찰을 중심으로 전파되었다. 중국으로부터 세계 각국으로 차가 전파된 것은 17세기 이후 본격화되었으며, 오늘날 약 50여개 국에서 차가 생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차는 모양에 따라 산차(散茶)와 가루차(末茶), 발효의 정도에 따라 녹차(綠茶)와 황차(黃茶), 그리고 채다시기(採茶時期)에 따라 우전(雨前), 세작(細雀), 중작(中雀), 대작(大雀)으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는 전남 보성 차밭과 경남 하동 차밭이 유명하다. 보성은 국내 녹차의 약 40%를 생산하며, 하동 야생(野生)차밭은 세계 3대 야생차밭 중 한 곳으로 꼽힐 만큼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보성 차밭을 ‘여성’에 비유한다면, 하동 차밭은 ‘거친 머스마’(남자)에 비유된다.
차는 제조하는 과정에서 발효가 되며, 발효 정도에 따라 녹차, 백차, 황차, 오룡차(烏龍茶), 홍차, 흑차 등으로 크게 구분한다. 녹차는 찻잎을 쪄서 발효가 전혀 일어나지 않도록 억제해 타닌이 많아 떫은맛이 난다. 백차는 발효 정도가 적고, 황자와 오룡차는 중간, 홍차와 흑차는 발효가 많이 된 것이다. 보이차(푸얼차, 普?茶)는 완성된 차를 어둡고 눅눅한 창고에서 오랫동안 묵히는 이른바 후(後)발효 과정을 거친 차이다. 30년 이상 제대로 발효된 보이차는 깊은 맛이 우러나며, 몸 안의 기운을 돌려주는 효과가 있으므로 보약에 가깝다.
고려 중기의 문신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신라 42대 흥덕왕 3년(823년) 왕명에 의하여 대렴이 당으로부터 가져온 차 종자를 지리산 계곡에 심었다. 그러나 이미 선덕여왕(632~647) 시절에 차가 있었고, 이때 이후 더욱 성행하였다”고 기술되어 있다.
신라시대의 차문화는 화랑들의 차 생활과 여러 종류의 다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가야국을 합병하면서 차문화를 그대로 흡수한 신라의 화랑들은 산천경계(山川境界)를 유랑하면서 심신을 단련하고 생활 속에서 차를 사랑하였다. 이는 신라 화랑들 사이에 차 생활이 성행했으며, 삼국통일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고려는 우리나라 역사상 차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였다. 왕이 손수 말차(抹茶)를 제조할 만큼 왕실과 사찰에서 차를 중시하고 애음하였다. 고려의 승려들은 차가 일상화되어 식사 후 선방(禪房)에서 차를 마셨고, 항상 차를 가까이 하였다. 선비들 사이에서는 다인(茶人)이란 칭호를 큰 명예로 여겼다.
궁중에는 차를 취급하는 관청인 다방(茶房)이 고려 문종 원년(1047년)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다방은 궁궐을 지키고 임금을 모시는 일을 맡는 성중관(成衆官) 소속으로 팔관회, 연등회 등 왕실의 행사를 비롯하여 설날과 추석 등 명절, 종묘 제사, 사신 맞이, 왕의 행차 등에서 차에 관한 모든 것을 맡았다.
조선의 다방은 고려와 마찬가지로 궁궐이나 태평관에서 다례를 베푸는 일과 조정이나 왕실의 다례를 주관하는 일을 하였다. 다방은 이조(吏曹)에 소속된 기관으로 태조 때 지은 새 궁궐에 별도로 마련한 건축물이 있을 정도로 중시하였다. 조선시대 관청에서는 차를 마시는 시간인 다시(茶時)가 있었다.
임금이나 왕자가 출행을 할 때 각종 다기를 들고 뒤따른 다군사(茶軍士)라는 직제가 있었다. 임금과 신하들이 중요한 국정을 논하기 전에 엄숙하게 차를 마시는 다시(茶時), 관리의 비행을 적발하고 규탄하며 풍기와 풍속을 바로잡고 백성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주는 다시청(茶時廳)이 있었다.
조선시대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술을 좋아하는 민족은 망하고, 차를 좋아하는 민족은 흥한다”고 말하였다. 차와 포도주의 다른 점은 포도주는 많이 마시면 알코올에 취하지만, 차는 맛과 향에 취한다. 차의 깊은 맛을 알려면 마음이 가라앉아 있어야 한다.
차와 포도주는 전문 감별사가 따로 존재해야 할 만큼 매우 섬세한 기호품이다. 소믈리에는 와인의 맛을 감별하는 전문가를 가리키며, 품명가(品茗家)는 차의 맛을 감별하는 전문가를 말한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일본 로열 블루티(Royal Blue Tea)회사는 녹차를 와인 병에 담아 한 병에 평균 5000엔(약 5만원), 가장 비싼 제품인 ‘마사(Masa) 수퍼프리미엄’은 32만4000엔(약 320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로열블루티의 최고급 제품은 일본의 특급 녹차 밭 중에서도 몇십 kg밖에 나오지 않는 극상품(極上品) 찻잎에서 우려내 만든다고 한다. 고객에게는 “와인 병에 담긴 녹차를 와인 잔으로 즐겨 달라”고 제안하며, 300만원짜리 녹차를 즐기는 최적온도는 레드와인(red wine)과 비슷한 섭씨 17~18도라고 홍보하고 있다.
‘문화의 세기’라는 21세기에 우리 민족이 세계에 내 놓을 수 있는 전통 알짜 문화 중 으뜸이 바로 차문화다. 우리의 차문화 속에 함유된 정신 그 자체가 우리가 추구하는 인문학의 중요한 분야이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차문화를 더욱 발전시켜서 그 기반을 넓혀 “한잔의 차로 문화를 마신다”는 슬로건으로 세계의 문을 두드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