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윤의 웰빙 100세] 장은 정월에 담가야 제맛
“음식 맛은 장 맛”이라 할 정도로 우리는 조상 대대로 사용해온 발효식품인 장을 음식을 만들 때 가장 기본적인 조미료로 사용하고 있다. 원래 장(醬)은 간장을 말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간장을 비롯하여 된장, 고추장 등을 아우르며 장류(醬類)라고 말한다.
예로부터 음력 1월에 담근 ‘정월장’(正月醬)이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정월에는 날씨가 추워 소금을 덜 넣어도 상할 염려가 없고 벌레도 생기지 않아 장 담그기에 알맞다. 최근 롯데마트에서 100% 국내산 재료를 사용하고 전통 제조방식으로 만들었다고 밝힌 ‘전통메주’를 9만9000원(5.5kg)에 판매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삼국시대부터 장을 담궈 먹었다고 한다. 즉 <삼국지>의 ‘위지동이전’에 고구려인은 술 빚기, 장 담그기, 젓갈 등의 발효식품을 매우 잘한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삼국사기>에는 683년 신라 신문왕이 김흠운의 딸을 왕비로 삼을 때 시(?, 메주)를 예물로 보냈다고 적혀있다. 고려 현종 9년(1018년)과 문종 6년(1052년)에는 굶주린 백성에게 구황식품(救荒食品)으로 장을 배급했다는 기록도 있다.
또한 우리 조상들은 장을 팔진미(八珍味)의 주인이라 부르며 5가지 덕에 비유했다. 즉 나물을 무치거나 국을 끓일 때도 맛이 사라지지 않는 단심(丹心),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는 성질의 항심(恒心), 기름진 냄새를 없애주는 불심(佛心), 매운맛을 부드럽게 해주는 선심(善心), 그리고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화심(和心)이다.
이에 우리 조상들은 장을 담그고 간수하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예를 들면, 조선시대 학자 허균(1569~1618)의 <성옹지소록>(惺翁識小錄)에 따르면 선조 임금 때 일본이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을 침입하여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나 전라도 남원이 왜군의 수중에 넘어가는 등 전세가 심상치 않자 조정에서는 임금의 피란에 대해 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임금의 피난처로 평안도 영변이 적당하다는 데 의견이 모여졌으나, 남자안이란 신하는 그곳의 장(醬)이 시원치 않다고 하니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신잡을 합장사(合醬使)로 임명하여 미리 보내 장을 담그게 하자고 말했다. 그러자 한유천이란 신하가 신잡의 성이 신(申)이라 장 담그기를 꺼리는 날인 신일(辛日)의 신(辛)과 음이 같으니 합장사로 임명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옛날에는 신불합장(辛不合醬)이라 하여 신(辛)자가 들어간 날에 장을 담그면 시어진다고 하여 장 담그기를 기피했다. 이와 같이 우리 조상들은 장 담그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우리나라 재래 된장을 담그는 순서는 <콩 삶기?메주 말리기?메주 발효?장 담그기?된장 푸기?된장 숙성>순이다. 콩을 주원료로 하여 발효시켜 만든 메주로 간장, 된장 등을 만들어 음식의 조미료로 사용한다. 메주 한 말(7kg)로 장을 담그면 된장은 15kg 안팎으로 뜰 수 있다. 소금물은 메주의 3배 정도가 적당하므로 메주 7kg이면 소금물은 21리터를 부으면 된다.
흔히 메주 담글 소금물 염도를 맞추는 요령으로 “소금을 푼 다음 달걀을 넣어 달걀이 500원 동전만큼 물 위로 뜨면 알맞은 염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3년 묵은 천일염염도 약 90%)과 물을 1대5 비율로 섞으면 염도가 16.6%가 된다. 일반 가정에서 장이 상하지 않게 담글 수 있는 최저 염도는 15%이다. 메주를 담글 항아리를 깨끗이 씻은 뒤 메주를 차곡차곡 담고 소금물을 메주가 완전히 잠기도록 붓는다. 소금물을 부은 다음에는 소금은 더 넣지 않아야 장맛이 일정하게 나온다.
