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Story] 말레이시아 ‘프로톤’, 국책사업 냄새 ‘물씬’
말레이시아는 열대지방이다. 워낙 덥다 보니 “마누라 없인 살아도 에어컨 없이는 못 산다”는 말까지 나온다. 당연히 자동차 살 때도 에어컨 기능을 중시한다. 말레이시아가 자랑하는 자국산 자동차 프로톤(PROTON)은 다른 건 몰라도 ‘에어컨 하나만은 빵빵한 차’로 유명하다. 실제로 에어컨 가동이 빠르고 강력하다는 게 사용자들의 평가다.
쿠알라룸푸르 시내에 들어가면 거리를 누비는 승용차의 절반이 국산차다. 도요타·혼다 등 일제 자동차가 거리를 점령한 다른 동남아 도시들과 사뭇 다른 풍경이다. 주류 차종의 잣대라는 택시도 여전히 프로톤이 대세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프로톤 애호가 에어컨이 잘 나오기 때문만은 아니다. 요즘 주요 메이커 치고 에어컨 덜덜거리는 차가 어디 있겠는가. 에어컨 얘기는 오히려 ‘프로톤을 살 수밖에 없는 사정’의 애교 섞인 위안이라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1985년 국가 자부심 싣고 ‘시동’
브랜드네임으로서 프로톤은 꽤 ‘첨단과학’ 어감을 준다. ‘Proton’은 과학용어로 원자핵을 구성하는 소립자 양자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브랜드명이 만들어진 과정을 보면 첨단 이미지는 잠시 접어둬도 좋다. 프로톤은 말레이어 ‘Perusahaan Otomobil Nasional Sendirian Bhd.’의 앞글자 몇 개를 떼어 조합한 일종의 두문자(acronmy)다. 영어로는 ‘National Automobile Manufacturer Private LTD.’ 즉 ‘국가자동차제조회사’의 약어인 셈이다.
브랜드 작명에서 드러나듯 프로톤은 국책사업으로 탄생한 제품이다. 그 주창자는 22년 간 말레이시아를 통치한 마하티르 빈 모하맛(87) 전 말레이시아 총리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1982년 동아시아를 따라잡자는 그 유명한 ‘동방정책(Look East Policy)’의 시동을 걸었다. 제3세계 맹주로 아랍권·유럽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아시아적 가치’를 중시하고 일본과 한국의 경제성장 모델을 수용하겠다는 시도였다. 그 결과 말레이시아는 세계를 무대로 삼은 통상국가로 발돋음했다. 국산차 개발 프로젝트(National Car Project)는 마하티르 개혁 드라이브의 핵심이었다. 기계공업의 결정체인 자동차 생산을 통해 산업근대화를 이끌어간다는 전략이다. 국산차 프로젝트가 독창적인 국책사업은 아니다. 일본이 20년, 한국이 10년 먼저 걸었던 개발전략을 따른 것이었다.
말레이시아가 국산차 프로젝트에 착수한 것은 1979년. 의회 승인, 지원법령 마련, 국영기업 법인설립, 자본·인력 확보, 기술체휴 등에 적잖은 시일이 걸렸다. 6년여의 노력 끝에 1985년 7월9일 마침내 첫 완성차가 샤 알람(Shah Alam) 공장 생산라인을 빠져나왔다. 첫 모델인 소형세단 프로톤 사가(Saga)였다. 마하티르 총리를 비롯한 말레이시아 지도부가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열어 자동차 생산국이 된 기쁨을 자축했음은 물론이다.
초기 프로톤 엠블렘은 국기 속의 초승달과 별 심볼을 넣어 국가적 자부심을 한껏 살렸다. 이 로고는 몇가지 변형된 형태로 계속 유지되다 2000년 국가주의 취향을 제거한 새 것으로 대체됐다. 새 엠블렘은 방패형 문장에 말레이 호랑이의 머리를 새겨 넣은 모양이다. 2012년에는 같은 형태에서 컬러를 뺀 흑백 크롬 엠블렘을 선보였다.
포로톤 로고가 바뀐 것은 이 회사의 중요한 변화시점과 일치한다. 2000년 자체 개발 엔진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2012년엔 국영투자회사가 보유하던 회사 지분 전량을 DRB-HICOM에 넘겨 민영화했다. 2000년 이전 프로톤은 엔진 등 주요부품을 기술제휴사인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 것을 얹은 이른바 배지 엔지니어링(badge engineering) 방식이었다. 또한 민영화는 정부의 강력한 보호 속에 커온 이 회사가 겪은 최대 변혁이었다.
시장경쟁에 밀려 민영화 단행
프로톤은 개발 초기부터 해외시장 진출에 적극 나섰다. 이웃나라 싱가포르와 태국을 비롯해 영국· 호주·사우디아라비아 등 1990년대 한창때는 70여 개국에 진출했다. 특히 영국에서는 1992년 가장 잘 팔리는 차 20위 안에 들었고, 싱가포르에서는 1991년 베스트셀러 차 3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시장상황이 급격히 악화됐다. 주요 경쟁자인 현대자동차의 약진이 가장 큰 위협이었다. 프로톤의 해외시장은 축소돼 현재 26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말레이시아 국내 판매도 비슷한 패턴을 그렸다. 출시 이듬해인 1986년 시장점유율 64%를 기록한 이래 1990년대 70~80%의 경이적인 점유율을 자랑했다. 수입차에 대한 관세를 최고 300%까지 매기는 등 일방적인 보호정책의 결과였다. 가격경쟁력이 워낙 높다 보니 소비자들은 품질은 둘째치고 울며 겨자 먹기로 프로톤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무역자유화 물결 속에 관세장벽은 유지될 수 없었다. 더구나 1993년 페로두아(Perodua)라는 제2의 자동차생산사가 생겨 독점 아성이 허물어졌다. 프로톤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현재 25%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프로톤은 흔히 현대차와 비교대상이 되곤 한다. 1975년 포니, 1986년 엑셀 개발을 통해 해외시장 개척에 나선 현대와 같은 시대에, 개도국 브랜드로 세계무대에서 경쟁을 펼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결과는 현대의 압승임을 누구나 인정한다. 여러 요인이 지적되지만 프로톤이 자국 정부의 보호 속에 안주해 기술·디자인 개발에 소흘했음은 자타가 공인하는 패착이다.
프로톤은 민영화를 재기의 발판으로 삼아 실지회복을 꾀하고 있다. 프리베(Prev?) 등 현대적 감각의 새 모델을 출시하고, FTA 체결을 통해 칠레 등 라틴아메리카 시장 진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생산성을 높여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춘다는 계획도 세웠다. 나지브 라자크 말레이시아 총리는 최근 “2017년까지 자동차 값을 정부보조금 없이 단계적으로 20~30% 낮추고, 자동차산업을 해외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고효율·친환경 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약속했다. 프로톤은 과연 말레이시아 국민과 지도층의 기대만큼 국민차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을까.