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Story] 무표정한 ‘헬로키티’ 전 세계를 수놓다
11월1일 39번째 생일을 맞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고양이. ‘사과 5개 정도’의 키와 ‘사과 3개 정도’의 체중으로 영국 런던 교외에서 태어났다. ‘엄마가 구워준 애플파이’를 좋아하고 ‘쿠키 만들기’가 특기다. 좋아하는 말은 ‘우정’. 도무지 무슨 표정인지 알 수 없는 이 고양이가 바로 ‘헬로키티’다. 표정은 눈과 입에서 나오는 법인데, 눈은 까만 점에 불과하고 입은 아예 없다. 그래서 기쁠 때는 웃는 것 같고 슬플 때는 우울해 보인다.
전 세계 여성들이 하나쯤 갖고 있을 법한 헬로키티 캐릭터의 인기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하다. 레이디 가가, 브리트니 스피어스, 드류 배리모어, 카메론 디아즈, 린제이 로한, 패리스 힐튼 같은 할리우드 스타부터 이종격투기 선수 최홍만까지 모두 헬로키티 마니아다. 10년 전 빌 게이츠가 6000억 엔(6조 원)에 키티 디지털 판권을 사려 했으나 회사가 거절해 무산된 적이 있다. 대체 이 깜찍한 고양이는 어느 별에서 왔을까.
“강아지도 아니고, 곰도 아니고, 그러면 고양이가 어떨까?” 작은 비닐 손지갑을 디자인하던 일본 디자이너 유코 시즈미. ‘스누피’와 ‘푸우’가 인기를 끌던 당시 유코는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고양이를 떠올렸다. 그렇게 해서 손지갑 무늬로 태어난 이름 없는 하얀 고양이는 1년 뒤인 1975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고양이에서 딴 ‘키티’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디자인회사가 바로 ‘산리오(San Rio)’다. 헬로키티 말고도 마이멜로디, 리틀트윈스타 등 캐릭터 시장에서 소녀들의 꿈같은 주인공을 잔뜩 탄생시킨 곳이다. 산리오는 스페인어로 ‘성스러운 강’이란 뜻. 문명이 강을 중심으로 꽃 피웠듯 450여 개 캐릭터가 산리오에서 쏟아져 나왔다.
‘성스러운 강’에서 쏟아져 나온 소녀의 꿈
산리오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 쓰지 신타로(86) 회장은 현존하는 글로벌 억만장자다. 전 세계 100여 개 국에서 팔리는 캐릭터 상품으로 연간 3500억 원을 번다. 산리오의 자산가치는 1조5000억 엔(20조 원)에 이른다. 쓰지 회장은 33세이던 1960년, 11년 간의 공무원 생활을 접고 자본금 100만 엔으로 생활용품 제조업체 ‘야마나시 실크센터’를 차렸다. 2년 뒤 ‘스트로베리’라는 캐릭터사업에 뛰어들어 미국 장난감업체 마텔과 제휴해 바비인형을 들여오고 스누피 라이선스를 따냈다.
1974년 만든 첫 캐릭터 ‘키티’가 꾸준히 호응을 얻은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캐릭터 평균수명은 7년 정도. 다른 캐릭터들이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에서 나온 것과 달리 키티는 소품용 디자인이었기에 3년쯤 지나자 인기가 시들해졌다. 이때 쓰지 회장은 디자인 공모전을 열어 앉은 모습이던 키티를 일으켜 세웠다. 키티의 가족 캐릭터가 하나둘씩 늘어나 ‘헬로키티’ 시리즈가 됐다. 키티에게 스토리와 성격을 입혀준 건 소비자들이었다.
다양한 캐릭터로 분화하던 키티는 탄생 20살 되던 1994년 다시 ‘키티 화이트’로 단일화됐다. 일본의 선물문화도 키티의 성공에 한몫 했다. 키티는 이미지 하나로 모든 제품과 포장을 감쌀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용품에 키티 하나만 들어가도 새로운 물건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 우리 생활 깊숙이 키티가 들어왔다.
2000년대 중반 산리오 매출이 급감하면서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이때 다른 업종, 다른 업체에 캐릭터 라이선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사업이 전환됐다. 지금까지 헬로키티와 제휴를 맺은 기업은 800여 곳. 키티 라이선스 제품은 한 해 5만 여 종 생산되고 있다. 문구와 팬시, 식품, 가구, 생활용품 뿐 아니라 H&M, ZARA, 포에버21과 같은 의류업, 월마트 등 판매업까지 진출했다. 스와로브스키, 안나수이, 스와치, 맥 등 유명 브랜드와 협업해 액세서리, 속옷, 화장품 등의 품목에서도 맹활약을 하고 있다.
손지갑에서 호텔, 비행기까지
이런 현상은 어린 시절 즐기던 장난감과 캐릭터를 어른이 돼서도 소비하는 키덜트(Kidult, kid와 adult의 합성어) 덕분이기도 하다. 특히 자신과 함께 성장해온 친구 같은 존재인 키티를 아이들에게도 쥐어준다. 이들을 일본에서는 ‘키티라(キティラ)’, 한국에서는 ‘키티맘’이라 부른다.
헬로키티는 사회현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지난 여름 싱가포르의 한 맥도날드 매장에 유래 없는 긴 행렬이 이어졌다. 햄버거를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헬로키티가 새겨진 열쇠고리 사은품을 받기 위해 줄선 사람들이었다. 한정판으로 나온 헬로키티를 받겠다며 북새통을 이루는 바람에 경찰까지 동원돼야 했다. 대만에서는 최근 헬로키티 모양의 로봇이 등장했다. 대만 에바항공은 헬로키티로 도색한 비행기를 운항하는데, 분홍색 쿠션이 있는 자리에 앉으면 헬로키티 앞치마를 입은 승무원이 헬로키티를 주제로 한 기내식을 내온다.
한국에서도 롯데호텔제주가 ‘헬로키티 패키지’ 상품을 내놓았다. 들어가는 복도부터 객실 인테리어와 각종 용품이 온통 헬로키티 캐릭터다. 커피와 쿠키 등을 파는 ‘헬로키티 카페’는 우유거품 위에 초콜릿 파우더로 키티 얼굴을 그려 넣는다.
이처럼 품목을 가리지 않는 헬로키티지만 술·담배 등 성인 위해 제품에는 라이선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최근 대만과 중국에서 알코올 도수 낮은 과일맛 맥주가 헬로키티 맥주로 나오고 미국에서 헬로키티 와인이 출시되면서 미성년자 음주를 부추긴다는 비판 속에 원칙이 다소 유연해지긴 했다. 운신의 폭을 넓히면서도 순수성을 잃지 않는 것이 헬로키티의 장수비결 중 하나가 아닐까.
단순한 모양새로 말도 없이 한 세대를 이끌어온 ‘포커페이스’ 헬로키티가 내년에는 탄생 40주년을 맞아 입이 생긴다고 한다. 새침했던 키티는 어떤 모습으로 무슨 말을 하게 될까. 헬로키티는 진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