콩을 원료로 한 된장은 발효작용으로 단백질(protein)의 20~40%가 아미노산(amino acids)로 변하여 소화가 잘 되며, 소화흡수율은 95% 이상으로 효율이 높다. 콩은 단백질 함량이 높아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고도 불리며, 콩 속의 단백질은 몸속의 지방을 분해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혈관을 깨끗하게 해준다.
콩이 다른 농작물에 비해 월등히 많은 단백질을 함유할 수 있는 것은 뿌리에 사는 세균인 ‘뿌리혹박테리아’ 덕분이다. 이 세균은 공기 중의 질소를 빨아들여 식물이 잘 흡수할 수 있는 형태로 바꿔주므로 콩은 뿌리혹박테리아가 전해준 질소로 많은 양의 단백질을 만들어 저장한다. 콩은 단백질 외에도 탄수화물, 지방, 비타민, 무기질, 식이섬유 등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고루 함유하고 있다.
또한 콩에는 이소플라본(isoflavon), 레시틴(lecithin), 제니스테인(genistein) 등 다양한 물질이 들어 있어 암 발병률을 낮추고, 암세포의 성장도 억제한다. 된장에 들어 있는 필수지방산과 리놀레산, 리놀렌산은 피부병과 혈관질환 예방에 도움이 되며, 레시틴(lecithin)은 동맥경화 방지와 고혈압과 노인성 치매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식이섬유 프리바이오틱은 대장에서 유익균(有益菌)은 잘 자라게 하고 장운동을 도와 변비를 예방한다.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쌀에는 필수아미노산 라이신(lysine)이 부족하지만 콩 단백질에는 라이신이 풍부하므로 쌀밥에 구수한 된장국을 곁들여 먹으면 영양학적 측면에서 매우 합리적이다. 제철 나물이나 조개류를 된장과 함께 국을 끓이거나, 삶은 채소를 된장에 무쳐 먹어도 좋다.
또한 된장과 몇가지 부재료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만들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된장찌개’다. 된장을 멸치 등을 이용해 깊은 맛을 낸 육수에 풀어 마늘, 양파, 고춧가루, 생강즙 등을 잘 배합해 양념을 맞추면 감칠맛 나는 된장찌개가 된다. 여기에 꽃게와 새우를 넣어 끓이면 시원한 맛을 더해주는 ‘해물 된장뚝배기’가 된다.
된장에 메주가루와 소금물을 섞으면 ‘토장’이 되며, 메주를 소금물과 섞어 따뜻한 곳에서 1주일 정도 발효시킨 속성 된장이 ‘막장’이다. ‘즙장’은 된장에 무나 고추, 배추잎을 넣어 수분이 더 많으며, ‘담뿍장’은 볶은 콩으로 메주를 띄워 고춧가루, 마늘, 소금을 넣어 7~10일 발효시켜 만든다.
식품성분표(Food Composition Table,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전통된장(Traditional soybean paste)에 함유되어 있는 주요 영양소(100g당)는 열량 161kcal, 수분 54.0g, 단백질 13.6g, 지질 8.2g, 탄수화물 11.7g, 회분 12.5g, 섬유소 3.6g, 칼슘 84mg, 인 208mg, 철 2.5mg, 나트륨 3748mg, 칼륨 647mg, 비타민B1 0.04mg, 비타민B2 0.12mg, 나이아신 1.2mg 등이다.
된장에는 나트륨(소금) 함량이 높으므로 적당량을 섭취하여야 한다. 된장 100g당 나트륨(sodium) 함량은 전통된장 3748mg, 개량식 양조된장 4991mg, 일본된장(Miso) 4300mg 등이다. 이에 우리나라 전통된장의 나트륨 함량이 양조된장과 일본된장에 비해 낮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